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명성의 한국인 수학자, 허준이 박사와의 기억

조회수 2017. 7. 26. 13: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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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자를 꿈꾸던 물리학도가 세계수학자대회의 초청 강연자로 서게 된 이야기
출처: Quanta magazine

1.



- 요즘 잘 나가는 한국 수학자.jpg (오늘의 유머)
- 나무위키 '허준이' 항목

- Quanta magazine


허준이 박사는 서울대 물리학부 02학번으로 입학하긴 했으나 그다지 과학자의 길에 뜻을 두고 있지는 않았다. 도리어 과학 기자를 생각했을 정도다. 


하지만, 2008년 서울대 방문교수였던 필즈상(수학의 노벨상) 수상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강의를 우연히 듣고 순수 수학에 매료되어 그의 수제자가 되었고, 수십 년간 풀리지 않았던 수학 난제들을 풀어내며 수학계의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8년, 세계수학자대회의 초청 강연자로 서게 되고 필즈상을 넘볼 정도로 우뚝 성장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다.



2.


문득, 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2008년에 허준이 선배와 함께 히로나카 교수의 강의실에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리학과 수학을 복수전공 했기 때문에 대학 4학년 때 졸업시수로 수학 과목을 채우려고 했다.


그러다가 『학문의 즐거움』이라는 저서로 잘 알려진 히로나카 헤이스케 교수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겁 없이 그분의 대수기하학 강의를 신청해서 들었다.


참고로 대수기하학이란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직선'이라 하면 평면 위에 쭉 그은 선을, '원'이라 하면 동그란 모양을 생각하지만, 사실 직선과 원은 굳이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ax+by+c = 0, 그리고 x^2 + y^2 = r^2 이라는 방정식만으로도 완벽히 나타낼 수 있다.


이처럼 방정식만을 사용해서 '그림 없이 기하학을 하는' 수학의 분야가 대수기하학이다.



3.


다시 2008년으로 돌아와서. 강의 시간엔 거의 항상 앞쪽에 앉았다. 재밌기도 했지만 많이 어려웠다. 일본인 교수님의 영어를 알아듣기가 어려운 건 둘째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해석학, 대수학 등 수학과 과정의 과목을 들었다 해도 대수기하학의 기초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대학원 수준의 강의를 들었으니 어려울 만도 했다. 분명 대학 4학년 과목이라고 개설을 해놓고 석박사 수준의 강의를 하다니 이런 함정이…

물리학과에선 '공중요새 건설'이라는 것이 있다. 1학년 때 역학을 듣자마자 2학년 때 선형대수학도 미분기하학도 현대물리학도 듣지 않고 곧바로 대학원 일반상대론을 수강하는 것이다.


공중요새를 여러 번 건설했던 나조차도 이 수업은 꽤나 힘들었다. 다행히 그럭저럭 알아들 정도는 되어서 강의 시간엔 열심히 필기하고, 때로는 강의 중에 교수님의 간단한 실수를 손을 들고 짚어내기도 할 정도가 되었다.


수업 중에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땐 교수실로 찾아가 교수님과 나란히 칠판을 앞에 두고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대화를 주고받다가 무릎을 '탁' 치고 문을 나서며 고민이 풀렸을 때의 달콤함을 만끽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히로나카 교수는 30대의 나이에 당시 수학계의 난제였던 '특이점 해소' 문제를 풀어 필즈상을 받게 되었다. 교수님께 "저도 빨리 공부해서 그 증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 봐야겠다"고 하자 교수님은 "아 그거? 필요 없어. 요즘은 더 세련된 증명들이 많이 나와서, 그냥 다른 수학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너스레를 떠셨다.


또 한 번은 여러 스텝에 걸쳐 수학 정리를 증명하는 과정을 따라가다가 한 지점을 딱 짚으시더니 "자네가 여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한 발짝도 더 나갈 수 없다"고 하셨다. 그때 내가 이해한 것을 설명드리자 "오 그래그래" 하고 그제서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셨다. 당시 문제는 대수적 곡선들을 집합의 원소로 삼아 그 집합에 위상적 구조를 정하는 것이었는데, 칠판에 그려져 있던 그림들이 아직 기억난다.

사진은 학생들이 조촐하게 준비한 히로나카 교수님의 77세 생일파티다, 1931년생이시니, 현재 교수님의 연세는 86세다. 당시 파티를 준비할 때 일본어를 잘 아는 학생 하나가 "칠판에 '헤이짱~'이라고 써 보는 건 어떨까?"했다가 폭소와 야유가 함께 터졌던 기억도 난다.


생일파티에 들어오신 교수님은 "내 나이쯤 되어 보면 생일을 너무 많이 겪어서 지겨울 지경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케이크를 보고 흡족하게 웃으며 기뻐하셨다.


허준이 박사가 화제가 되었던 열흘 전에 이 사진을 바로 올리지 못한 것은 내가 지난 열흘 동안 외장 하드에서 미친 듯이 사진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사진은 결국 교수님께 보낸 이메일 첨부파일에서 찾아냈다.


이 사진은 내가 방금 책장 서류 더미 속에서 찾아낸, 교수님이 당시 나누어 주신 실제 프린트물이며, 파란색 펜 글씨는 교수님의 친필이다.


내가 중요한 서류들은 가급적 버리지 않고 챙겨 다니긴 하지만 이 프린트물이 서울에서 뉴욕, 다시 서울, 그리고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다니는 동안 10년 가까이 분실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참 신기하다.


다 합쳐 몇십 장 안되는 수학 프린트와 필기 노트였지만 당시 내게는 이것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기말고사가 다가오자 집에서 밤새워 공부하다가 머리를 바이스로 조이는 듯한 압박에 망연자실해 바닥에 주저앉아서 멍하니 수학 프린트물들을 내려다보던 기억도 난다.


다행히 수학과 대학원 선배가 시험 며칠 전에 열심히 개인과외를 해 주어서 총 3문제의 기말고사 중 2문제는 거의 완벽하게 풀고 나왔고 학점도 괜찮게 나왔다. 순수수학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었던 한 학기가 지났고, 나는 예정대로 물리학 유학 준비를 하여 다음 해에 유학을 떠났다.


혹시 교수님의 추천서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수학과에 찾아갔을 때 허준이 선배가 히로나카 교수님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몰랐지. 그분이 수학계의 떠오르는 별이 되어 나타날 줄은.



5.


지금은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긴 하지만, 한 시대의 거인이 또 다른 새로운 떠오르는 별을 이끌어 주던 공간에 같이 있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나도 그들의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워지기까지 한다. 실험물리학자가 되어 세계 최초로 양자컴퓨터를 만들어 내겠다는 오랜 꿈을 조금만 내려놓았더라면, 허준이 박사 같은 스타가 되진 못했더라도 어쩌면 지금쯤 나도 순수수학자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효과도 있겠지. 지금 나는 나의 길을 걷겠다. 모처럼 반가운 옛날 기억에 젖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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