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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을 고려치 않은 공학은 공상에 불과하다

원천기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걷어치우자.
ㅍㅍㅅㅅ 작성일자2018.01.28. | 20,974  view

가끔 산업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학자분들 중에 ‘한국은 원천기술이 부족하다’는 말을 종종 하시는 분들이 계시다. 원천기술이 없어 아무리 비싸도 외국 회사가 달라는 대로 돈을 주고 쓸 수밖에 없다고. 에어버스 비행기 한 대도 유럽 여기저기서 분업화되어 만드는 고도화된 현대사회를 살면서 이러한 말에 현혹되어 “그래, 우리 손으로 만든 기술이 제일이지!”라고 하는 분이 계시다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주고 싶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우리가 쓰는 아이폰은 미국에서 만들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카메라는 일본 소니, 배터리는 한국 삼성, 디스플레이는 일본 샤프, 메인 새시조립은 중국의 팍스콘, 반도체는 미국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뭐 그러한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가. 그렇다고 한들 어느 미국인이 이 아이폰의 원천기술이 미국에 없다고 한탄하고 있을까.


내가 몸을 담고 있는 건설산업의 측면에서 그 원천기술 가치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1.


종종 사장교나 현수교와 같이 멋들어진 교량의 케이블 설치를 프랑스의 Freyssinet이나 스위스의 VSL사가 시공한다고, 어떤 공과대학 학자들은 한국 건설에는 원천기술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나는 이게 과연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과연 그 핵심기술이라는 케이블공사는 1조 원이 넘게 들었다는 인천대교 총공사 비용의 얼만큼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내 경험상 아무리 많이 잡아도 5%도 넘지 않았을 것이다. 콘크리트 교각설치비용, 강상판의 강재 비용, 해상공사 비용, 간접비용 등등 케이블 공종보다 많이 들어갈 비용은 부지기수다.

여수에 있는 이순신 대교, 이러한 교량을 현수교라 한다

일년에 한국에서 사장교, 현수교를 얼마나 지을까. 이런저런 소규모 교량을 제외하고서는 내 기억으로 최근에 지은 대형구조물은 이순신대교 정도다.


그렇다고 전세계적으로 그러한 교량을 엄청나게 많이 지을까? 그렇지도 않다. 만약 그렇다면 상기 언급한 Freyssinet이나 VSL사의 매출규모가 엄청나야 하는데, 이들 건설사는 국내 대형건설사에 비하면 중소기업 수준의 매출액을 보인다. 이들은 실제로 현재 프랑스 대기업인 VINCI나 BOUYGUES사의 자회사이거나 자회사였던 회사들이다.


그러면 이들 회사가 애플과 같이 영업이익을 막 30~40%씩 내는 부가가치 높은 회사냐? 그렇지도 않다. 2009~2011년 순이익률을 보자면, Freyssinet이 3.4%~4.1%이다. 아울러 이 시장은 Freyssinet이나 VSL보다 작은 경쟁사들도 꽤나 많으며, 매출액의 절반 이상은 고려제강이나 신일본제철과 같은 철강제조업체들로 돌아간다. 결국 이 원천기술이란 게 꽤나 허울없고 실속없는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지금 내가 한국에 1km가 넘는 교량을 짓는다고 가정하고, 전세계의 케이블 시공업체들에게 RFP(Request For Proposal)를 날리면 서로 먼저 오겠다고 난리일 것이다. 그게 그렇게 대단한 독점의 시장이 아니다.



2.

아름다운 잠실 석촌호수 전경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또 제2 롯데타워와 같은 초고층 빌딩을 두고, 여기에는 ‘한국 기술’이 없다고 말한다.


기술은 축적되는 것이다. 책상머리에서 오래 앉아 있다가, 어느 한 순간 고심한다고 뚝딱하고 나오는 게 아니란 말이다. 이러한 롯데월드타워를 우리가 만듦으로써 시행착오를 거치며 특허도 나오고 신기술도 발명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100층 넘는 건물을 지으며, ‘이게 사실 다 외국기업의 손에 지어진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말이다.


아무리 콘크리트 치는 것이 무식해 보인다 할지라도 지상 520m 상공으로 콘크리트를 쏘아 올릴 수 있는 초고층 압송기술은 쉬운 일이 아니다. 롯데건설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터파기 후 매트 기초 공사시 초저발열 콘크리트 배합 기술도 특허를 냈다고 한다.


아울러 123층짜리 공사를 수행하는 CM:Construction Management 기술의 축적은 어디 돈 주고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이뿐만 아니라 국내 400여 협력업체들이 이 롯데월드타워 시공에 참여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이 롯데월드타워라는 Track record로 다른 나라에서 또 자신들의 기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건설은 경험을 돈 주고 사는 산업이다. 아무리 똑똑한 엔지니어가 잔뜩있는 회사라도, 1km짜리 교량, 100층짜리 건물을 지은 경력이 없다면 그 어느 발주자라 할지라도 대형 구조물은 그 회사랑 계약하지 않는다. 이게 곧 LL;Lessons Learned로 이어지고, 이렇게 축적된 LL이 기술력이 되는 구조다.


본 건물을 설계했다는 Arup이라는 회사는 영국회사이다. 건물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혹자는 이러한 회사를 극찬한다. 그래서 내가 한번 이 회사의 재무성과를 찾아봤다. 2014년 기준으로 매출가 1,048백만 파운드(약 1조 7천억원), 법인세 차감 전 이익이 40.4백만 파운드(약 657억원)란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3~4%인데, I/S상에 법인세 차감전 들어오는 기타금융소득, 건물 및 자산 운용리스가 상당해서 순이익의 2.94%p정도를 차지한다. 그런 부수적인 수업이 없다면 해당 사의 순이익률은 고작 2.3%이다.


이러한 순이익률을 보고 우리네 건설회사들은 원천기술을 얻기 위해 무리하게 국제설계시장에 진입해야 할 것인가? 심지어 이 Arup과 같은 회사는 국제건설 설계시장 랭킹에서 14위에 불과하다. 이러한 초고층건물을 설계할 줄 아는 회사는 미국의 AECOM이나 네덜란드의 ARCADIS, 영국의 MOTT MACDONALD, 덴마크의 RAMBOLL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만큼 많이 존재한다.

초고층건물은 가뭄에 콩나듯 하나씩 짓는 프로젝트다. 한정식이 비싸면 맥도널드를 먹듯이, 우리가 A부터 Z까지 다 연구해서 하려면 시간과 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면 저런 영국/미국 업체들 기술을 사다 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외국 기술을 가져다 해저터널도 짓고 초고층교량도 짓다 보면 기술이 생기는 것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그냥 기업들만 탓한다고 없던 기술이 생겨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수익이 많이 나지 않는 레드오션에는, 굳이 한국기업들이 억지로 후발주자로 진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괜히 이러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겠다고 회사를 일으켰다가, 건설경기 등락에 따라 나쁘게 진행되면 파산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 공학은 그렇게 산업의 일부여서, 비용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공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최적화(Optimization)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적은 비용을 가지고 ‘원하는’ 품질의 구조물을 만드는 것. 사실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건설에 굳이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이아몬드나 대리석으로 모든 구조물을 만들면 아주 안전하면서도 견고한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비용이 급격히 상승하여, 건물 100채 올릴 돈으로 1채도 못 지을 수 있다.


여기서 최상의 품질은 물론 목표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또 최선은 아닐 수 있다. 예컨대 콘크리트의 강도는 높으면 높을수록 좋지만, 굳이 고강도 콘크리트가 요구되지 않는 단독주택에서는 저강도 콘크리트로 비용을 낮추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현수교 주탑이나 해저터널의 경우엔 철근중량을 콘크리트 부피대비 막 20%~30% 씩 넣어 아주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단독주택에 굳이 그렇게 많은 철근을 집어넣어 노무비와 재료비를 상승시킬 이유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도 그 공학적 설계를 통해 원하는 품질에 최적화된 재료의 비율을 찾는 것이 공학의 목적중 하나이다.



3.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며, 산업의 생태를 이해하지 않으며 원천기술만 주장하는 것은 공학적 사고방식이 아니다. 하물며 순수과학도 자신의 연구에 가성비를 따져가며 연구를 할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인류의 어떠한 부분이 도움될지 말이다. 그게 냉전시대 잘난척을 위해 로케트를 달나라로 쏘는 일이건, 인류의 지적호기심을 위해 명왕성을 발견하는 일이건 말이다.


부디 그 원천기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버렸으면 좋겠다. 돈이 되면 할수도 있고, 돈이 안되면 안 할수도 있는 것이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이다. R&D 세제혜택을 통해 우리는 기술을 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R&D 세제혜택도 결국 국가가 받아야할 세금을 안 받는 것이므로, 꼭 필요한 곳에 쓰여야 할 것이다. 부디 눈먼 돈이라고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식으로 이어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2017년 3월, 일본 기업 도시바의 이사회는 미국 원전 자회사인 웨스팅하우스일렉트릭(WH)의 파산법 신청을 승인했다고 한다. 이 회사는 세계원전의 절반을 지은 그 원천기술이 있는 회사라 한다. 도시바는 같은 해 3월 14일 발표한 재생계획에서 해외 원자력사업을 철수한다는 방침을 비쳤다.


그런데 당시 도시바의 주가는 오히려 24일 7% 넘게 급등했다고 한다. 시장의 판단은, 도시바가 원천기술을 포기한다는 것이 회사의 리스크를 감소시켜, 더 미래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봤던 것이다.


그렇게 원천기술의 가치와 시장의 시각은 크게 상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회사가 망하면, 그 기술이고 뭐고 다 필요없게 된다. 그게 우리네 사는 이 시장의 먹고사니즘의 기본원칙이다.


원문: 퀘벤하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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