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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버닝맨을 다녀와서

조회수 2017. 10. 1. 18: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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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현실이란 곳이 여기보다 별로여야 하지?"

이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많이 망설였다. 사실 쓸지 말지도 고민했다.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곳이었다. ‘버닝맨은 이런 곳이야!’라고 분석하거나 정의를 내리기보다는 일주일 동안 수북이 쌓인 보물 같은 기억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싶었다.


잘못 말했다가 그 신비로움과 소중함이 휘발될까 봐 두려웠다.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른 걸 보여주는 곳이고, 제각각의 경험이 정말 다른 곳이라 나로 인해 누군가를 어떤 프레임에 갇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너무 멋진 기억이 많아서, 아직도 마음속에 버닝맨의 기억이 가득 차 있을 때 나 나름대로의 기록을 해두고 싶었다. 이 글은 독백하듯이 써 내려간 내 기억의 단편들이다. 버닝맨을 이해하기 위해 읽기보다는, 그냥 어떤 한 사람의 일기를 엿보는 느낌으로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



I left my heart in BRC

상상력은 우리를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로 데려다줄 것이다.

-
칼 세이건

3주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게 잘 믿기지 않는다. 아주 기나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도 들고, 『1Q84』에 나오는 하늘에 달이 두 개가 떠 있는 평행세계처럼 현실과 닮은 듯 닮지 않은, 시간을 초월한 조금은 다른 차원의 세계에 다녀온 기분도 든다.

ILFORD 일회용 필카로 담은 사진. 버닝맨은 해가 질 때 특히 더 아름답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서 난 시간 감각을 잃었다. 무슨 날짜인지 무슨 요일인지도 중요하지 않았고 몇 시인지도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핸드폰은 사진 찍을 때만 몇 번 꺼내고 오롯이 그 순간을 살았다. 사진도 생각만큼 많이 찍지 않았다. 


계획을 세워봤자 모두 틀어져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곳. 버닝맨의 10계명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가는 건 즉흥성(Immediacy)이었다. 워낙 즉흥적인 편이지만 이곳에선 더더욱. 순간에 즉각적으로 몸과 마음을 맡기다 보면 말 그대로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그 즉흥성이 나에게 선물해준 순간들이 참 감사하고 소중하다.


버닝맨에서의 모든 시간이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게 한다. 아무리 튀게 입어도 튀지 않는 사막에서 낮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초현실적인 아트 인스톨레이션과 아트카, 해가 뜰 때, 해가 질 때, 곳곳에 불이 켜지는 밤이 시작될 때.


가끔 순식간에 불어오는 모래폭풍과 딥 플라야(Deep Playa)의 어둠으로 나갈수록 보였던 수많은 별, 새벽이 가까워 올수록 주황색으로 빛나던 커다란 달은 다른 차원의 세계인 것 같은 기분을 배가시켰다.

코닥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담은 사진. 버닝맨의 외곽으로 혼자 자전거 타고 나갔을 때. 진짜 미쳤다고 계속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눈물이 주르륵, 템플의 기억


버닝맨의 상징적 구조물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맨(man)과 템플. 템플에서의 경험은 특히 강렬하다. 갈 때마다 나는 눈물이 나왔다. 버닝맨의 템플에 들어서면 신성한 분위기가 감돈다.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오래된 교회나 성당 절에 들어섰을 때처럼 강렬하고 영혼적인 힘이 느껴진다.


나무로 지어진 템플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사람, 반려동물 등 세상을 떠난 영혼에게 세상에 남은 사람이 바치는 편지가 빼곡하다. 때로는 사진과 함께, 때로는 떠난 이의 유품과 함께. 이곳에서는 맨정신으로 오래 버티는 게 힘들다.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금방 울컥하고 눈물이 흐른다.

“아들아 그곳에서는 행복하니. 네가 참 많이 보고 싶구나. 조금만 더 기다려, 금방 따라갈게. 사랑한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빠가.”
“내 멋진 친구 ○○야. 네가 없는 세상은 좀 더 재미가 없어. 넌 그곳에서도 아주 멋지고 재미난 일들을 벌이고 있겠지. 보고 싶어.”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가졌던 너. 너의 목숨을 앗아간 암. 엿 먹으라고 해.”
“엄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어서 이곳에 있는 수백 개의 이야기 중 10개 이상을 연속으로 읽지 못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곳의 기억이 떠올라 울컥한다. 인생의 허무함과 소중함, 따뜻함, 불공평함 같은 감정이 동시에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서 밀려오는데 그냥 눈물이 나고 할 말을 잃는다.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에 동화되어서. 저마다의 인생사가 슬프고도 소중하고 아름다워서. 딱히 말이 필요가 없는 순간이라서.


내가 울고 있는 걸 발견한 주변 친구들과 사람들이 나를 말 없이 꼬옥 안아주었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안아주고 있으면 그게 얼마나 힘이 되고 위안이 되던지. 이곳에서 나는 여러 번 느꼈었다. 인간의 영혼은 따뜻하구나. 서로의 아픔에 공감해주고 위로해준다는 게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구나.

새벽녘, 템플 밖까지 빼곡해진 편지와 사진들

템플은 일요일 밤에 모두 불태우는데 맨을 태우는 토요일 밤과는 분위기가 완전 상반된다. 몇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아주 조용하다. 뒤에서 반도네온이나 조용한 악기를 연주하는 추모곡이 종종 들리고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지켜지는 와중에 누군가 외쳤다. 

We love you, I love you all, I wish you were here.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네가 여기 있었으면 좋겠어.

불타는 템플을 보면서 누군가 그렇게 소리 질렀고 다른 누군가가 답변을 했다.

I love you too. We love you too.

템플이 타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K가 다가와 물었다.

안아줘도 돼?

그 질문에 나는 작은 놀라움을 감추고 K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강인해 보이는 사람인데, 무슨 사연이 있길래. 온 마음으로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꼬옥 안아주었다.

템플이 타던 일요일 밤.

플라야 프로바이드


버닝맨에서 자주 쓰는 표현 중에 ‘플라야 프로바이드(Playa Provides)’라는 말이 있다. 내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순간 ‘플라야(버닝맨의 사막)가 제공해준다’는 뜻인데 신기하고 신나게도 정말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나는 이런 일들이 있었다.

자전거 없이 아트카를 타고 내려 캠프에서 가장 반대편에 떨어져 있던 어느 날 새벽. 전날 밤을 새우고 다음 날 또 밤을 새우기 위해 이제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걸어가기엔 거리가 꽤 되고 몸도 피곤해져서 일단 옆에 있던 다른 아트카를 탔는데… 우연히 다음 목적지가 우리 캠프 바로 옆 골목이었다. what are the chances?
캠프 친구 중 나처럼 일렉보다 락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밴드들을 얘기하다가 친해졌다. 맨을 불태우던 날 밤, 이 친구들과 자전거 없이 밤새 아트카를 타거나 온 플라야를 걸어 다녔는데, 수많은 아트카 중 우리가 골라 탄 첫 번째 아트카가 마침 7080 락을 틀어주는 곳이었다.

주로 EDM이나 댄스곡을 틀어주는 수백 개의 아트카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아트카를 그렇게 우연히 만났다. 몇 시간을 놀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소수의 사람끼리 물 만난 물고기들처럼 떼창하며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노래에 맞춰 춤추고 놀고 있는데 아트카를 운영하는 친구 한 명이 3D 안경 같은 걸 주었다. 그 안경을 쓰니 버닝맨의 모든 불빛이 하트 모양으로 변했다. 고개를 흔들면 하트도 같이 흔들렸다. 그 순간 ‘보헤미안 랩소디’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하늘 위를 올려다보니 노란 달도 노란 하트 테두리 안에 들어가 있었다! 음악이 그 순간을 더 환상적으로 만든 건 당연하다. 말도 안 되는 순간이었다. 밴드들의 뮤직비디오 안에 내가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너무 신나 이것 좀 보라고 소리 지르며 안경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씌우고 다녔다.
새벽 3시쯤이었나. 딥 플라야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 날으는 양탄자 모양의 아트카가 우리 옆에 서서 ‘태워줄까?’하고 물었다. 언젠가 우연히 보고 귀여운 아트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조금은 춥고 피곤하던 참이었는데. 양탄자 위에 준비된 털로 된 이불을 덮고 앉아서 더 안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해가 뜨는 걸 보기 위해 밤을 새우고 논 우리는 딥 플라야의 가장 끝까지 가면 닿을 수 있는 트래쉬 펜스(Trash Fence) 쪽으로 향했다.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그 울타리 너머에는 끝없는 사막과 지평선이 있다. 지평선과 맞닿은 밤하늘 색은 여태껏 본 중 가장 까만색이었다.

새벽 5시쯤 되자 털 옷을 입고 있어도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걷고 있었는데 펜스의 끝자락에 작은 불빛이 보였다. 다름 아닌… 모닥불이었다! 사막의 끝에 자리한 작은 모닥불에 둘러앉아 우리는 해가 뜨기 직전까지 몸을 녹이고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사막에서 뜨는 해는 너무 아름다워
천체 관측하러 옵설버토리를 가는데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음을 인지하게 된 그 시점에 작은 거리 포차 크기의 라멘 바를 마주쳤다.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모래폭풍이 닥쳤다. 모래 벽은 저 멀리부터 시야에 보이는 걸 하나둘씩 삼키며 우리 쪽으로 오고 있었다.

다 같이 호들갑을 떨며 라멘을 지키고(ㅋㅋ) 모래폭풍은 생각보다 순식간에 지나갔다. 라멘 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하얗게 변한 서로의 머리카락을 보며 깔깔깔 웃었다. 그날 밤, 길을 잃고 만난 라멘바에서 한바탕 모래폭풍이 지나간 뒤 먹은 라멘은 정말 너무 맛있었다. 
밤이면 오픈하는 사막의 미니 바.

버닝맨의 아트웍이나 아트카는 딱히 설명이 필요 없다. 다 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넓게 퍼져있고 많기도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습이 변하거나, 태워져 없어지거나, 없던 게 다 만들어져 새로 생기기도 한다. 


모든 아트웍에는 스토리가 있고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트인 줄 알았는데 암탉이거나 곰인 줄 알았는데 원숭이인 경우도 있고. 우주비행사였던 거대한 마리오네트 인형(Euterpe)이 시간이 흐를수록 옷도 바뀌고 머리 스타일도 바뀌며 버너(Burner)로 변신하기도 하고. 내가 직접 움직여야 실제로 움직이는 설치물도 있고. 그냥 사막 위 거대한 인터랙티브 아트 뮤지엄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센터캠프 근처에 있던 해파리

직접 보고 겪으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런 걸 만들어낸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게 된다. 사막 깊은 곳에서 보이저호의 황금 엘피판을 마주쳤을 때는 어찌나 반가웠던지! 하지만 역시, 그럼에도 제일 좋았던 건 사람들이다.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사람들


이곳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만난 순간부터 이미 친구다. 그들과 나눈, 솔직하고 깊고 랜덤한, 기억하고 싶은 대화의 순간들.

난 사실 언제나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어. 그런데 돈이 안 벌리는 것 같아서 돈 잘 벌리는 감사 일을 시작했지. 오래 일했어 몇십 년간 감사 일을 하고 은퇴까지 했으니까.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까 비로소 다시 나 자신이 된 기분이더라. 그래서 버닝맨에 왔을 때 ‘아 이런 거구나’ 하고 그냥 바로 녹아들었지.
생각해보면 신기하지 않아? 사실은 이 야채랑 내가 DNA의 60%를 공유한다는 거.
바깥세상에서 클릭 몇 번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환경이란 게 오히려 인간의 능력을 뺏어갔다고 봐. 사실은 인간 모두가 크리에이터고 아티스트고 누군가를 즐겁게 해줄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 여기서 보면 알 수 있잖아.
한 사람이 누군가의 행복을 책임져 줄 수는 없어. 그건 스스로 해야 하는 거야.
실수해도 괜찮아. 후회하는 그 순간들도 지금의 너를 만들었어. 나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네가 좋아. (신이 나에게 해준 말)
트래쉬 펜스의 비밀을 알려줄까?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정보이자 비밀로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다)
이곳에서는 커넥트 하기가 정말 쉽잖아. 분명 이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도 의미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건데. 현실 세계에서는 그런 곳이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나는 시간이 있는데, 대낮부터 컨트리클럽을 갈 수도 없고. 딱히 술을 마시고 싶지도 않고. 진짜 세계에서도 이런 커넥션을 가져가려면 우린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 걸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마음 가는 대로 표현하고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잖아.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 같아.
아 현실 세계로 돌아가기 싫다! 왜 현실이란 곳이 여기보다 별로여야 하지?
우린 지금 시간을 초월한 곳에 와 있는 것 같아. 시간의 밖에서 너를 알게 된 기분이야.
옵설버토리에 별자리들 보러 갈래?


버닝맨은 나에게


작은 기적 같은 일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곳이었다. 그 순간들을 일일이 다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캠프에서 만난 친구들과도 버닝맨에서 서로의 가장 좋았던 순간을 꼽는 게 힘들어서 ‘어제 제일 좋았던 순간’이나 ‘3번째로 좋았던 순간’들을 서로 자주 공유하곤 했다.


일주일간 많이 사랑하고 사랑받았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고 포옹을 나누고 사랑과 인생과 우주, 관계, 영혼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아무런 포장 없이. 있는 그대로. 거리낌 없이. 사람들의 따뜻한 에너지를 받으며 내 마음도 따뜻해졌고, 서로 나누는 것의 행복과 힘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인지가 중요한 곳. 내가 나를 표현하고, 혼자만의 소굴로 도망가지 않는 이상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고 아껴주는 분위기이지만, 그럼에도 모두를 위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마음이 열려 있는지, 귀 기울이고 있는지, 나의 무언가를 나눌 준비가 되었는지. 정말 딱 그만큼을 보여주는 곳이다.

그리운 광경

버닝맨을 다녀온 이후


버닝맨을 다녀오고 나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다시 탈 의향 100%인 버너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나왔는데, 휴게소에 들러 타코벨에 갔을 때 든 생각은… ‘이렇게 일회용품을 많이 쓰다니’ + ‘이게 쓰레기가 얼마야!’ 자판기에서 버튼만 누르면 얼음이 나오고 화장실 바로 옆에 세면대가 있는 것도 얼마나 새삼스럽던지. 핸드폰에 몰두하던 사람들의 모습도.


또.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이상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공간에 있다가 일주일 만에 인터넷이 되는 곳에 돌아와 뉴스를 읽고 있으니 그렇게 안타깝고 화날 수가 없었다. 부산 중학생 폭력사건부터 강서구 장애인 특수학교시설 뉴스를 보며 인간이라기엔 너무 수준 이하인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극한 환경에서도 서로 베풀고 아껴주면서 살 수 있다는 걸 겪고 왔는데 훨씬 더 풍족한 환경과 사회에 사랑이 결여된 이유는 뭘까. 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함께 살지 못하는 걸까.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중요하길래 정작 진짜 중요한 것들은 망각하고 살아가는 걸까. 어느 순간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저들은 인지하고 있을까. 이렇게 씁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버닝맨에 가기로 한다면


이 글에는 나에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모두 담겨 있지는 않다. 굳이 어딘가에 기록하지 않아도 기억에 각인되어버린 너무 마법 같았던 순간과 가장 좋았던 순간 또한 이 글에는 없다. 혹시나 버닝맨에 가기로 결심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의 이야기는 모두 잊고 ‘버닝맨은 어떨 것이다’란 기대를 하기보다는 무엇이든 직접 확인해보자는 0의 상태로, 버닝맨이 무엇을 보여주든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으로 갔으면 좋겠다.


어떤 생각은 편견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리고 올해 유난히도 날씨가 좋은 편이긴 했지만, 나는 사막의 환경도 꽤 살만했다. 생각보다 겁낼 것도 없다. 날씨만 굳이 비교하자면 46년 만에 최고의 폭우가 내렸던 2016 글래스턴베리 진흙밭과 언덕이 체력적으로는 훨씬 더 힘들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도 새삼 느꼈지만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강했고, 적응력과 체력이 좋았다.


버닝맨만큼 짧은 시간에 무엇이든 실험해보고 알을 깨고 나와 스스로를 조금 더 성장시키기 좋은 곳도 없다. 내가 지냈던 캠프는 다양한 ‘요가와 명상’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반 이상은 버닝맨에 처음 온 친구들이 직접 진행했다. 이 중에는 요가 수업도 명상 수업도 처음 가르쳐본 친구들이 많았다. 자격증도 경력도 필요 없고, 할 수 있다면 그냥 하면 되는 곳이다.

자전거로 사막을 누비고 싶다. 또 갈 거야, 무조건.

대략 1년 전 또 한 번의 퇴사를 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은 채 마음 가는 대로 시도해보고 실험해보겠다는 선언을 했던 지난 몇 개월간 나는 내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인연들을 맺었다. 그 모험의 하이라이트이자 마무리를 버닝맨에서 보내고 서울에 복귀한 나는 아주 천천히 일상생활에 다시 익숙해지는 중이다. 


겉으로만 보면 비슷해 보이는 일상일지라도 분명 뭔가 달라졌다. 혼자서 동남아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썼던 표현이지만 나 자신과 훨씬 더 친해진 기분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나무가 자란다면, 나의 나무는 조금 더 초록 초록, 한 뼘 더 자라고, 한층 더 깊고 단단하게 뿌리내린 느낌이다. 그런 지금이 매우 좋다.



Out of Time


이 노래가 버닝맨을 다녀온 나의 기분을 가장 잘 표현할 것 같다. 요즘 매일같이 반복적으로 듣고 있는 이 노래로 글을 마친다.

Watch the world spinning gently out of time, Tell me I’m not dreaming but are we out of time? We’re out of time.

세상이 시간을 초월해 천천히 도는 모습을 봐. 꿈이 아니란 걸 말해줘. 우린 시간을 초월해 있는 거 아닐까? 우린 시간의 밖에 있어.

원문: yoonash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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