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그리고 태평양 돌핀스

조회수 2017. 9. 24. 17: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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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프랜차지으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94시즌

5월 4일 문학구장. 홈팀 SK 와이번스 선수들은 어디선가 많이 본 유니폼을 입고 등장하였다. 다름 아닌 일종의 복고 마케팅의 일환으로 펼쳐진 ‘태평양 데이’ 이벤트를 실시한 것이다.


하지만 SK 선수들이 입은 과거 태평양 돌핀스 유니폼은 웬지 어색하고 생뚱맞은 느낌까지 들었다. 공교롭게도 원정팀은 태평양 돌핀스의 오리지널 원조라 할 수 있는 우리 히어로즈. 하지만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연고지를 제 발로 박차고 나왔기에 오리지널 원조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도 다소 거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출처: 나무위키

SK 와이번스 선수들이 태평양 돌핀스 유니폼을 입은 것은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일수도 있다. 물론 인천 연고 구단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SK는 현대가 나간 자리에 새롭게 살림을 차린 것이다. ‘스포테인먼트’라는 명제 하에 열심히 인천 팬들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와이번스이지만 아직은 명실상부한 인천 구단으로서 뿌리를 내리기엔 2% 부족하다.


그래서 이번 글의 주인공은 삼미 슈퍼스타즈-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까지이다. 현대 유니콘스는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제 발로 연고지를 내쳤기에 면죄부를 씌울 수 없고, 와이번즈는 아예 태생이 다른 별개의 팀이다.


프로야구 무대에 뛰어든 구단 중, 그 어느 팀보다 밑바닥의 서러움을 가장 많이 느꼈던 구단. 1982년부터 1995년까지의 14시즌 동안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시즌은 단 2회. 그러나 너무나도 정상, 아니 상위 클래스에 목말라 하던 팬들에게 두 번의 포스트 시즌 진출은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은 것이었다. 단 2번의 베스트 시즌이었던 1989년과 1994년 중에 과연 어느 시즌을 가장 인상 깊은 시즌으로 꼽을지 많은 고민이 되었다.


필자는 철저하게 주관적인 판단으로 1994시즌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1. 강자로서의 포스를 내뿜다


1994시즌은 LG 트윈스의 압도적인 포스가 전체 리그를 지배하던 때였다. 그야말로 트윈스가 독주를 하던 즈음, 그 아래의 추격자들은 추격할 엄두는 내지도 못한 채 남은 자리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그 접전 속에서 남은 추격자 집단들을 확실히 제압한 또 하나의 팀이 있었다. 바로 태평양 돌핀스였다.


시즌 팀간 전적에서 돌핀스는 트윈스에만 5승 13패로 밀렸을 뿐, 나머지 구단에는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점하였다. (한화와는 9승 9패로 동률이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3-0으로 가볍게 제압한다.) 창단 이후 팀 최다승(68승) 및 최고승률(0.553)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는 감격을 누린다. 서울의 트윈스, 인천의 돌핀스가 선봉에 앞장서며 수도권 구단 전성시대를 이끌어 나갔다.



2. 팀의 무게를 한층 실어준 타선


1989년 시즌의 태평양 돌풍의 진원지는 박정현-최창호-정명원 삼총사로 대표되는 탄탄한 마운드였다. 그러나 공격력은 김동기의 홈런 11개가 팀내 최다일 정도로 전형적인 소총부대로서 타 팀에 위압감을 심어주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1994시즌의 돌핀스는 탄탄한 투수진과 더불어 공격진에서도 김경기 (홈런 23개, 타점 70점, 타율 0.277), 김동기 (홈런 15개, 타점 50점, 타율 0.264), 윤덕규 (홈런 10개, 타점 51점, 타율 0.321) 등이 무게감을 실어주며 돌핀스의 포스에 힘을 더하였다. 90년 입단 당시부터 인천 프랜차이즈 사상 최고의 슬러거로 기대를 모았던 김경기는 인천 프랜차이즈 선수 역사상 최다 홈런을 쳐내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였다. 또한 92년 트윈스에서 이적한 윤덕규는 자신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소총부대로 인식되던 돌핀스 타선은 라이온즈 출신의 정동진 감독의 지휘 아래 묵직한 중장거리포를 쏘아 대는 중량감 있는 모습으로 변모하며 팀의 이미지를 완전히 쇄신한다.



3. 특유의 ‘짠물 야구’의 버팀목이 된 투수진


1994시즌 돌핀스의 투수진의 특징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바로 ‘부활’이다. 1992, 1993시즌 연속으로 돌핀스는 향후 10년을 이끌고 나갈 거물 투수들을 1차 지명으로 영입한다. 바로 우완 정민태와 좌완 김홍집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는 입단 첫 해 부상으로 인해 기나긴 재활의 터널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두 선수의 활약을 통해 상위권으로 발돋움하려 했던 돌핀스도 또다시 하위권에서 맴돌고 만다. 그러나 1994시즌 마침내 두 거물들이 한꺼번에 부활(김홍집 12승, 정민태 8승)하며 돌핀스의 마운드는 단숨에 리그 최강의 자리를 다툴 정도로 높아진다.


매년 꾸준한 활약을 펼친 최창호(12승)와 안병원(11승)은 변함이 없었으며, 유난히도 드셌던 신인 돌풍에 동참한 최상덕은 팀내 최다승 (13승)을 거두는 깜짝 활약을 펼친다.


무엇보다도 돌핀스 마운드의 중심에는 최초로 마의 40세이브 고지에 다다른 소방수 정명원이 있었다. 선발 요원으로 활약하다가 부상으로 92, 93시즌을 거의 쉬면서 보낸 그는 어깨를 충전한 후 마무리 요원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다. 팀이 거둔 68승 중에 무려 44승을 매조지한 그의 활약은 선동열의 타이거즈가 부럽지 않을 만큼 찬란하였다.



4. 아쉬움 가득했던 한국시리즈


팀 창단 최초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돌핀스는 리그 최강 트윈스를 상대로 1차전부터 명승부를 펼친다. 입단 동기 라이벌 김홍집과 이상훈의 팽팽한 대결은 투수전의 묘미를 선사하였다. 돌핀스는 1-1의 상황에서 8회 초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1사 만루)를 맞이하지만 믿었던 김동기가 트윈스의 바뀐 투수 김용수의 노련한 구위에 말려들며 병살타로 물러나고 만다.


한국시리즈 명승부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이 경기는 극적으로 마무리 되는데, 김홍집은 12회까지 눈부신 호투를 거듭하다가 단 하나의 실투로 김선진에게 결승 홈런을 내주며 아쉬운 패배를 기록한다. 결국 김선진의 선수 생명을 연장시켜 줌과 동시에 김홍집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한국 시리즈 무대에서 첫 승의 기회를 날려버린 투구였다.


3차전 또한 부상에서 재기한 정민태가 풍부한 국제무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노련한 투구를 펼치며 4-1의 리드를 이끌며 반격의 기회를 마련하는 듯싶었지만 믿었던 마무리 정명원이 3점 차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며 결국 5-4로 역전패를 당한다. 3차전에서 94 한국시리즈의 향방이 90% 결정되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너무나도 돌핀스에게 아쉬운 패배였다.

정동진 감독은 감독 재임 동안 두 번의 한국시리즈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물러나고 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의 상대가 모두 LG트윈스였다. 90년 삼성 감독 당시 예상을 뒤엎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지만 승부의 분수령이었던 2차전에서 9회 말 투 아웃 2-1의 리드 상황에서 에이스 김상엽이 뿌린 파워커브가 밋밋하게 들어가며 김영직에게 동점타를 내주며 연장접전 끝에 3-2로 역전패를 당한 바 있었다. 결국 2차전 이후 분위기가 급격히 기울어지며 시리즈를 일방적으로 내주었던 아픈 기억이 4년 후에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 한국시리즈였지만 돌핀스의 94시즌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1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도원 구장은 연일 관중들로 들어찼으며, 창단 후 최다인 476,277명(평균 7,560명 좌석점유율 69%)의 관중이 인천구장을 찾았다.


정동진 감독은 92시즌 감독에 부임하면서 정민태와 김홍집 등의 주축 선수들이 재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즉시 전력감 선수들이란 점에서 감독의 입장에서 욕심이 날 법도 하지만 정동진 감독은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하지 않았다. 결국, 그 기다림이 94시즌에 마침내 꽃을 피운 것이다.


인천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94시즌은 인천 야구팬들의 가슴 한구석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원문: 나루세의 不老句


표지이미지 출처:  Sports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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