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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오션이라고? 다이슨 이전에도 청소기는 있었다

조회수 2019. 4. 22. 16: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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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무심하게 버려진 곳에서 싹이 튼다.
출처: Leaderonomics.com
정말 이럴까?

종종 이야기하지만 블루오션은 사실 말장난에 가깝다. 새롭게 뜨는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건 ‘잘하면 잘된다’는 이야기랑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레드오션이 나쁘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요식업 폐업률이 얼마다, 수년 내 대부분이 망한다 하지만 여전히 창업자들이 줄을 잇는다. 창업이 쉬워서? 프랜차이즈로 내면 전문지식 없이 간단하게 창업 가능하니까? 일정 부분은 맞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놀랍게도 지난 10년간 요식업은 연평균 4.5%씩 성장해왔다. 11년도 약 60조였던 시장은 올해 80조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흔한 농담으로 월급 빼고 다 오른다고 하지만, 통계적으로 가계 소득은 지난 10년간 36%가량이 증가했다. 12여 개의 가계 소비 부분 중 소득에 준하는 수준으로 증가한 게 몇 개 안 되는데 그중 하나가 외식 지출이다. 35% 증가로 거의 소득 증가와 비례하고 있다. 항상 뉴스 지면에선 통신비, 교육비 문제가 화두가 되지만 막상 해당 두 부분은 7%, 17% 증가에 그쳤다. 소득 증가에 비하면 도리어 비중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약간 이야기가 샜는데, 흔히 레드오션이라 부르는 시장은 성장이 정체되어 있어야 성립이 가능한 개념이다. 성장하는 시장에서 수요의 증가는 경쟁을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다이슨 이전에도 청소기는 있었다


밥솥을 만들어 성공한 쿠쿠나 최근 청소기, 드라이기 등으로 빅 히트를 치는 다이슨은 어떨까? 집에 청소기, 밥솥 없는 집이 있을까? 밥솥이나 청소기가 직관적으로 볼 때 성장하는 시장이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세상은 항상 생각만큼 단조롭지 않고 미시적으로 다가갈수록 놓쳤던 새로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쿠쿠 이전에도 밥솥은 있었고
다이슨 이전에도 청소기는 있었다. 하지만…

2000년 전국의 가구는 약 1,450만이었다. 15년엔 약 1,900만 가구로 약 31%가 폭증했다. 이는 2000년 4,770만에서 15년 5,150만으로 약 8% 증가에 그친 인구 증가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밥솥, 청소기는 생필품이다. 누구나 밥을 먹고, 청소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제품은 인구가 아니라 가구에 종속된다. 염연히 성장하는 시장이다.


나이든 노인도 과거 언젠가 꽃다운 젊은 시절이 있었듯, 오래된 모든 제품은 과거엔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시절이 있다. 전기 청소기만 하더라도 제품화된 지 무려 100년이 훌쩍 넘는다. 하지만 모든 산업은 시장 도입과 성장을 거쳐 경쟁이 심화되면서 부침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대중화라는 미명 하에 필수 기능을 제외한 군더더기는 모두 빠지고 최소한의 마진만이 남는다. 일반적인 산업의 순환 사이클이다.


앞서 언급했듯 가구의 소득은 꾸준히 증가하고,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길 원하는 소비자 역시 증가했다. 과도한 경쟁에 의해 투박한 디자인과 필수기능에만 치중한 중저가 상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을 때, 디자인, 기능, 편의성 면에서 탁월한 그리고 그 브랜드가 소셜 화폐로서 자신을 포장 시켜준다면 왜 마다하겠는가.


작년에도 블랙프라이데이 최고 인기 상품은 다이슨 청소기였다. 10만 원 남짓이면 구매할 수 있는 무선 청소기를 두고 왜 대여섯 배 이상의 비용을 들여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가? 다이슨의 성공은 바로 그런 곳에서 존재한다.

이쯤에서 읽고 가는 다이슨 레전드 후기.jpg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60년대 쌀 부족으로 널리 장려되었던 분식은 청결함과 신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며 상품 가치를 높였고, 십수년간 할인에 할인을 거듭하며 내리막길을 걸은 피자 역시 정크푸드라는 오명을 벗으며 가치 상승을 만들어냈다.


시장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성공은 남들이 주목하는 곳보다 무심하게 버려진 곳에서 싹이 트기 마련이다.



레드오션이 나쁘지만은 않다니까?


예전 얘기를 몇 자 해볼까 한다. 98~99년도에 나는 친구와 함께 친구 집에서 머드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머드 게임을 모르는 이들에게 간단히 풀어 설명하자면, MUD(Multi User Dungeon)의 약자로 그래픽이 아닌 텍스트 기반의 게임이다.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mmo rpg 게임의 효시라 할 수 있는데, 머드 게임은 그런 건 하나도 없고 텍스트만 나온다.


이동은 동서남북으로 이뤄졌는데, ‘동’ 자를 치면 동으로 가고(이것도 나중엔 ㄷ만 쳐도 되게 고쳤다) 몹이 나타나면 ‘침을 뚝뚝 흘리며 광기어린 눈빛의 오크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라는 식으로 모든 것이 글로 설명된다.

대충 이렇게 생겼다. 최초의 국산 머드게임으로 불리는 <단군의 땅>

94~95년도엔 pc통신사의 주 수입원 중 하나였을 정도로 빅히트를 쳤지만, 인터넷의 대두와 <바람의 나라>, <리니지> 등 온라인 게임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나도 거의 끝물에 개발을 하게 된터라 큰 기대보다는 직접 게임을 만든다는 데 의의를 두었다. (하루 한 끼 근근히 먹을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미화된다ㅎ)


당시엔 스타크래프트의 성공과 함께 PC방이 막 태동하던 때였는데, 근처 한양대 앞에 ‘한게임PC방‘이란 게 있었다. 우리 게임의 이용자가 그 PC방 알바여서 유저 정기 모임에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훈훈한 시간을 가지곤 했다.


혹시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당시는 아직 한게임이 생기기 전이었고 그 PC방은 유니텔을 나온 카카오의 김범수 씨가 차린 것이다. 와이프는 카운터를 보고 김 의장 본인은 PC방 구석 골방에서 무얼 하는지 얼굴도 볼 수 없었다. 알바 하던 동생에게 “니네 사장은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어보면 “몰라, 테트리스랑 고스톱 만든다고 골방에서 나오지도 않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도 그 PC방을 자주 갔는데,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다 보면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간혹 골방문을 열고 조르르 나와서 컵라면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출처: 나무위키
그 아저씨는 훗날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데 촌스럽게 테트리스, 고스톱이 뭐람?’이라며 속으로 무시했지만, 똑같은 레드오션에서 나는 시원하게 망했고 그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이뤘다.


운, 기술, 경험, 타이밍, 접근 방향, 시장 상황 모든 것이 결부된 결과겠지. 이를 개인이 모두 알고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레드오션 얘길 하니 문득 생각난 옛날 일이다.


원문: 내일의죠, 탐구하고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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