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절망이 이끄는 죽음 : 의료수가와 우울증의 경제학

조회수 2017. 11. 28. 1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결국, 정신보건의료 체계가 선진국화되어야 한다

단순히 '살기 힘들어서' 자살율이 높은 것일까


인간의 Mental Disorder는 경제적인 문제와 관련이 크다. 특히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많은 비숙련노동자들의 경제적 수준이 중하층 이하 또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높아지는 지대로 인해 이들이 모여드는 지역이 게토화되면서, 특정 지역의 정신보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많은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이다. 특히 OECD에서 압도적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압도적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인들은 단순히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그렇게들 많이 목숨을 끊는 것인가? 우리 생각과는 달리 그렇지 않다. 여기 영국 북서부의 Blackpool이라는 도시와 대한민국 서울을 놓고 예를 들어 보자.

한때는 영국의 인기 휴양지였으나 현재는 쇠락해가고 있는 Blackpool의 해변 풍경.

Blackpool은 영국의 주요 공업지대인 북서 잉글랜드 지방의 주요 휴양지였으나, 최근에는 완전히 쇠락하여 빈곤층이 도시 거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도시의 소득은 영국 최하이며, 자살률은 영국 최고 수준이다. 서울과 비교하면 어떨까?


Blackpool의 명목 1인당 소득은 2015년 기준 17,500파운드로 달러 환산 시 약 23,000달러가량이다. (출처 : Lancashire County Council) 서울의 경우 2016년 기준으로도 명목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상회한다. 그러나 자살률의 경우, Blackpool이 인구 10만 명당 16.6명 선임에 비해 서울은 인구 10만 명당 20명이다. (출처 : JSNA Blackpool 및 대한민국 중앙자살예방센터)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대도시이자 경제 중심지 중 하나인 서울은 왜 쇠락한 영국 북서부의 소도시보다 자살률이 높은 것일까?



정신보건의료 체계가 선진국화되어야 한다


그 원인은 결국 돌고 돌아 보건의료 체계다. 정신질환에 대한 정신과 처방 규제가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까닭에, 약물치료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인구 1,000명당 항우울제 소비량이 2013년 기준 88DDD (Defined Daily Dose) 이지만 한국의 경우 고작 20DDD에 불과하다. 영국 국민건강보험(NHS)의 2017년도 자료에 의하면 NHS가 2016년 항우울제 처방 급여로 지출한 비용은 전체 급여비용 92억 파운드 중 3% 수준인 2.67억 파운드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통계조차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였냐면,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 정신질환에 시달리기 쉬운 취약계층에 대한 한국의 정신과 외래진료의 수가체계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올해 3월 전만 해도 국내 정신과의 외래진료 의료급여 수가는 약제비/조제료/상담비 등을 모두 포함하여 2008년부터 8년 넘게 '정액제로' 2,770원이었다. 당장 생각하기에는 정신적 문제를 겪는 사람이 많으니 정신과 외래수가가 지속적으로 낮으면 이것이 복지가 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혈액투석의 수가체계도 이 모양이었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저소득층 위주로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은 늘어만 가는데, 병원의 입장에서는 수가가 도무지 조정되지 않으니 결과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약물의 처방과 진료시간의 축소를 꾀하게 된다. 따라서 다수 종류의 약물이 경쟁할 구도도 사라지고, 환자가 행동치료나 인지치료, 상담치료 등 다양한 치료를 받을 기회도 사라지게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의 의사들이 탐욕스럽거나 특별히 비도덕적이어서가 아니다. 그저 의료시장의 균형이 그런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의료 체계는 이 말도 안 되는 균형을 조금 더 선진국화하는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다행히 지난 3월 7일 정부에서는 정신과 외래진료 수가를 행위별 수가로 현실화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항우울제의 '60일 급여' 문제와 정신과와 신경과의 대립 등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한국인들의 높은 자살률 및 정신보건 문제는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들어서라기보다 의료체계의 문제로 인해 치료 인프라에 접근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살 말고는 할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다. 우리가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하면, 우리 주변에서는 계속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들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