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과학: 독서는 인간의 사고와 감성,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조회수 2017. 6. 29. 16: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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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생각'을 위한 별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메이지 말부터 다이쇼에 걸쳐 사람들이 연령과 지역, 성별과 학력의 차를 뛰어넘어 일제히 책을 읽게 되었고, ‘독서의 황금기’인 20세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그 20세기가 끝나고 다음 세기에 들어서자 같은 연령과 지역, 성별과 학력의 차를 뛰어넘어 많은 일본인이 역시 일제히 책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어떤 애서가도, 아니 애서가일수록 여러 조사와 책 판매의 급격한 감소, 무엇보다 일상에서 실감할 수 있는 그 변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언제부턴가 우리는 ‘머지않아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책을 읽는 습관이 없어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몸을 동반한 독서’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 개인적인 기억에 무라사키 시키부와 스가와라노 다카스에의 딸로 시작되는 일본인의 독서에 관한 집단적인 기억이 쌓여 그것이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겨우 책과 연결시키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도 다양한 책이 있고 자신의 관심을 어떤 방향으로도 깊게 만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이 안정적으로 확보된다면, 책을 읽지 않게 된 사람들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차페크의 ‘책으로 돌아가다’, 쓰무라의 ‘독서를 다시 하고 싶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젊은이들의 ‘책이 없으면 곤란하다’, 이러한 발언의 공통된 키워드는 ‘재발견’이다. 즉 커버나 장막 등의 덮개를 벗기고 숨겨져 있던 것을 재발견하는 일. 그리고 현대 일본에서 두꺼운 덮개로 덮여 보이지 않게 된 책은 이전에 기술한 인문서를 필두로 한 ‘딱딱한 책’이다.

- ‘딱딱한 책’이 서점에 진열되는 기간이 눈에 띄게 짧아졌다.
- 그것과 함께 출판사의 ‘딱딱한 책’의 재고 변화가 거의 없어졌다.
- 지방의 작은 서점과 개성적인 서점이 줄지어 폐업하고 있다.
- 전자책 서점의 참상은 말할 것도 없다.
- 그리고 결국에는 믿고 의지하는 공립도서관까지 ‘딱딱한 책’을 노골적으로 꺼리게 되었다.
여기어 ‘일본인이 책을 읽지 않게 된’ 현상을 더하면 ‘독서의 황금기’가 애써 만든 ‘돌아갈 곳’이 불과 21년 만에 줄지어 소멸하거나, 바로 그 직전까지 다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한마디로 말하면 무엇일까. 난폭한 표현이지만, 역시 ‘독서의 황금기’로서의 20세기는 마침내 끝을 향하고 있다.

새롭게 정리하면, 이 ‘황금기’를 실질적으로 지탱한 것은 다이쇼에서 쇼와에 걸쳐 자본주의적 산업으로 재편된 출판 비즈니스다. 직접 동력은 미국형의 말도 안 되는 이윤 추구. 다만 이 단계에서 그것은 소수 엘리트층이 점유해온 독서 습관을 모든 계층의 일본인에 개방한다는 ‘독서 평등화’를 위한 의욕이라고 할 수 있고, 그 나름의 사명감을 수반했다. 그렇기 때문에 관동대지진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위험에 직면하면서도, 그때마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방식과 책을 즐기는 방식을 대중 규모로 실현한다는 목표를 어떻게든 강화해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20세기도 거의 끝나가고 자본주의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즉, ‘바로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풍조가 책 시장에 정착했고, 그런 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란 사람들이 독자의 중심을 차지하게 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극소수의 ‘가장 잘 팔리는 책’에 독자가 쇄도하고 다른 책은 전혀 팔리지 않는 극단적인 현상이 책 시장에 생겼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일제히 같은 책을 읽는다’는 해리포터 현상이다. 게다가 그 시장원리가 공립도서관에까지 조금씩 침투했다.

쓰노 가이타로의 『일본인과 독서』(이와나미쇼텐)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팔리는 책을 펴내는 데 혈안이 됐던 출판업계는 점차 힘을 잃는 것 같다. 그러니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특히 직원 대우가 갈수록 악화한다. 스타에 가까운 출판인의 회사에서 10년 이상 일했다는 편집자의 임금을 전해 듣고는 깜짝 놀랐다. 그 직원은 결국 다른 출판사로 자리를 옮긴다고 한다. 직원들을 혹사해가면서 살아남는 게 생존법이라면 나는 출판계에서 서둘러 은퇴해버리고 싶다.

마케터로 일할 때 오로지 ‘팔리는 책’만을 추구했다. 너무 힘들었다. 다른 방향을 추구하려다 잡지를 펴냈다. 《기획회의》는 업계지다. 19년을 펴냈으면 이제 자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갈수록 힘들어진다. 출판사들이 광고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니 나도 동반해서 힘들어지고 있다. 이 잡지만 없애면 나도 정말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지금 당장 접자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런 고민은 잡지를 펴내는 내내 했다.


이 잡지를 없애버리면 내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나를 도와주지 않은 이들이 더욱 세게 공격해댈 것이다. 물론 책을 다루는 잡지가 없지 않다. 문화부에서 우수잡지라는 이상한 타이틀을 달아주는 잡지가 없지 않다. 나는 그런 이벤트에 단 한 번도 신청한 적이 없다.


게다가 쓰레기 같은 잡지들을 ‘우수잡지’로 선정하는 것을 보고 나 하나만큼이라도 고고한 척하자는 생각을 하고는 아예 잊고 산다. 그런 잡지가 아무리 많아도 출판 담론이 형성되지 않고 출판계를 리드할 게이트키퍼들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잡지를 없애지 못하는 것은 그런 비난이 두려워서는 아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이기성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의 퇴진을 도종환 장관이 있는 자리에서 요구한 모양이다. 이기성은 물러나야 마땅하다. 그는 출판에 아는 것이 없다. 출판 융성기에는 그런 한가한 노인을 모실 여유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출판이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그들은 닭 모이나 던져주며, 한가하게 즐기면서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

출처: 한국출판인회의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없애는 것이 출판인들의 정신 건강에 유리하다. 게다가 닭 모이를 던져준다고 죽어가는 출판이 회생하는 것도 아니다. 단체들 또한 마찬가지다. 물러나라고 소리를 칠뿐 스스로 출판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기관지를 보라! 아예 없는 곳도 있지만, 있어 봐야 수준이 한심하다. 새로운 집행부가 공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기대할 뿐이다. 


갈수록 책에서 멀어져가는 비독자를 독자로 만드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출판의 미래는 없다. 그래서 《기획회의》 444호(2017.07.20)는 특집으로 “읽기의 과학”을 준비하고 있다. 20일 회의에서 논의된 것을 어제저녁에 편집자가 정리해 특집안을 보내왔다.


우리나라는 현재 선진국 중 성인들 중에서 비독자가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힌다. 그뿐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가 독서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서가 인간의 사고와 감성과 추론,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아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영국의 대문호 마틴 발저는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고 했다. 우리는 독서의 효용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지만, 어쩐지 근거 없는 이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은 독서가 우리의 뇌에도 매우 실질적인 이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독서가 뇌의 연결성을 향상시키며 이해력과 공감 능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다양한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사회과학 쪽에서도 독서가 사회의 발전도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이에 《기획회의》는 독서와 관련된 최신 연구를 살펴보고, 독서의 효용성에 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독서운동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 될 것이다.



1. 과학적 관점에서의 독서의 필요성

인류의 뇌는 독서에 적합하도록 진화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문명이 들어선 이래, 인류 문명에서 독서는 계속해서 그 중요성이 커져 왔다. 진화론에 따르면 독서가 인간에게 비용을 넘어선 이득을 가져다주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문명은 인간이 독서에 적응하도록 만들었다.

침팬지와 달리 인간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획득한 경험을 세대를 뛰어넘어 전달할 수 있었고, 이러한 집단 작업이 가능한 것이야말로 문명의 탄생, 축적, 번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다. 문명을 통해 인간은 ‘사회적 학습자’로 진화했고, 이러한 진화를 촉진한 것이 문자 텍스트(넓은 의미의 ‘책’)의 존재다.

정보 물리학의 관점에서 책은 정보 전달의 성공률(복제 충실도)을 획기적으로 높였으며, 독서는 인간의 사회적 학습을 촉진하고 인간을 사회적 학습자로 진화시킨 ‘문명의 엔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뇌 전체를 활용하는 독서는 느린 생각(창의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행위다.

특히 문학 작품을 많이 읽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정서에 반응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책을 읽는 것은 뇌의 잠재능력을 활성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상기 내용은 장대익 교수의 국회 발표 자료이다. 그동안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주로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해왔다. 《기획회의》에서는 최신 과학의 연구 성과에 바탕을 두고 독서의 필요성을 과학적으로 해명해본다.

2.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독서의 필요성


카네기 멜론 대학의 연구원들은 100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독서를 한 아이들의 두뇌를 관찰했다. 그 결과 독서 후 두뇌에서 뇌의 소통을 향상시키는 백색 물질이 증가했다고 한다. 또한 스페인의 한 연구에서는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이 실제로 경험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자들은 독서의 방식에 따라 뇌의 자극이 달라진다는 것을 밝혔는데, 시험을 전제로 소설을 읽는 것과 즐기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경우 둘 다 뇌의 혈류가 증가했지만 각각 다른 부분이 자극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사실 독서는 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관점이 있었다. 독서는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독서 자체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낭비 활동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지속적으로 독서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최신 놔과학의 연구 성과를 보면 독서는 분명 비용을 넘어선 어떤 이득을 인간에게 가져다준 것 같다. 독서를 하는 것이 인류에게 어떤 진화적 필연성을 가져다주었는지 살펴본다.



3. 사회과학적 관점에서의 독서의 필요성


한국경제연구원의 「독서의 경제적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가별 연평균 독서율은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글로벌 경쟁력 지수’나 ‘경제적 혁신성 지수’(이상 세계경제포럼 발표), ‘글로벌 기업가 정신 지수’ 등과 밀접하게 연동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은 종이책 9.2권 전자책 1권으로, 10.2권에 불과하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평균 통계가 책을 거의 읽지 않는 다수와 소수의 다독가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독서에도 중간층이 사라진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학력이 높고 가구 소득이 높을수록 독서 효용의 인식과 독서량이 높다는 조사도 나왔다. 또한 중앙아시아에서 실행한 대규모 실험에서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거의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역사 인식과 자아 인식마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고 한다.


독서의 민주화, 독서를 통한 국가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퇴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미국의 SAT리딩에서는 정보를 얻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에 독서가 SAT 점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실례를 들지 않더라도 독서는 간접경험을 통해 자기 안에 갇히는 걸 막고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사회과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독서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4. 교육학·발달학적 관점에서의 독서의 필요성


책을 읽는 아이는 눈에 들어오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양쪽 후두엽, 언어 이해에 필수적인 측두엽, 기억력과 사고력 등 인간의 고등 행동을 관장하는 좌뇌의 전두엽 부위들이 점점 빠른 속도로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운다. 독서로 인해 활성화되는 백색 물질은 각자 다른 일을 하도록 설계된 뇌의 여러 부분을 연결시키고, 상호작용하여 입체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독서는 통찰력과 창의력, 나아가 사회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독서는 성장기 아이들의 지능을 좌우하고, 이는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38.5%의 학생이 학업 이외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독서로만 놓고 보면, 한국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퇴보하고 있다.


독서의 퇴보와 부재는 창의성이 요구되는 지식 기반 경쟁 사회에서 개인과 국가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 특히 아동청소년기의 독서 경험이 평생 독자를 가르는 만큼, 아이들의 독서는 더욱 중요하다. 발달학, 교육학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의 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본다.



5. 여가학적 관점에서의 독서의 필요성


자신만의 통찰을 이끌어내는 창의성의 원천은 독서다. 장대익 교수에 따르면,

인간의 뇌에서 ‘느린 생각’(창의성)을 담당하는 것은 전전두 피질인데, 전전두 피질은 상당한 에너지 소모를 가져온다. 따라서 뇌가 ‘느린 생각’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별도의 훈련이 필요한데, 이는 시청 등 디지털 정보 습득 과정에서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뇌 전체를 활용하는 독서야말로 느린 생각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는 행위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기존에 연결하지 않았던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 ‘창의적 연결 능력’을 갖춘 인재들은 독서를 통할 때 가장 효과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창의력은 읽기를 통해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할 때 개발된다. 또한 김정운 교수에 따르면,

21세기에는 새로운 지식이 지속적으로 창출되지 않는 나라는 망한다. 창의성은 정보의 집적과 조직화를 통해 가능하다. 정보의 ‘크로스오버’를 할 줄 알아야 창의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정보의 크로스오버를 통한 ‘낯설게 하기’를 아인슈타인은 ‘조합놀이’라고 불렀다.

창의성의 원천이 되는 독서놀이는 현대철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노동의 효율성을 맹신한 근대의 파국을 돌파할 탈출구를 찾던 지적 노력이 놀이를 새롭게 발견하면서 놀이는 인간과 세계 이해를 위한 중심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놀이는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의 수단이자 문화의 시원이기도 하다. 여가학적 관점에서 독서의 효용성을 살펴본다.


특집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쟁쟁한 이들이 필자 후보에 올라있어 무척 기대가 된다. 여가학적 관점에서의 독서의 필요성을 하나 추가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주었다. 이런 특집을 꾸리는 재미로 살고 있다. 다소 느슨한 것 같지만 출판계에 종사하는 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에 모두가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힘들어도 버티고 있다.


어제 서울도서관에서 ‘독서대학 르네21’에서 “책으로 세상을 건너는 법”에 대해 강연을 했다. 빈자리 없이 들어찬 이들이 정말 진지하게 들어줬다. 내 강의는 네 강좌 중 세 번째였다. 앞선 강의들은 기술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는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놀라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은 처음에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결국 기술은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해왔다. 이번에도 반드시 그럴 것이다.


원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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