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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진짜가 되다

조회수 2017. 8. 13. 12: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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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광장을 허하라

광장에서 열린 축제


최강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2017년 1월 14일, 광화문광장에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시민들이 모여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호소하는 제12차 촛불집회를 열고 있었다. 성별, 정치적 성향, 개인적 취향은 각각 다르지만, 민주주의 공화국의 가치를 부정하는 사상 초유의 정치적 스캔들 앞에서 굳은 교감이 사람들 사이에 뿌리를 내렸다. 그 결과 시민들은 2016년 말부터 수개월 간 토요일이 되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엄청난 인파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외형적 규모만으로도 단연 화제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시민 권리의 테두리 속에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이끌어 간 성숙한 시민의식이 너른 광장에서 진행된 촛불집회를 더욱 빛나게 하였다.

광화문광장 주위로는 여전히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지만, 촛불을 든 군중은 차량의 존재감을 압도했다. 광장 주위 건물의 계단과 광화문역 연결통로 계단까지 사람들이 앉아있지 못할 곳은 없었다. 평소에는 그저 오르내리기 위한 도구로 그 자리에 존재했던 계단에 사람들은 바투 붙어 앉았고, 목적지에 가기 위해 지나쳐 다닐 뿐이었던 광장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있었다. 광화문광장의 일반적인 용도와 목적을 폴짝 뛰어넘어 도시의 하드웨어를 새롭게 해석한 사람들의 존재감은 경이로웠고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했다.


특히 이곳이 서울이라는 도시임을 고려할 때 촛불을 든 사람들로 채워진 광장을 목격하는 것은 유독 특별한, 일종의 감정적 체험이었다. 어느 때나 존재했지만, 건물과 자동차로 인해 가려져 있던 ‘사람’의 존재감이 촛불집회라는 우연적인 해프닝을 통해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아니 민주화 이래로 광장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운집한 적이 있는지 돌이켜본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로 인해 시청 앞 서울광장이 붉은 물결로 넘실거렸던 순간이 있고,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광우병 논란으로 인해 촉발된 2008년 촛불집회를 떠올려볼 수 있다. 또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복미사에 참여하기 위한 인파가 광화문광장을 뒤덮은 적도 있다. 그러나 분명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을 위한 촛불집회처럼 수많은 인파가 공간이 설계된 형태와 용도를 압도한 경우는 없었다.


촛불집회의 촉발은 비록 우리 사회의 낯부끄러운 적폐에서 비롯되었지만, 분명 ‘광장’이라는 공간이 지닌 역할과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광장의 상실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여 소통하던 장소, 혹은 축제가 이뤄지던 공간은 대개 가운데가 널따랗게 비워진 형태를 지닌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러한 공간을 채우는 가장 중요한 콘텐츠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집안의 모든 식구가 모이는 혼례와 장례를 비롯한 가정의 대소사는 항상 집안 마당에서 이뤄졌고,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터에서 이뤄지곤 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는 ‘광장(廣場)’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대표할 수 있는 광장을 꼽자면 인지도나 규모, 상징성 측면에서 역시 광화문광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광화문에서 출발하여 세종로사거리와 청계광장까지 이어지는 광화문광장은 폭 34m, 길이 557m 규모로 2009년 8월에야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개장하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을 갖추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출처: 문화재청
구한말 육조거리의 모습
육조거리를 복원한 모형(위) / 한양 서민을 대표하는 거리, 종로(아래)

오늘날 많은 서울시민이 오가는 광화문광장은 우리 사회가 잠시 잃어버렸던 광장이란 공간의 현대적인 복원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광화문 양옆으로 육조(六曹)가 나란히 자리해 있었고, 그사이에 형성된 육조거리는 넓은 공간만큼이나 오가는 인파가 많았던 조선 최대의 ‘마당’이었다.


건축가 고(故) 정기용은 저서 『서울이야기』에서 “우리가 지금 세종로라 부르는 곳은 길이라기보다는 남북으로 길게 폐쇄된 광장이었다”라고 설명한다.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서울역-용산 일본군 주둔지를 연결하는 도심 개발 과정에서 타의에 의해 지워졌을 뿐, 세종로로부터 숭례문까지 이어지는 도로의 원형(原形)은 본래 광장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출처: 서울시 사진기록화사업2005
2005년 광화문광장

일제에 의해 훼손된 광장에는 이후로도 원형적인 회복을 고려할 시간과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산업보국, 현대화의 기치 아래 광화문광장은 더 많은 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한 규격화된 공간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2009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은 ‘600여 년 역사를 지닌 서울의 중심거리 세종로를 차량 중심 공간에서 인간 중심의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포부 아래 기존 왕복 16차로 대로를 10차로로 축소한 이후, 중앙부를 광장으로 조성했다. 하지만 큰 포부가 무색할 정도로, 오늘날 광화문광장의 주인은 여전히 ‘교통’인 것처럼 보인다. 분명 광장이라는 명색을 되찾았지만, 여전히 공간의 주인은 보무도 당당하게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이고, 행인들은 자동차를 위해 설계된 신호에 맞춰 수동적으로 이동할 뿐이다. 자동차로 대표되는 속도 지향적인 삶이 언제부턴가 광장의 의미를 사람들로부터 앗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광장과 자동차의 공존?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자동차가 사람의 공간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거리와 광장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고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완벽하게 사람의 영역이었던 공간을 자동차가 침범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위협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사람들은 자동차의 통행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고, 주행 속도를 시속 10마일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러나 자동차와 관련된 이익집단들은 ‘자동차 자유(Motordom)’라는 운동을 통해 대중의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찰스 몽고메리는 이 시기의 변화를 설명하며 “거리를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행위에는 ‘무단횡단(jaywalking)’이라는 죄스러운 이름이 붙고, 법으로 범죄라 규정당했다”고 말한 바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적인 움직임의 결과, 이제 자동차사고는 운전자의 잘못이 아닌 보행자의 잘못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위협을 느낄 정도로 큰 물체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공간 옆에 있으면 심리가 불안해진다. 게다가 물체들이 시끄러운 소음을 내고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일 경우, 이러한 자극을 받은 인간의 두뇌는 이 공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다. 지금까지 도시 계획가들은 길거리가 이러한 상황이 되도록 설계했다.

– 찰스 몽고메리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광화문광장 역시 현대적인 도시계획의 논리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광화문광장으로 들어서기 위해서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차도와 이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의 위압감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하기에는 차가 양옆으로 내달리는 광화문광장이 경직되고 위험해 보일 뿐이다.


혹자는 광화문광장이 지금도 시민에게 충분히 열려 있으며, 서울 교통의 심장부란 특성을 고려할 때 광장을 둘러싼 차도와 그 위로 이어지는 자동차의 행렬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서울시민은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할까?


우리는 자동차의 개발과 궤를 같이해온 도시의 메커니즘에 너무나도 쉽게 길들어 왔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의 편의성 또는 빠른 속도와 효율성을 택하는 과정에서 포기하거나 잃어버려 결국에는 지워버린 가치들에 대해 되짚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은 놀이터가 된다


광화문역 일대의 유동인구는 평균적으로 7만 명을 웃돌고, 하루 약 9만 명 이상이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5호선에 승·하차한다. 이는 광화문광장이 일상에서 중요한 무대가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을 에워싼 차도는 분명 시민이 광장을 누릴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광화문광장 이외에도 집단적 경험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은데 무엇이 문제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으로 질문하고 싶다. 왜 광화문광장이 눈앞에 있는데 도리어 시민은 광장에서 격리되어야만 하는가?


도시 공간을 사람을 위한 놀이터로 가꾸고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도시설계 전문가와 문화기획자만의 몫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 속에 살아가는 이상 시민은 공적인 공간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생활 양식에 따라서 공적 공간의 모습과 역할은 언제든 새롭게 규정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러한 공간 속에 살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 자신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몇 년 전 파리와 로마를 2주간 여행한 적이 있다. 파리 시내를 걸어 다니는 동안 나는 거리에서 조깅하는 사람을 종종 마주쳤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만으로 그들의 삶 전부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파리 시민들에게는 시가지에서 조깅을 즐기는 게 곧 평범한 일상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에게는 파리를 상징하는 장면처럼 각인되었다.


반면 로마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광장’의 풍경이었다. 피자를 한 판씩 해치운 후에 방문한 나보나 광장에서, 악단을 둘러싼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뛰놀았다. 바이올린, 피아노, 아코디언,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4인조 악단의 연주 소리는 광장의 주인공이자 일상을 영화처럼 만드는 배경음악처럼 느껴졌다.


인상적인 장면은 달랐지만, 파리와 로마의 사람들은 모두 도시에서 삶을 즐기는 나름의 방법을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한 시민을 위해서 파리와 로마의 거리와 광장은 건강하고 충실한 일상을 위해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메마르고 경직된 광장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힘은 결국 시민에게서 비롯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러했듯 광장을 채우는 것은 사람이고,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이 만들어내는 크고 작은 이야기야말로 건강한 도시, 건강한 국가,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는 든든한 밑바탕이다.


도시의 구조와 시스템에 매몰되지 않고 사람이 주체로 우뚝 서는 광장의 미래를 그려본다. 새롭게 마주할 광장의 일상은 사람들이 언제나 함께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일 것이다.


원문: URBANPOLY / 필자: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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