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제시간에) 못하는 이유

조회수 2017. 11. 15. 18: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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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침대 왜 이렇게 가까워

브랜딩을 하다 보면 디자인을 겁나 해야 합니다. 회의실에서 나온 모든 얘기를 거의 다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되죠. 로고부터 슬로건, 컬러, 제안서, 소개서, 리플렛, 브로슈어, 책자, 굿즈, 콘텐츠, 배너, 옥외광고 뭐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브랜딩 작업과 디자인은 사실상 뗄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생각에서 시작해 눈으로 확장되고 경험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 브랜딩이니까요. 

이뻐 보이지? 난 눈물이 나요… 하아…ㅠㅠ 얼마나 힘들어쓰꼬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일 좀 해보려고 의자에 앉았는데 이건 뭐 디자인이 너무 안 되는 거야. 갑자기 의자가 너무 푹신하다거나 뭔가 불편하다거나 디자인 요정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거나 급똥악마가 찾아온다거나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디자인할 줄 몰라서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능력자죠. 모두 머릿속에 크리에이티브 요정 한 마리 정도는 지니고 있는 똘똘이들입니다. 그럼에도 도대체가 디자인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단 말입니다. 이런 상황이 닥쳐버리면 데드라인 직전까지 육신과 나의 소중한 마이헐트가 만신창이가 되면서 머리만 쥐어뜯고 하염없는 공허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합니다. 사실 우스운 것들이지만 무시무시한 것들이죠.


지금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디자인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왜 디자인이 안 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것을 정리해보았죠. 오늘은 우리의 크리에이티브 요정을 속박하는 잔혹한 현실을 알아보겠습니다.

하아…디자인 개자식

1. 의자가 너무 불편해

읏챠

갑자기 의자가 불편해집니다. 사실 의자의 탓이 아닙니다. 어제까지 편했던 의자가 왜 갑자기 불편해졌을까요. 물론 날 자꾸 째려보는 옆자리 대리님의 의자 바꿔치기 공격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어요. 그럼 혹시 내가 하룻밤 만에 체형이 바뀐 걸까요?


아니요. 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입고 왔던 팬티조차도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해결책: 일이 끝나면 다시 편해집니다.


2. 침대가 너무 가까워

위허매

침대는 위험한 존재입니다. 인간에겐 등 센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신생아 때부터 간직하고 있는 것이죠. 무언가가 등에 눕혀지거나 엄마 등에 매달려있어야 잠이 오는 것입니다.


당연히 무언가가 등에 기대지는 순간 나른해지는 것이 양서류가 지상에 올라온 이래 생물의 DNA에 새겨진 본능인데, 그것을 거스른다는 것은 거대한 자연의 섭리를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일은 우리에게 있을 수 없습니다.

해결책: 카페로 갑시다. 카페에서 일이 잘되는 이유는 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핀터레스트가 너무 재밌어


그건 악마 같은 사이트야. 볼수록 재밌다고. 심지어 예전에 봤던 거 또 봐도 재밌음. 레퍼런스 찾으러 갔다가 헤어나오지 못하는 광활한 네트워크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죠.

해결책: 와이파이 신호가 2개 정도 뜨는 곳에서 작업합시다. 이미지 로딩이 답답해지도록.


4. 배가 고파

먹고만 있어…

디자인은 극도의 크리에이티브 작업이므로 수많은 당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의 당은 간과 허벅지 단일 근육 하부에 저장되어 있는데 두뇌 활동이 활발해지기 위해선 이 당을 분해해서 원료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일을 할 때 ‘당이 떨어진다’는 말은 일리가 있는 얘기입니다. 


근데 디자인할 땐 그냥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제 생각엔 그냥 일하기 싫어서인 것 같습니다.

해결책: 참쌀선과…! 참쌀선과를 먹읍시다!


5. 음악이 맘에 안 들어

노동요는 필수건만

디자인할 때 음악은 중요합니다. 물론 케바케지만, 대부분은 자신만의 노동요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카페에서 자꾸 시끄러운 음악, 싫어하는 종류 등이 꾸준히 나오면 아주 환장하겠습니다.


이어폰이나 헤드셋을 끼고 일하는 것도 1-2시간이지 나중에는 귀가 아리고 땀 차서 못 끼고 있겠더라고요. 노동요의 선정과 청취는 크리에이티브 요정을 편케 해줍니다. 

해결책: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삽시다. 놀라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팀장님 얘기도 안 들림.


6. 조명이 맘에 안 들어

눈부셧!

조명이 노래서, 조명이 하얘서, 조명이 밝아서, 조명이 어두워서… 모든 조명이 다 거슬립니다. 햇빛이 강하면 노트북이 잘 안 보이고, 햇빛이 약하면 졸리고… 

해결책: 노란 카페!… 노란 카페가 좋습니다. 노란 불빛은 크리에이티브 요정의 양식과도 같죠.


7. 사진을 못 찾겠어


대부분 디자인은 이미지 찾는 데 시간을 많이 쏟게 되더군요. 환장합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그 사진을 찾아야 하는데 외국 저작권 프리 사이트를 겁나 뒤지는 것은 적게 잡아도 1-2시간 이상 걸립니다. 딴짓하는 게 아니라 진짜 이미지를 못 찾겠습니다. 나중엔 막 합성도 하고, 보정도 해보지만 원본 자체가 개똥인데 이쁘게 반죽한다고 똥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죠.

해결책: 어쩌다 맘에 드는 사진을 찾으면, 워터마크. 결국 돈인가…


8. 폰트를 못 찾겠어


예쁜 폰트를 찾아야 하는데 도대체 이 폰트 저 폰트 다 봐도 맘에 안 듭니다. 보통은 디자이너가 사랑하는 몇 개의 폰트가 있긴 합니다. 일반적인 텍스트는 보통 그것만 쓰죠. 하지만 종종 아트웍을 해야 할 때는 아웃라인 따서 이래저래 편집해야 하는 경우가 있단 말입니다. 그것에 어울리는 폰트를 찾는 것은 참으로 고역입니다.

해결책: 유료폰트


9. 훈수쟁이의 출현


몇 시간 동안 자간 맞추고 그리드 맞춰서 아트웍해놓으니 스윽 지나가던 훈수쟁이님이 ‘그거 좀 잘 안 보이지 않겠어?’ 하고 슥 지나갑니다. 아쉽게도 훈수쟁이는 대부분 나의 윗사람입니다.

해결책: 아주 현수막을 만들어서 방에 붙여드립시다.


10. 방망이 깎는 노인이 오셨다!

장.인.정.신

가끔 그분이 오십니다. 그분이 오시면 사실 모든 것이 끝난 거야. 바로 장.인.정.신이죠. 이 분이 마음속에 방문하시면 사륜안을 개안하면서 픽셀 단위의 오점이 눈에 보이고 누끼의 완성도가 거의 크로마키 사진급으로 상승합니다. 그 대가로 시력과 손목, 시간을 날려 먹을 수 있습니다. 

해결책: 디자이너에게 방망이 깎는 할아버지는 랜덤하게 찾아오시므로, 막을 수 없습니다.


11. 아이디어 요정이 오셨다!

안녕?

다 만들고 나면 아이디어 요정이 백색의 간달프처럼 헬름협곡 동쪽에서 찾아오십니다. 왜 시안을 구상할 땐 그게 생각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요정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큰 대군을 몰고 오셨기에 우리는 또 새로운 시안을 만들기도 합니다.

해결책: 대부분은 처음 만든 것이 컨펌됩니다.


12. 자료를 안 줌


그것만 오면 되는데 그게 안 옵니다.

해결책: 오후 약속을 취소합니다.


13. 뭔 말인지 모르겠어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비즈니스 모델이나 전문 용어나 복잡한 개념이 가득한 경우가 있습니다. 철골구조 중 H형강의 접합 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단방향체결식 볼트라던지… 그런 것들(실제로 만들어 봤는데 토목공사의 프로세스를 공부해야 했습니다).

해결책: 자주 다니는 커뮤니티에 이게 뭔 말이냐고 올려봅시다. 생각보다 쉽게 잘 알려주더군요. 신뢰도는 반반.


14. 하얗게 타버렸어

주화입마

사람마다 다르지만 보통 한 번 방망이 할아버지가 오시거나, 또는 훈수쟁이가 와서 영혼을 불태우다 보면 몇 시간 내로 하얗게 재만 남은 육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육신은 당분간 제정신으로 일할 수 없으며 업무 속도가 급격하게 느려지고 사고능력이 저하되는 등 심리적 무정부상태 또는 주화입마와 비슷한 상태가 됩니다. 더 이상 뭐가 생각나지도 않고 생각하기도 싫은 지경이 됩니다. 

해결책: 내일의 나를 믿어봅시다.


15. 누군가 똥을 싸놓고 갔다…

개똥 같은…

협업은 말은 아름답지만 현실은 잔혹한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가 대략 시안 잡아서 넘겨줄 테니 툴 작업만 해달라기에 오후 6시에 온 시안을 손에 쥐어봤더니 나에게 웬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무의식의 청사진 같은 것이 쥐어집니다. 

해결책: 그냥 내가 양식을 만들어 주고 빈칸을 채우라고 합시다.


16. 해가 떨어지지 않았다


낮엔 디자인이 잘 안 됩니다.

해결책: 24시간 카페는 시험 기간 대학생과 디자이너를 타켓팅으로 한 공간입니다.


17. 화장실에 그분을 버리고 나옴


보통 크리에이티브 요정은 머리나 마음속에 있다고 하는데, 제 생각엔 대장이나 방광 정도에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한참 소변 참아가며 죽도록 집중해서 디자인하다가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화장실에 다녀오면 그분이 사라져 있습니다. 물과 함께 쓸려내려 가신 듯합니다. 그분이 떠나신 뒤엔 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귀찮음이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해결책: 어쩔 수 없지 뭐…


18. 컴터가 꼬졌음

기회는 이때다. 새로 사자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저장 시에 메모리 문제로 튕기는 경우와, 그냥 이것저것 함께 켜놓고 하다가 작동이 중지되는 경우죠. 우리에게 애시당초 선택권이 없는 ‘온라인으로 해결 방법을 확인하고 프로그램을 닫습니다.’ 따위의 선택지를 주지만 어차피 뭘 눌러도 넌 망했다는 얘기입니다. 

해결책: 메모리 문제라면 가상 메모리를 늘려서 일시적으로 해결 가능합니다. 그냥 작동이 중지되는 경우는 대부분 망할 안랩과 베라포트 등의 백신 프로그램이 리소스를 엄청 잡아먹는 탓도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돌리는 경우에 자주 발생합니다. 일단 빌어먹을 백신은 다 지워버리고 인터넷 창이나 쓸데없는 것들은 꺼둡시다. 아니면 그냥 이참에 다 부숴버리고 좋은 것을 삽시다.


19. 저장을 안 함

뭐라 할 말이 없다…

침통… 

해결책: 절레절레… 컨트롤에스를 소중히 하지 않았군…


20. 그냥 일이 많음


사실 이겁니다. 디자인은 ‘이렇게 해줘요!’ 해서 30분 만에 뚝딱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미지 가져다 붙이고 텍스트 정렬만 하는데 뭐 그렇게 시간이 걸려?’라는 말은 매우 창피를 당할 수 있으니 삼가도록 합시다. 보통 그렇게 우스워 보이는 심플 단순한 시안이 나오기 전에 몇 개의 시안을 갈아엎고 다시 만들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PPT 한 장을 장당 10분으로 계산한다거나 포스터 하나 그냥 2시간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21세기에도 현존하시며 디자이너에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오퍼를 주시는데…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입니다.

해결책: 곧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책이 나옵니다. 제 책. (헤헤헤헤…)

원문: Aftermoment Creative Lab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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