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했던 워킹맘 4개월의 경험

조회수 2017. 8. 17.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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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을 것 하나 없는 '제로섬 싸움'이었다.

그렇게 모두 '슈퍼우먼'이 된다


힘들면 그만둬.

남편들의 단골멘트다. 흔히 아내의 월수입이 남편의 수입을 크게 밑도는 경우 남편들의 입에서 쉽게 튀어나온다. 아내 수입이 없어도 가정경제 굴러가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으니 집에서 아이들 케어나 잘하라는 얘기다. 그 대신 살림이나 가사는 모두 나더러 전담하라는 암묵적 명령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오로지 나 혼자만 좋자고 하는 일 같이 되어버린다. 남편은 내가 바깥일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집안일이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하면 쉽게 ‘그러면 일을 그만두면 되지 않냐’고 되받아치곤 한다. 그러니 당연히 워킹맘 생활을 하면서도 공평한 가사분담은 꿈도 꾸지 못했다. 정 일하고 싶으면 살림도 알아서 감당하면서 하라는 것이다. '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봐라'라는 식이다.


아직도 이런 구식 남자들이 살아 있을까? 그렇다. 꽤 많은 가정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전체 맞벌이중 생계형 맞벌이 또는 경제적 이유의 맞벌이 비율이 80%를 넘어서지만 20% 정도는 생계형 맞벌이가 아닌 경우라고 한다. 여자들의 자아실현과 개인적 성취에 기인하는 경우라는 뜻이다.


또한 생계형 맞벌이 중에서도 남자의 벌이가 압도적으로 많거나 여자가 시간제 근무를 하는 경우에도 불공평한 가사분담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즉 여자의 벌이가 현저하게 적거나 경제적 목적이 아닌 자아성취를 위해 일하는 경우 남자들의 태도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돌변한다는 것이다.


수입의 절대적 비교뿐만 아니라 근무강도와 시간의 측면의 여러 요인에서도 남편과 아내의 불공평함이 발생한다. 남편이 더 바깥에서 오래 일하니까, 남편의 일이 더 스트레스가 많으니까, 남편의 퇴근시간이 더 늦으니까 가사일은 아내에게 더 전가된다. 가사일 중에서도 육아영역과 관련된 일들은 오롯이 여자의 몫이 되어버린다.


이는 흔히 7-80년대 맞벌이 가정에서 많이 보이던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이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집안일도 전담하는 형태의 맞벌이. 다른 말로 하면 '슈퍼우먼'네 집이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 나름 고소득 샐러리맨이었다. 하지만 그런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투자해야만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과 사회생활을 병행하기 위해서는 고소득 직장에 영원한 이별을 고하고, 칼퇴와 조기퇴근이 보장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꿈의 직장은 안타깝게도 높은 수입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저임금은 가정 내에서 남편과의 힘의 균형을 깨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일은 일대로 하고 집안일도 집안일대로 다하는 슈퍼우먼을 탄생시킬 수밖에 없다.


짧지만 강렬했던 나의 워킹맘 4개월 기간 동안,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 아이 유치원 보낼 준비, 아이 유치원 등원, 제 출근, 회사 업무, 퇴근 후 아이 유치원 픽업, 저녁 준비, 설거지, 빨래, 기타 집안일, 아이 돌보기를 도맡아 했다. 이렇게 해서 번 돈은 고작 백만 원 남짓. 들인 수고에 비해 되돌아오는 리워드가 턱없이, 한없이 보잘 것 없었다. 그런 조건의 직장을 제 발로 찾아간 것이니 회사에 대고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 남편의 입에서 돈도 얼마 못 버는 일에 에너지 쓰고, 시간 쓰느니 힘들면 그만두라는 소리가 나온다. 일리 있는 말이다. 내가 적게 벌고, 퇴근도 남편보다 일찍 하니 가사분담을 내가 더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덕에 남편은 내가 일을 하건 일을 하지 않건 하는 일이 비슷해 온전한 정신을 간직할 수 있었고, 나는 이쪽저쪽에서 허덕거리면서도 돈조차도 얼마 쥐지 못하는 비참한 신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직장도 전쟁터고 집도 전쟁터다



이 '제로섬 게임'은 사회만이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엔 기존 연봉을 유지하거나, 기존 연봉의 시간 단위 임금을 받을 수 있으면서도 근무시간을 단축시켜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직장이 거의 없다. 근무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다면 파격적으로 '알바'의 처우와 비슷한 근로조건의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한다.


아니, 우선 칼퇴근이 가능한 직장과 그렇지 않은 직장의 구분을 먼저 해보자. 칼퇴근이 가능한 직장들 중 대다수는 월급 200만 원의 벽을 넘지 못하는 곳들이다. ㅇㅇ 협회, ㄷㄷ재단, 공무원, 교직원 등 그런 직장들은 대다수 아이 딸린 유부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좋은 직장 내에서도 경리부서의 계약직, 파견직들은 워킹맘들의 전매특허 보직들이다. 돈은 벌어야겠는데 시간적으로 직장에 오래 매이기 어려울 때 월급 200만 원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일자리들이 애 딸린 유부녀들을 유혹한다. 아니, 그 방법밖에는 없는 것일지 모른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월급 200만 원? 여기선 꽤 높은 월급이다. 대다수 워킹맘들이 월급 150만 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만족을 강요당한다. 월급 200만원을 넘게 버는 워킹맘들은 엄청 어깨에 힘주고 다닐 수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동일한 일을 하고 있는 남녀 간에는 임금 격차가 없다. 처음부터 낮은 임금을 주는 직장에 기혼여성들이 몰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남녀 간 임금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기혼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근무능력이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다. 일과 가정을 병행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 외벌이에 비해 맞벌이 가구의 소득이 단돈 150만 원 정도 많다는 기사는 워킹맘들의 근무여건과 연봉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이 300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을 경우 기본적인 자녀케어가 불가능한 여건의 직장일 확률이 높아, 150만 원 정도를 어차피 시터비용이나 친정/시부모님 용돈으로 지출해야 한다. 결국 이러나저러나 워킹맘의 순수입은 150만원을 넘기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모든 직장에서의 근무시간 준수와 단축근무제 도입이 절실히 필요하다. 남자들만 빡센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녀가 모두 가정생활을 지킬 수 있는 직장생활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남편들도 일터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지친 몸을 이끌며 집에 돌아올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에너지를 남겨와서 가정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아내들은 남편으로부터 넘겨받은 에너지를 사회에 환원할 더 강한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출처: 삼성서울병원

짧았던 4개월의 워킹맘 생활 동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녀 간의 임금격차, 불공평한 가사분담의 문제의 본질을 엿볼 수 있었다. 가정을 지킬 수 있게 해준다는 유혹으로 능력 있는 여성들의 인센티브를 끌어내리고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우리나라의 노동시장구조, 유능한 인재들을 9급 공무원 시험에 몰리게 하는 국가현실, 평범한 월급을 받기 위해서 필요이상으로 회사에 충성해야 하는 근로조건 등의 답답한 현실에 좌절했다. 회사의 사정으로 직장을 관두게 되었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해야 된다면 다시 사회생활로 복귀하고 싶지는 않아졌다. 얻을 것이 없는 제로섬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워킹맘 4개월의 경험을 끝으로 나는 온전한 전업맘이 되었다. 앞으로는 부업이나 파트타임 업무 등에도 눈 돌리지 않는 프로 전업맘이 되기로 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한 값진 추억이다.


원문: 스윗제니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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