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트가 된 이유

조회수 2018. 1. 19. 15: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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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착한 곳이 바로, 퀀트이다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꿈은 비교적 단순하고 원초적이었다.


부, 명예, 지식.

어렸을 적 아버지의 무리한 창업과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외식이나 여행도 하기 힘들었을 때, 나는 적어도 부모님께서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시켜 드릴 수 있는 부자가 되고 싶었다.


월스트릿에서 면접관이 되어 면접을 보다 보면 가장 흔히 하는 질문이 ‘왜 월가, 금융계로 오고 싶냐?’이다. 대부분 좋은 핑계를 대지만, 결국 가장 솔직한 답변은 ‘부자가 되고 싶어서’이다.


아마 대부분의 퀀트가 되고 싶어 한 사람들도 짐 사이먼이나 켄 그리핀 같은 거물급 퀀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부자가 되고 싶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나처럼.

이 바닥 대부분이 그렇듯, 나는 공대, 그중에서도 컴퓨터과학을 공부하였다. 컴퓨터과학을 했던 많은 친구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게임과 컴퓨터를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일곱 살 때부터 아버지의 1990년형 매킨토시를 장난감 삼아서 간단한 게임과 포켓몬 웹사이트를 만들며 동네에서는 가장 컴퓨터를 잘 하는, 컴퓨터 천재가 되었는데. 그 이후에 한 번도 게임 프로그래머의 꿈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고서 막연히 컴퓨터공학과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컴퓨터 대회를 준비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겪었던 경험은 충격적이었다.


대학원 과정에서나 배우는 어려운 알고리즘과 논리를 척척 푸는 초등학생, 이미 책이나 인터넷에 있는 문제들을 섭렵해서 서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만들어서 던져주는 학생, 자신이 사용하는 툴을 크래킹 해서 고쳐서 쓰는 학생 등. 최고가 될 줄 알았던 나는 식사시간에 대화에 끼기도 힘들었다.


굉장한 좌절감이었다. 내가 며칠에 걸쳐서 생각해내는 알고리즘을 한 십오 분 만에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서 질투를 넘어서 경외감이 들었다.


마치 살리에리가 수정한 자국이 없는 모차르트의 악보 초본을 보는 기분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었지만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이런 마음에 더 혼란을 주었다. ‘한국에서 IT를 전공하면 40살 치킨집 직행이다.’ ‘박봉에 야근에 짧은 정년까지 3D를 넘어서 4D 업종이다.’ ‘실리콘 밸리가 아니라면 답이 없다.’


그래도 내 인생의 전부였던 컴퓨터를 포기할 순 없었기에 이를 악 물고 유학을 준비했고 다행히 좋은 조건으로 미국을 왔지만 날 맞이한 건 더 많은 천재들이었다.


‘어느 분야든 최고가 되면 돈은 따라오게 된다’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이 오히려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 바뀌었다.


결국 학교를 쉬며 소위 말하는 전문직인 의사, 변호사, 변리사, 공무원 등등 생각해보지 않은 게 없을 정도이다. 생물책인 호랑이 책도 사고 LSAT 모의고사도 보고. 그렇지만 프로그래밍보다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최고의 퀀트 중 하나인 짐 사이먼스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 기사에서 퀀트에 대한 짧은 소개를 보았다.


퀀트란 고도의 수학ㆍ통계지식을 이용해서 투자법칙을 찾아내고 컴퓨터로 적합한 프로그램을 구축해서, 이를 토대로 투자를 행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Quantitative의 줄임말이다.

나는 이 한 줄에 매료되었다. 내가 즐거워하는 논리와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투자를 행한다니 얼마나 쿨한 일인가.


부자도 될 수 있고, 멋있었고, 정치 경제 역사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는 나에겐 최적의 직업이었다. 그 날 이후로 퀀트 서적과 퀀트에 대한 인터넷 자료를 밤을 새 가며 찾아보기 시작했다.



퀀트란 무엇인가?


이미 퀀트를 소개하는 글은 여기저기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간단하게 소개할까 한다.


수학적 모델로 무장한 금융공학 ‘첨병’ – ‘현대판 연금술사’ 금융 퀀트의 세계


전통적으로 거래나 투자를 할 때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회사의 신사업이 유망해 보인다던가, 어떤 회사의 CEO가 믿음직하다던가, 어느 지역이 개발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던가.


앨론 머스크의 저력을 믿고 테슬라에 투자한다던가, 나처럼 주토피아의 가능성을 보고 디즈니에 투자한다던가 이런 것이 좋은 예일 듯 싶다. 이런 것을 펀더멘탈(Fundamentals) 투자라고 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다변화되고 글로벌화되면서 다양한 금융상품들이 등장하고 복잡한 경우의 수가 추가되기 시작하였다. 워낙 복잡한 상품들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금융계 사람들은 쉽게 가격을 계산해내지 못 했고 그저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통해서 거래하였다.


이때에 고도의 수학과 통계로 입자의 움직임을 모델링하던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복잡한 파생상품의 가격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파생상품이란 원래 있는 상품의 움직임에 따라서 가격이 변화하는 상품인데, 이 움직임을 알아내는 과정이 물리학의 입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과 굉장히 비슷했다.

커피 입자가 녹는걸 Brownian Motion을 이용해 표현한 모습

불확실한 움직임을 확률 분포를 이용해 표현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가격을 계산하였다. 1970년, 미국이 아폴로 계획 종료를 선언하고 나서 NASA에서 일하던 수많은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실업자가 되었는데 이때 많은 이공계 박사들이 일자리를 찾아 월가로 발길을 옮기면서 ‘퀀트’라는 직업이 탄생하게 된다.


퀀트는 Quantitative(계량적인)이라는 뜻의 줄임말로 기존의 감에 의존한 것이 아닌 계량화된 수치를 이용하는 투자가라는 뜻이다. 다양한 파생상품이 인기를 끌게 되고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거래가 정착하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우리는 주식·채권·통화·상품선물 등 모든 금융상품에 투자합니다. 부동산에는 (투자) 안 해요. 한마디로 유동성(liquidity)에만 투자하는 거죠.

주식시장을 예로 들어 보죠. 어떤 기업의 CEO가 바뀌었어요. 그런데 그 주식이 뛰는 겁니다. 그러면 그 주식의 주가는 다른 주식에 영향을 미치죠. 다른 주식은 또 다른 주식에 영향을 미치고….

분자 간 연쇄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것과 같아요. 우리가 하는 일은 이 변화 과정에서 전체 움직임을 추적하는 겁니다. 통계학적으로 말하면 응집성(coherence) 추적이죠.

개별주식의 주가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그 힘을 찾아내는 겁니다

.–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CEO 짐 사이먼스,
2006년 조선일보와 인터뷰 중


일반 대중에게도 알게 모르게 잘 알려진 퀀트가 있는데, 퀀트의 대부 ‘에드워드 소프’이다.


카지노와 월가를 정복한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

그는 시카고 대학 경제학과 교수였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카지노 룰렛이 어디로 들어갈지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고 그것을 웨어러블(Wearable) 컴퓨터로 계산하는 시도를 해왔다.


이는 생각보다 어려워서 실패하였지만 이내 소프는 블랙잭을 분석해서 블랙잭의 승률을 52%까지 끌어올리는, 그 유명한 카드 카운팅이라는 것을 시작하였다. 그는 카지노에서 승승장구하였고 유명한 베스트셀러인 ‘딜러를 이겨라’라는 책도 발간하였다.


하지만 거듭되는 승리로 라스베이거스에서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월가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는 그 당시에 어려웠던 파생상품의 가격을 예측하려고 노력하였다.


그가 사용한 방식은 주가의 움직임을 모든 펀더멘탈과 다른 정보를 배제하고 완전히 무작위로 움직인다는 랜덤워크(Random walk) 이론을 이용해서 주가가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고 그걸 바탕으로 기댓값을 계산하였다.


이를 통해서 그는 큰 돈을 벌게 되고 금융공학이란 트렌드를 만들면서 많은 수학자들이 퀀트로 활약하게 되는 초석을 만들었다.


소프와 카수프는 실제로 워런트의 ‘차익거래(Arbitrage)’로 수익을 냈습니다. 차익거래는 가격이 서로 다르면서 관련 있는 두 종류의 유가증권이 있다면, 이들 가격이 결국 같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가격이 싼 곳에서 샀다가 가격이 비싼 곳에서 파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이런 형태의 거래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지만, 소프는 이전에는 누구도 알기 힘들었던 워런트의 가치와 워런트 투자에 필요한 기초주식의 보유량을 계산해 수익을 낼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노하우를 풀어 ‘시장을 이겨라: 과학적인 주식시장 시스템(Beat the market: A scientific stock market system)’이라는 책을 출간했고, 이 책은 가장 영향력 있는 투자서로 자리 잡았습니다.

탁월한 투자 시스템을 탄생시킨 에드워드 소프는 자금을 조달받아 1969년 컨버터블 헤지 어소시에이츠라는 헤지펀드(Convertible Hedge Associates)를 설립합니다.

후에 프린스턴/뉴포트 파트너스(Princeton/Newport Partners)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금융시장이 대혼란을 겪는 시기에도 꾸준하게 고수익을 올립니다.

1970년 S&P 500 지수는 5% 하락했지만 프린스턴/뉴포트 파트너즈는 3%의 수익률을 올렸고, S&P 500 지수가 26% 하락한 1974년에는 9.7%의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출처 : 한경 비즈니스)

소프처럼 정규분포로 가정하고 계산하는 것은 2016년인 현재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때문에 정규분포를 벗어난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검은 백조(Black swan :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사건)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도 있다.


유명한 소설 ‘MIT 수학 천재들의 카지노 무너뜨리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21’에서도 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퀀트의 현재


장황하고 멋있게 이야기하였지만, 사실 요즘 월가의 퀀트가 하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전통적으로 ‘퀀트’라 하면, 펀더멘탈 투자자와 다르게 위 사람들처럼 파생상품의 가격을 모델링해서 그를 바탕으로 투자를 하고 돈을 버는 이공계 박사를 칭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 소규모로 하는 투자자나 증권 영업을 뛰는 세일즈맨들도 쉽게 가격 모델 프로그램이나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사용할 수 있다.


예전처럼 고도의 수학 능력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그저 클릭 몇 번이면 기댓값과 분포를 보여준다. 부동산 가격, M&A, 펀더멘탈 투자 등등 모든 부분에서 모델이 사용되게 되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도 모델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모델들은 성배(Holy Grail)가 아니게 되었다.

파생상품의 가격 모델 또한 수없이 발전을 거듭하여서 거의 안정화가 되었기 때문에 크게 예상 가격을 벗어나서 거래를 하는 경우도 없어졌다.


즉 파생상품 가격 계산을 통한 큰 돈을 버는 시대는 지났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나 모건 스탠리 같은 은행의 데스크 퀀트는 가끔 오는 요구에 맞춰서 변수만 살짝 바꾸고 프로그램을 돌리는 그저 편하고 괜찮은 돈을 버는 직업이 되어가고 있다.


월가에서는 트레이더들을 위해 모델을 보완하거나 개발을 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퀀트가 부르기 시작했다.


거래소의 흐름을 파악하여 적절한 시기에 거래를 쏘는 역할을 하는 ‘알고 트레이더’도 퀀트이며, 현재 포트폴리오와 트레이더들의 거래가 위험한지 수식을 통해 알아보는 ‘리스크 매니저’도 퀀트이고,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예측 분포도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람도 ‘퀀트’라 불린다.


예전에는 웹사이트를 개발하든 OS를 개발하든 전부 그냥 개발자였지만 이제는 굉장히 세분화된 것처럼, 퀀트도 세분화되고 금융 전반에 분포되어있다.


퀀트의 미래는 어떨까? 2000년대 중반까지는 가격차이를 이용해서 거래하는 차익거래를 이용하는 퀀트 전략이 유행이었다면, 2000년대 후반부터는 방대한 컴퓨터와 빠른 회선을 이용한 초단타매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나도 초단타매매 업계에서 일하고 있고 이는 추후에 더 자세히 글을 쓸 예정이다.


이제는 초단타매매도 조금씩 하향세이고, 요즘은 빅데이터와 기계학습, 딥러닝을 이용한 인공지능 트레이딩으로 변화해가는 추세이다.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지만, 몇몇 회사들은 실험적인 투자 전략으로 성공을 하는 경우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도 기계학습을 이용한 전략을 이것저것 만들어 보고 있는데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시장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개인 투자자들도 점점 똑똑해지는 흐름을 보았을 때 퀀트는 점점 더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올 것이라 생각한다.


원문: 권용진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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