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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심리학자, 안 유명한 심리학자

조회수 2017. 8. 21. 17: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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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이 텔레비전, 라디오 등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심리학자들이 텔레비전, 라디오 등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문화심리학, 사회심리학,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등 각종 분야를 대표하는 심리학자들이 방송에 나와 강연을 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주요 포털사이트에 ‘심리학’이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뉴스’ 항목을 살펴보면 이들 유명 심리학자들이 오늘은 어디에서 강연을 했고, 어느 포럼에 참석했으며, 어떤 주제로 칼럼을 썼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 비단 제도권 내의 심리학자들만이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과거 어느 구설수로 유명한 어느 재야 심리학자 역시 대한민국 팟캐스트 시장에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정치심리학’, ‘고민 상담’이라는 키워드로 그 자신의 존재감을 보인지 꽤 오래다.

특정 심리학자의 유명세는 자연스럽게 그 심리학자를 둘러싼 삶으로의 관심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텔레비전에 나온 어느 심리학자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면, 우리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온 사람인가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 대학, 어느 대학원을 나왔으며 주로 어떤 연구들을 해 왔는지, 직접 집필한 책은 몇 권이나 되는지 하며 현재는 어느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알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면 그 유명 심리학자는, 본의 아니게 장차 심리학을 업으로 삼기를 원하는 수많은 꿈나무의 역할 모델(role model)이 된다.


심리학을 꿈꾸던 소년소녀들이 그를 보고 생각한다. ‘아, 나도 저렇게 멋진 심리학자가 되고 싶다.’, ‘심리학자란 저렇게 카리스마 있고 재치 있고, 시원시원한 직업이구나.’, ‘심리학자라니, 나도 사람들의 심리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방송을 나온 심리학자는 여타 잘 알려지지 않은 심리학자들에 비해 대중을 유치하고, 학생을 유치하는 데 있어 상당한 이득을 가져간다.


사람들은 유명세에 열광한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더라도 기왕이면 내가 한 번쯤은 들어보고 알아봤던 그에게 배움을 얻고 싶어 한다.


대학원도 물론 마찬가지다. 내 지도교수님이 방송 활동 등으로 바쁜, 때로 연예인처럼 보이는 그런 유명한 학자라면 왠지 스스로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만 같다.


“여러분, 텔레비전에 나오는 모 교수님을 혹시 아시나요? 그분 요새 많이 유명하죠? 그분이 바로 제 지도교수님이시거든요~ 저는 그분과 함께 밥도 먹고, 같이 연구도 하고, 같이 행사도 다니고 그렇게 생활해 왔답니다.”

전형적인 호가호위(狐假虎威)다. 이런 일이 정말 있겠느냐고? 과연, 글쎄다.


텔레비전에 어느 심리학자가 떴다 하면 십중팔구 내게 날아들어 오는 대학원 상담 메일의 내용이 달라진다. 얼마 전에 방송에 출연하신 그분의 책, 강연 등이 매우 인상 깊었다며 그분께 꼭 배우고 싶어서 그분이 소속되어 있는 대학원으로 진학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들이 급격히 늘어난다.


이때 나의 대답은 물론 지극히 ‘합리적인 방향’을 향한다. 교수님의 유명세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니, 질문자분의 현실적인 여건부터 해서 관심 연구 주제, 그리고 앞으로의 진로 계획 등 복합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셔서 스스로 가장 잘 맞는 대학원과 지도교수님을 찾으셔야 한다고 말이다. …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유명한 분에게는 분명 많은 이들이 몰린다. 이것은 심리학 대학원 입시 전략 컨설팅을 하며 내가 줄곧 경험해왔던 하나의 사실이다.

 

유명한 심리학자와, 안 유명한 심리학자. 누가 더 나은가?


지도교수님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분이라면 그는 분명히, 단언컨대 매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오피스에 있는 날보다는 없는 날이 더 많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요즘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고 싶다면 조교나 다른 사람들에게 묻는 것보다는 때로 포털에서 그분의 이름으로 뉴스 검색을 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다.


유명한 교수님은 단지 강연이나 집필 활동, 포럼 참석, 외부 자문 활동, 언론 출연 등으로만 바쁘신 것이 아니다. 그에게는 다양한 계층,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므로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동석하여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게 될 일이 많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언제나 사람들을 학교 근처로 불러 식사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식사 약속 때문에, 차 약속 때문에 학교에 계실 수 없는 날들도 많다.

이러한 사실들이 제자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맞다. 교수님은 바쁘다. 그래서 여러분의 논문이나 연구 아이디어를 검토해주고 지도해줄 시간이 없다. 여러분은 교수님이 세세히 연구 지도를 해주실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접어야 한다.


물론, 대중적으로 어느 정도 알려진 심리학자들도 기본적으로 ‘교수’, ‘연구자’의 직함을 달고 있고, 연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지도하는 것에 대한 열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외부적으로 벌여 놓은 일이 많아, 그것들을 감당하느라 미처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시간을 내기 어려워하고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은 최대한 시간을 쪼개어 어떻게든 학생들을 가르치려 애쓴다. 문제는 그럴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교수님이 유명하신 것보다는, 유명하지 않으신 것이 연구 지도를 받는 데 더 유리할 수 있다. 무턱대고 유명하다 해서 그를 내 마음속 희망하는 지도교수로 점찍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 물론 다른 측면으로 지도교수님이 유명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에게 이점이 될 수 있다. 즉, 대중적으로 유명한 분이 있는 반면, 연구 실적이 질적/양적으로 뛰어나 학계에서 유명한 분도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여러분의 지도교수님이 되어줄 것이다.


대외활동보다는 연구 그 자체에 관심이 많으니 자연스럽게 지도 학생들에게도 많은 연구 기회와 배움의 기회가 돌아가기 마련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여러분의 대학원 생활이 그만큼 매우 바쁘고 힘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논문이라는 것은 원래 연구자들의 숱한 피와 땀을 대가로 하여 탄생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적으로 유명한 지도교수님은 백해무익(百害無益)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교수님이 유명하기에 학생들이 특별히 배울 수 있는 점도 많다. 대중과의 소통에 적극적인 교수님들은 학계에서 다뤄지는 전문적이고 복잡한 심리학 연구 내용을 어떻게 하면 대중이 쉽고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궁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두 번의 글을 쓴다. 학계를 위해 논문을 한 번 쓰고, 대중을 위해 강연 스크립트와 심리학 교양서적을 한 번 더 쓴다.


즉, 자본주의 상품으로서의 심리학을 만들고 다루는 데 있어 탁월한 감각과 경험들을 갖추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 밝다.

수많은 여타 학문과의 경쟁 속에서 심리학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부터, 부족하기 짝이 없는 국내 심리학계의 제도적 인프라를 어떻게 하면 키워갈 수 있을지, 또는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이들이 심리학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 것인지 등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하고 각종 개인적/제도적 노력을 다하고 있다.


심리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는 ‘유명한 심리학자’나 ‘안 유명한 심리학자’나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실천 방향이 다를 뿐이다.


따라서 단순히 심리학자의 유명세에 따라 그의 가치를 판단하고, 그를 지도교수로 삼거나 삼지 않으려는 결정은 성급한 것이다.


대중적인 심리학자는 심리학의 저변 확대와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에 더욱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 반면 연구 활동에 열심인 심리학자는 양질의 심리학 연구를 통한 심리학의 질적 발전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따라서 심리학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는 여러분들은 심리학 연구에 관심이 있는가, 아니면 사회 속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가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과연 어느 지도교수님을 만나야 그러한 여러분의 관심사를 잘 발달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말이다.


원문: 허용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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