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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덕에 쉽게 쓴 카피

조회수 2017. 11. 27. 18: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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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맛있는 커피는 종류에 상관없이 '오늘 처음 마시는 커피'

일요일 밤이면 출근의 의미를 찾는 다양한 이유를 하나둘 끄집어 내본다. 회사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월요일 아침 6시 15분에 일어나 정해진 어딘가로 ‘반드시’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얼마 전 SNS에서 본 공감 일러스트에서 매일 아침 이불 속에서 되뇐다는 그 말 ‘아, 반차 낼까?’를 나도 거의 매일 아침 경험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 번은 내가 출근하고 싶은 이유는 사무실 내 책상에 앉아서 마시는 따뜻한 믹스 커피 한 잔 때문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출근해서 마시는 믹스커피 한 잔을 사랑한다.

커피 맛은 잘 모른다. 어디 커피가 맛있다는 이야길 들어도 선뜻 와 닿진 않는다. 특히 아메리카노는 그냥 쓴 약 같다.


그나마 구분할 수 있는 건 스타벅스 아이스라테와 커피빈 아이스라테의 차이 정도랄까? (얼음 크기 말고 맛!) 그만큼 프랜차이즈 커피에 길들여져 있고 그것도 어쩌다 가끔일 뿐 하루 2잔 이상 꼬박 마시는 맥심 믹스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믹스커피 한 잔은 아침 식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출출할 때 마시면 괜히 든든해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허기질 때 더 마시고 싶어 지는 걸까?) 그리고 당연히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준다. 바로 각성이다.


하루의 시작은 역시 카페인이 들어가야 제대로 스타트를 끊을 수 있지 않은가? 3살짜리 내 아들이 눈도 안 뜬 상태에서 엄마보다 ‘헬로카봇’을 먼저 외치는 것처럼 그건 일종의 자각이다.


커피 광고 카피만큼 (오글거리고) 다양한 것도 없다. 그만큼 맛은 다 거기서 거기고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서 어필해줘야 하는 게 커피이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커피를 찾을까? 어떤 기분일 때 커피가 떠오를까? 커피 한 잔을 마셨을 때의 마음은 어떨까, 등등 일반적으로 커피는 맛보다 상황을 많이 드러낸다. 설탕과 프림 대신 ‘봄을 탄다’는 말을 넣은 맥심 커피의 카피가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봄을 탄다, 는 중의적 의미로 봄을 탄다 즉 여자들이 봄 탄다 할 때의 그 뜻도 있고 위에 쓴 것 같이 설탕과 프림을 탄다의 그 탄다는 의미도 된다.


이밖에 커피를 열정이라고 표현한 T.O.P도 있고 ‘한잔의 커피는 한 번의 여행’이라고 쓴 카피도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라고 한 카누도 빼놓을 수 없다. 커피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는지 대부분 알 것이다.


내가 믹스 커피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맛도 있겠지만 쉬워서다. 봉지 뜯고 쏟은 다음 물 부으면 끝. 쉬운데 내가 원하는 맛. 커피가 어려운 나로선 커피가 쉽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번 문장의 소설은 백영옥 작가의 ‘애인의 애인에게’이다.

소설 속 문장:

그것은 때때로 내게 식어버린 에스프레소에 커다란 각설탕 하나를 넣어 스푼으로 휘저어 전부 녹이는 일처럼 느껴졌고, 뉴욕 지하철이 서울 메트로만큼 쾌적해지길 바라는 일만큼 불가능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 중에서>

이 단락에서 쓰고 싶은 부분은 ‘그것은 때때로 내게 식어버린 에스프레소에 커다란 각설탕 하나를 넣어 스푼으로 휘저어 전부 녹이는 일처럼 느껴졌고’ 까지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으나 식은 에스프레소에 각설탕을 넣고 휘저어 전부 녹이는 일은 나로선 쉬운 일처럼 여겨진다. 조금 나른해 보이기도 하고.


나는 새로운 뭔가를 경험하기보다 익숙한 걸 계속 쓰는 편이다. 한마디로 모험심이 없다는 건데, 믹스 커피를 마시는 일이 쉽고 맛있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쉬웠으면 좋겠다. 가끔은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 내가 발맞추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도 든다.

 

완성 카피:

쉬운 출근, 쉬운 커피
뜨거운 커피에 각설탕 하나를 넣고
휘휘 저어 녹이는 것처럼
출근이 쉬웠으면 좋겠다

카피를 쓰고 나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첫 출근. 아침부터 종종거렸을 신입사원이 잠깐 짬이 나서 커피 한 잔을 들고 옥상에 나와 목을 죄어오던 단추 하나를 탁 푼다. 그에겐 오늘 하루가 얼마나 어려울까? 모르는 것 투성이에 어려운 사람들뿐일 텐데.


휘휘 젓지 않아도 툭 던져 놓으면 알아서 녹는 커피의 각설탕처럼 그의 일이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장 생활을 오래 할수록 출근의 부담이 덜한 건 내가 하는 일이 조금씩 쉬워지고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도 그렇고.


그래서 바디 카피는 그 신입사원이 툭 전지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카피처럼 어떤 모습이 정확히 그려지는 카피는 효과가 좋다.


텍스트만 봐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까만색 커피에 빠진 하얀 각설탕이 뱅글뱅글 돌면서 점차 사라지는 모습이 그려지지 않나? 이런 시각적 텍스트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글이 아닌 이미지로 각인되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바디 카피에서 ‘출근’ 부분을 ‘내 일’로 바꿔도 좋다. 커피 광고도 시리즈마다 카피가 조금씩 다른 것처럼. ‘당신’도 좋을 것 같고 ‘인생’도 어울리겠다. 그러고 보니 커피는 참 많은 걸 품을 수 있어 좋구나.


쉬운 커피 때문에 쉬운 카피가 써졌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이언 매큐언의 소설 ‘넛셀’에 나오는 문장처럼 가장 맛있는 커피는 종류에 상관없이 ‘오늘 처음 마시는 커피’가 아닐까?


원문: 이유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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