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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펌받는 삶 혹은 일

조회수 2017. 10. 22. 15: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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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일을 시킬 수 있다.

화장실에서 손을 닦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내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가? (손을 닦다가 왜 이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베스트는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독한 ‘컨펌’을 받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한때는 나도 지긋지긋하게 컨펌만 받는 인생이었다. 허락받는 것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나머지 (당연한 얘기지만) 회사 가기 싫을 정도였다. 야근하고 밤새는 건 일도 아니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배너 하나 만들고 상사에게 컨펌받을 때면 텍스트 크기 줄여라, 색상 바꿔라, 톤 다운시켜라, 등등… 내 마음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하면 정말 그렇게 최악인 건가 싶은 생각에 자괴감의 연속이었다.


컨펌받는 게 스트레스라는 건 곧 ‘까이는 게 일’이란 것이기도 하다. 까인다는 건 거절당하는 거다. 내가 한 작업이 누군가에게 거부당하는 것. 결국 그게 지독히도 싫었던 거다. (거절당하는 걸 좋아하는 변태는 없을 테지만) 그러지 않으려면 알아서 잘 하면 되지 않냐는 뻔한 이야길 하지 않는 건, 살다 보면 어느 순간은 지지리도 일이 안 되는 시기가 있기 마련이라는 거다. 그때가 내가 가장 못나 보이고 무능력해 보인다.



컨펌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출근하기 싫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그 고되다는 에이전시에 들어가 ‘개고생’할 때의 일이다. 나는 대리였고 내 위에 과장과 차장이 있었다. 과장은 나와 업무가 많이 엮일 일이 없어 괜찮았다. 성격도 좋고 늘 밝았다. (나랑 엮이지 않아서 좋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차장이 문제였다. 그 차장이 내 직속 상사였는데 여자지만 과묵하고 정 없는 그녀는 사사건건 내 작업에 트집을 잡았다. 에이전시 일이라는 게 원래 내가 하던 작업 스타일과 많이 다르니 처음엔 그녀의 지도가 빈번히 필요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도가 아니라 한결같이 나를 무시하고 내 작업물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급기야 나보다 직급이 아래인 사원 앞에서 나의 작업물을 ‘까기’ 시작했는데 그 사원은 직급은 사원이지만 그 회사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하는 업무에 당연히 나보다 능할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자존심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작업물을 컨펌받고 무시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전 직장에선 단 한 번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차장의 승인을 받지 못하고 꾸중까지 들은 나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장실에 가 문을 잠그고 숨죽여 울었다. (마치 드라마 한 장면 같지만 진짜 그랬다) 그렇게까지 철저해야 했을까? 온라인 사이트 배너 하나에 사람 자존심을 이렇게 뭉개버려도 되는 건가. 그래도 경력 6년 차 디자이너인데.


그즈음 나는 차장에게 까이는 게 싫어서 꾀를 부렸다. 컨펌을 최대한 늦게 받는 거다. 당시 그녀는 신혼이었고 늘 칼퇴를 했는데 그녀가 퇴근할 때쯤 컨펌을 해달라고 하는 거다. 그러면 빨리 집에 가서 남편과 오붓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은 차장이 전보다는 유연하게 대충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이것도 요령껏 해야지 매번 이러면 “너는 왜 맨날 퇴근할 때 컨펌을 받아!”하고 혼이 난다.

illust by 이영채

그렇게 호되게 컨펌받는 인생을 살아서인지 역으로 내가 컨펌을 해줄 땐 좀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그녀처럼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 내가 좋아하는 대목이 있는데, 바로 그때 나의 다짐이 딱 이랬다.

난 내가 누구를 부리게 되거나 접대를 받는 처지가 되어도 그 사람 자존심은 배려해 줄 거야. 자존심 지켜 주면서도 일 엄격하게 시킬 수 있어.

그 에이전시를 퇴사하고 아주 작은 잡지 회사에 들어간 나는 디자인팀 팀장을 맡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컨펌받는 삶에서 컨펌해주는 삶이 된 나는 처음엔 다소 어리둥절했지만 점차 적응해 나갔다.


그때 내 밑으로 3명의 디자이너가 있었는데 나는 최대한 그녀들에게 컨펌의 두려움이 없는 직장 생활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가능하면 잘했다고 해주고 반드시 수정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같이 고쳐나가는 방식이었다. 디자인이란 게 기계적이면 재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라, 될 수 있는 한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하게끔 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눠주려 알고 있는 노하우는 대부분 전수했다.



상대의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엄격하게 일을 시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나를 컨펌할 수 있는 경험치를 주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내가 질문을 하는 거다. 아무래도 나는 팀장이었지만 가장 나중에 입사한 직원이기도 했으니까 스킬은 뛰어날지 몰라도 해당 운영 업무는 그들이 더 능숙하다. 따라서 이건 어디에 보내는 건지, 어떻게 처리하는 게 바른 건지 그들에게 수시로 물어보고 가능하면 너와 나는 (결국) 동등한 디자이너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고자 했다.


뭔가를 계속 허락받아야 하는 삶처럼 피곤한 게 없다. 학창 시절엔 늘 부모님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젠 내 아이가 나에게 허락을 요구하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방향을 제시해주었던 삶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혼자 알아서 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 보니 머리가 터질 것만 같다.


사는 게 직장생활과 같다곤 할 수 없지만 일일이 컨펌하는 사람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뭐든 알아서 잘 해주는 게 최고겠지.


원문: 이유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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