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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배워 먹고 산다는 것

조회수 2018. 2. 1. 18: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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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과를 나와 먹고 살 수 있느냐의 문제

매년 대학 입시철이 되면, 각자의 학문들은 저마다의 개성과 매력을 뽐내기 바쁘다.


국문과, 영문과, 철학과, 사학과, 종교학과, 사회학과, 정치외교학과, 신문방송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심리학과, 체육학과, 화학과, 기계공학과, 물리학과, 생명공학과 등등 여기에 미처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공들이 매년 예비 대학생들의 ‘간택’을 기다린다.


소위 인기 없는 학과는 규모 축소, 통폐합의 우선순위가 되기 십상이기에 신입생을 유치하려는 각 전공들의 물밑 경쟁은 사뭇 치열하다.


신입생 유치 전쟁에서 심리학과는 비교적 여유만만이다. 매년 각 학과별 경쟁률 현황을 살펴보면 심리학과는 대개 최상위권 내에 위치해 있다(‘경북대 수시 평균 경쟁률 9.4대1…심리학과 97대1 최고’, ‘충남대 수시 경쟁률 대폭 올라… 심리학과 가장 인기’‘숙명여대, 수시 경쟁률 15.3대1…사회심리학 65대1 육박’).


심리학의 인기를 반영하듯, 심리학 전공을 설치하는 대학의 수가 스멀스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당분간 심리학과에서 학생 부족으로 고민할 일은 없을 듯싶다. 그런데 매년 올라가는 심리학과 경쟁률을 보고 있노라면, 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한 가지 있다.


 

심리학과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요즘 학과 선택에서 크게 중시되는 것은 단연 취업 시장에서의 유불리 여부다. 대학들도 각 학과의 취업률을 주된 홍보 수단으로 삼고, 학생과 부모들도 학과를 선택할 때 그 학과를 나오면 얼마나 취업이 잘 되는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관점에 따르자면 심리학과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심리학과를 나오면 취업이 잘 되어서’라는 결론이 나온다. 혹은 심리학 전공을 직업으로 살리기 유리하다든지. 그런데 실제로도 과연 그런가 하면 딱히 그런 것 같지 않다.

대학알리미, 대입정보포털, 한국교육개발원 등에서 발표하는 학과별 취업률 등의 자료를 살펴보면, 심리학과 졸업자의 취업률은 타 학과와 비교해볼 때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학과별 취업률 조사③-국립대 문과] 하위 20개 학과 중 절반이 ‘순수인문’, [학과별 취업률 조사⑥-사립대 문과] 취업 잘 되는 ‘유아교육과’, 상위 1~4위 싹쓸이).


심리학과 졸업 후 전공 지식을 살려 먹고살 만 한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흔히 인사, 총무 분야 취업에 심리학과 출신이 유리하다는 말이 있지만 해당 직무군 취업 경쟁률이 원체 어마어마한지라, 심리학 전공자라 해서 특별히 더 우위에 서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 전공이든, 어떤 전공이든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는 온갖 스펙 분야 가릴 것 없이 ‘잘 하는’ 사람만이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물론 거진 심리학 전공자만을 위한 취업 시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임상심리/상담심리 분야는 제도화도 잘 되어 있고, 사회로의 보급 현황도 나쁘지 않아 심리학 전공자들을 위한 관련 일자리들이 제법 개설되어 있는 편이다.


불안, 우울, 무기력 등 각종 현대인이 겪는 정신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커져감에 따라 임상심리/상담심리 관련 취업 시장의 전망은 비교적 밝다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임상심리/상담심리 분야 내 취업을 위해서는 대학원 이상의 학력이 거의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이다. 심리학은 전공의 특성상 학부 수준의 지식만으로 전문성을 살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임상심리/상담심리는 인간의 아픈 마음을 다뤄야 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결코 그 책임감이 가벼울 수 없으며 따라서 자격증 또한 쉽게 유통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리하자면 심리학과를 나온다 해도 일반 취업에서 특별히 더 유리한 것은 아니다. 심리학을 가지고 밥 벌어먹고 살기에는 최소 석사 이상의 학력이 권장되는 상황이기에 학부 졸업자로서 딱히 먹고살 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심리학 대학원에서 석사 이상의 학력을 갖춘다 하더라도 임상심리/상담심리 분야가 아니라면 그저 ‘손가락 빨기’ 좋은 것이 현재의 냉정한 상황이다.


심리학 대학원 전공별 입시 경쟁률 현황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문제다. 임상심리/상담심리 전공에 대한 사회의 대우는 비교적 좋다. 찾는 사람, 기관도 많고 진출 경로도 다양하다. 그래서 매년 심리학 대학원 전공별 입시 경쟁률을 들여다보면 타 전공들에 비해 임상심리/상담심리 전공의 경쟁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문화심리, 사회심리, 성격심리, 발달심리, 광고소비자심리, 산업심리, 인지신경과학 등 여타 내실 있고 사회에 꼭 필요한 전공들도 많지만 해당 전공들을 찾는 이들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공 과정이 설치되어 있는 대학원의 수도 부족하며, 무사히 학위를 받는다 하더라도 딱히 전공을 앞세워 진출할 수 있는 직장도 별로 없다.

심리학과 나오셨다고요? 아..음.. 그렇군요.. 예..

취업 시장과의 연계가 그리 원활하지 않음에도 많은 이들이 심리학과를 선택하고, 심리학 대학원을 선택한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간단히 생각해보면 심리학 공부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딱 ‘취업 가능성’ 만을 당장의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닐까. 물론 나중에 졸업할 때 즈음에야 타 학문 전공자들과 마찬가지로 열심히 취업 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 심리학을 선택하는 것이 ‘취업’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큰 매력을 느껴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자아탐색을 가능케 하고 나아가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 같아서 결국 심리학 공부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싶다.


그러나 순수한 호기심과 흥미, 낭만으로만은 지금의 이 심리학과 진학 열풍이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고, 결국 어느 전공이든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 마냥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심리학 전공자만의 시장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적 노력이 없다면 글쎄, 앞으로도 지금처럼 심리학과의 높은 경쟁률이 유지될 수 있을까?

 


심리학의 인기는, 절반쯤은 분명 ‘허상’이다


특히 심리학내 비인기 분야들은 낭만을 넘어, 현실적인 시장 경쟁력을 보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본다. 가령 사회심리학(Social Psychology)을 예로 들어보자. 사회심리학에는 무척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컨텐츠들이 많다.


사람들은 왜 남을 따라 하기 좋아하는가, 부당한 권위에도 사람들이 곧잘 복종하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자행하는 이유는 뭘까, 군중심리의 작동 메커니즘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소수를 향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의 실태는 어떠하며 그것이 존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 비교적 철학적이면서도 일상과 맞닿아있는 사회심리학의 연구 주제들은 지금껏 많은 사람들의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리고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생리를 밝혀내기 위한 각종 기발한 심리실험들 또한 대개 사람들이 사회심리학을 접하며 흥미를 느끼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의 중요한 특징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그것은 바로 사회심리학이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응용심리학(Applied Psychology)이 아닌, 기초심리학(Basic Psychology)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막상 사회심리학 연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그 내용들이 이론적이고 추상적으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그것이 곧 사회심리학의 ‘멋’이라 여긴다. 그러나 사회심리학을 처음 접하는 대중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흥미롭긴 한데, 이 연구 결과를 도대체 어디에 써먹을 수 있지?


사회심리학은 기초심리학이므로 연구자들은 ‘본질’을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 연구 결과에 대한 당장의 응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활용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응용가의 몫일뿐 기초연구자들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심리학 전공자인 나 역시 사실 이 생각에 동의한다. 사회심리학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 사회심리학 연구를 비판하며 가장 흔히 범하는 실수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응용 가능성’을 곧 비판의 수단으로 삼는 행위다. 이 말은 곧, 당장 어디 써먹기 난감한 연구 결과라면 그 연구는 그다지 좋은 연구가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응용 연구는 응용 연구대로의, 기초 연구는 기초 연구대로의 나름의 가치와 의의가 존재하는 법이다. 그 차이에 대한 고려 없이 단지 응용 가능성만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그렇게 해서 기초연구의 가치를 깎아먹는다면 장기적으로 응용연구가 설 토대가 온전히 유지될 수나 있을 것인지 한 번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 번 더 비틀어 생각해보자면, 기초연구와 응용연구 각자의 영역을 보장해야 한다는 발상은 국내 사회심리학계의 현황을 고려하자면 다소 이상적인 주장인지도 모른다. 


기초연구자들은 심리적 메커니즘을 밝히는, 본질에 집중하는 형태의 연구 결과를 선보인다. 그리고는 현실적 응용 가능성을 따지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것은 단지 응용가들의 몫일뿐, 기초연구의 가치는 그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기초연구자들은 한 가지 중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놓치고 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상정하는 ‘응용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사회심리학적 연구 성과들을 응용하여 시장 가치로 환원해내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과연 응용의 결과로 말미암아 인지도를 얻고, 사회적 지분을 넓히며, 연구 분야 발전을 위한 자본을 끌어올 사람은 누구인가? 그런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회에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규모와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긴 하는가?


현실적으로 임상심리/상담심리 이외의 분야를 전공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원자도 없고, 해당 전공을 다루는 대학원도 없다. 매우 적은 인재풀을 보유한 분야 내에서 어떻게 이론가를 나누고, 응용가를 또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다 같이 모여 연구에만 매진해도 타 전공 분야, 타 학문 분야에 비해 절대적 성과가 한참 부족하다. 반대로 학문의 양적 성장을 노려보겠답시고 다 같이 학문 홍보나 응용 작업에만 매달리다가는 해당 학문이 유지될 수 있는 기반(fundamental)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론과 응용, 한 분야의 학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어느 한 가지도 등한시할 수는 없다. 한정된 인재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어떻게 하면 이론과 응용이 고루 조화된, 최적의 생산물을 사회에 내어놓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전략적 고려가 필요할 것임에도, 작금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심리학 전반으로 확대시켜보자. 심리학은 인기가 많다. 하지만 심리학으로 당장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취업 시장과의 연계도 불완전하고, 임상심리/상담심리 분야를 제외한다면 심리학 고급 인력이 진출할 수 있는 직업 시장(job market)의 다양성과 규모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특히, 기초심리학을 전공하는 이들이 응용은 응용가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며, 기초연구에만 매달리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한 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미국 등과 같이 분야 내 인재 규모가 상당하다면야 문제없겠지만, 분야의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면 이론이든 응용이든 다 잘 해낼 수 있는 슈퍼맨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진리 탐구에 몰두하는 한편, 그것을 가지고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지, 어떻게 하면 해당 분야의 사회적 영향력을 높여 유무형의 자원들을 끌어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는 않을까(다들 잘 알지 않는가. 연구, 특히 심리학자들이 해야 하는 실험 연구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는 사실을 말이다).

 


직업 시장이 활발하지 않아서, 차마 제자에게 내 길을 권할 수가 없다


내가 존경하던 심리학과의 어느 교수님께서 지나가듯 하셨던 말씀이다. 중요한 분야이고, 필요한 분야인 것은 맞지만 당장 이 분야 공부를 한다 해도 먹고 살길이 뚜렷하지 않아 제자를 만들고, 내 학문적 뜻을 이어 달라는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어느 노교수님의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래서 굳이 나와 뜻을 함께 하려거든, 일단 ‘잘 팔리는’ 분야를 공부하고 기반을 다진 후, 먹고사는 것에 크게 구애받지 않게 되었을 때 본격적으로 이 길을 고민해보라는 말씀을 또한 하셨다.


나는 교수님이 연구하시던 분야에 매우 큰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분야에의 관심 덕에 심리학도의 길을 계속 걷게 됐었다.


그런데 굶어 죽기 딱 좋으니 이 길로는 함부로 들어오지 말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게 됐으니 그것은 얼마나 큰 씁쓸함이었으랴. 


심리학, 누군가에게는 화려함이었겠으나 내게는 배가 고프면 할 수 없는 공부였다. 겉으로 보기에 심리학은 대중적인 인기가 높고 여유로워 보이지만, 국내에서의 존폐 자체를 고민해야 하는 심리학 하위 분야들은 사실 적지 않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분야의 심리학을 공부하며 느낀 사실이 한 가지 있다. 심리학은 결코 쓸모없지 않다는 굳센 믿음, 그리고 사람들이 심리학을 찾지 않는 것은 단지 그 분야에 심리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믿음이다.


심리학은 분명히 쓸 곳이 많다. 경제 상황에도, 정치에도, 사회문제 해결에도, 살고 죽는 문제들에도 심리학은 필요하다. 그러나 대중은 심리학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모른다.


그나마 임상심리/상담심리 분야에 대해서만 그 효용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쓰임새를 알려주어야 할 심리학 전공자들조차도 심리학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힐링’이라는 키워드를 벗어던졌을 때, 심리학은 과연 어떤 사회적 쓰임새를 갖게 될 것인가? 기초연구 분야를 넘어 사회심리학, 문화심리학, 정치심리학 등 분야가 응용연구 분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과연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결국, 지금처럼 계속 고민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이론가이면서 응용가로, 응용가이면서 이론가로 활약할 수 있는 그런 유연한 전략적 태도가 과연 어떻게 자리 잡아갈 수 있을지 앞으로의 일이 궁금해진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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