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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이야기 구조

오쓰카 에이지는 ‘구조’만이 세계화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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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가출, 고독한 순례 여행, 두 여자와의 섹스, 귀환

- 『기사단장 죽이기』
대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들의 갑작스런 절교, 16년이 지나서 원인을 찾기 위한 순례 여행, 섹스, 귀환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기사단장 죽이기』의 소개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절묘하게 융합된 모험담은 『태엽 감는 새』부터 『1Q84』까지 기존 장편소설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플롯”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루키의 소설에는 일관된 ‘구조’가 있다는 이야기다.


오스카 에이지는 “〈스타 워즈〉의 경우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John Campbell)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제시한 ‘출발-통과의례-귀환’ 즉 ‘갔다가 돌아오는’ 영웅신화의 구조를 충실히 따랐는데 하루키 역시 캠벨의 이야기 구조를 따랐다”는 점을 지적한다.

캠벨의 영웅신화 구조.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일본적인 것’ 덕분이 아니라 오히려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루키뿐 아니라 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요시모토 바나나 등 해외에서도 큰 호응을 얻은 일본문학은 전부 ‘구조’가 두드러진 소설이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 구조는 무엇일까? 오쓰카 에이지의 『이야기론으로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구조’가 무엇인가를 파헤치면서 ‘구조’만이 세계화된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다음은 이 책의 서문 후반부다.

세계화된 일본 문화에는 구조밖에 없다고 하는 가라타니의 지적에서 흥미로운 점은 절대 ‘일본 문화’나 ‘국력’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들과 ‘알려진다는 것’은 서로 다른 얘기다. 그렇다면, ‘구조밖에 없다’는 것은 과연 어떤 표현 방식을 가리키는 걸까. 가라타니가 말한 ‘구조’는 주로 이야기 구조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1920년대 러시아 형식주의(formalism)를 통해 발견된 이야기 구조론은, 표면적으로는 서로 다른 캐릭터와 이야기로 구성된 민담 등이 특정 문화권 혹은 인류 보편의 영역에서 공통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입장을 취한다.

신화나 민담은 특정 문화권 혹은 인류 보편의 영역에서 공통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편성’이란 ‘구조’의 영역에서 먼저 성립되는 것이 아니냐는 가라타니의 지적은 올바르다. 예를 들어 일본 신화의 이자나기·이자나미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이야기가 모두 남편이 저승의 나라로 죽은 아내를 찾으러 간다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애당초 이야기란 공통 구조를 갖고 있게 마련이라 그럴 뿐이지 일본 신화나 그리스 신화의 고유한 문화 전달력이 ‘보편성’을 창출한 것은 아니다. 

가라타니는 어디까지나 ‘구조’를 이야기라는 차원에서만 논했으나 이에 덧붙여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이 주장을 좀 더 음미해보자.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이야기(스토리)라는 차원의 ‘구조화’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도 ‘구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작화(作畵)’ ‘연출’ ‘동작’이란 세 가지 차원이다. 예를 들어 ‘작화’라는 차원에서의 ‘구조’란, 데즈카 오사무가 자신의 그림을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점과 깊이 관련된다. 또 ‘연출’이란 차원에서의 ‘구조’라면 일본의 전후(戰後) 만화에서 기본적 연출론이었던 ‘영화적 수법’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 차원의 ‘구조’는 ‘구성’이라고 바꿔 말해야 하는데, 이는 ‘이야기’가 ‘구조’라는 사실을 발견했던 1920년대 러시아혁명 직후의 소비에트에서 발생한 예술 이론에 준거하고 있다.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은 ‘이야기’ ‘작화’ ‘연출’ ‘동작’이란 네 가지 차원에서 고도로 ‘구성’화돼 있었기에 ‘구조밖에 없는 표현(작품)’으로 세계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서브컬처 문학의 보편화는 이야기 측면의 ‘구조화’를 통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우선, 일본문학이 1980년대에 ‘구조밖에 없는 문학’으로 변용된 상황을 하루키의 작품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이 일본문학보다 좀 더 넓은 영역에서 ‘구조밖에 없는 이야기’가 생겨나던 도중에 벌어졌다는 점도 검증하겠다. ‘구조’라는 문제를 우선은 이야기라는 차원으로 국한해 생각하기로 한다.

이어 하루키와 하야오라는 세계화된 작가의 작품 속 이야기 구조를 검증하여, 반복되는 구조로부터 과연 어떠한 문제를 읽어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겠다. 구체적으로는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에서 실종된 아내 구미코는 어째서 귀환하지 않았는가, 혹은 하야오의 〈벼랑 위의 포뇨〉에서는 어째서 사태 수습에 포뇨와 소스케의 어머니가 나섰고 이야기가 모두 종결된 다음에도 해변 마을의 홍수는 물러나지 않았는가에 대한 답을 내놓을 것이다.

이는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의 〈게드 전기〉는 왜, 어떻게, ‘실패’했는가.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 카프카 소년은 어째서 모험을 떠났으면서도 섹스밖에 하지 않는가, 이런 것들에 관한 설명이기도 하다(전부 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마지막으로 나는 하루키와 하야오가 이야기 구조를 특화시키는 와중에 ‘구조밖에 없는 이야기’에서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회피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또 거기에 또 다른 가능성은 없었는지를 논할 것이다. 그다음으로 거기에 어떠한 ‘일본’이 드러나는가, 아니면 드러나지 않는가의 문제(나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에 대한 결론을 내리겠다.

하루키와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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