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에 대한 단상

조회수 2017. 6. 14. 18: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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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몰카 피해자가 될 뻔한 적이 있다.
나는 몰카 피해자가 될 뻔한 적이 있고, 사실은 이미 돌아다니는 몰카 영상 속의 여성 중 한 명일 수도 있다.

대학 2학년 때, 모 유명 체인점 카페에서 친구들과 떠들던 나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옆 복사실에서 발표할 프린트물을 찾아오겠다고 말한 후, 그 건물의 여성용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선 나는 가방과 옷을 걸고, 바지를 내리려다 문득 앞을 보았다. 문 쪽 고리에 있는 나사가 눈에 띄어서 멈칫 한 것이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뭔가 달랐다. 단 하나의 나사만이 조금 더 검고, 튀어나와 있었고, 조금 더 컸다.


바지를 내리려다 말고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나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그 나사에 플래시를 비췄다. 안쪽에 뭔가 매끈하고 영롱한 것이 있었다. 너무 놀라 입을 막으며 물러섰다.


순간 소름이 끼치며 얼굴을 가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가방을 열어 필통에서 샤프를 꺼냈다. 0.3짜리 제도 샤프. 그것을 나사의 가운데에 대고 꾹 힘을 주며 밀자 어느 순간, 파삭! 하는 소리가 나며 샤프가 안으로 콕 들어갔다.


‘미친… 렌즈가 맞는 거 같은데……?’ 나는 허겁지겁 옷과 가방을 챙겨 들고 매장으로 뛰어가서 사장을 불러달라고 했다. 직원들이 당황하여 사장을 불렀고, 아직 테이블에 있던 친구들도 놀라서 다가왔다.


사장이 나오기 전, 나는 아!! 하는 생각에 여자인 친구에게, “너 여기 여자 화장실 가서 문 안쪽에 나사 다른 거 몇 칸이나 되는지 확인좀 해주라. 내가 정신이 없어서 그걸 잊고 그냥 나왔네. 부탁해.” 하고 속삭였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부연설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왜 급히 뛰어들어왔는지, 여자 화장실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채고는 빠르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사장이 나왔다. 사장에게 잠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구석진 테이블로 안내했다.


화장실에 몰카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자 사장은 무척 놀랐다. 네? 어디에요? 어떤 모양으로요? 나사 모양으로요. 일단 제가 렌즈는 부신 거 같은데 보통 안쪽에 메모리칩이 있지 않나요? 경찰을 불러서 신고하시고 그걸 분해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 제 친구가 갯수를 확인하러 갔어요.


사장은 갈팡질팡하는 듯했다.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지. 가게 종업원이 그런 건 아닐까. 가게 전용 화장실인데 이미지가 나빠져서 여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의 생각이 눈에 읽히는 듯했다.


잠시 기다렸다. 친구가 와서는 “하나뿐이더라.” 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안에 어떤 영상이 저장되어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다른 여학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것의 본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얘기를 들은 사장은 곧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경찰에 전화를 했다.

나는 수업을 빠지기로 했다. 느슨하게 관리하던 내 성적보다 온라인에서 음습하게 나돌아다닐 불특정 다수의 여성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친구 한 명이 함께 남고 나머지는 수업에 들어갔다. 무슨 일인지는 우리끼리만 알기로 하고.


경찰이 와서는 사장과 대화를 했다. 사장은 뭐라 뭐라 머리를 긁적이고 고개를 저었고 화장실은 잠시간 폐쇄됐다. 사장은 나에게 잘 해결했다며 정말 죄송하다고, 범인이 잡히면 연락을 드릴게요 했다.


며칠 후 다시 가본 화장실의 나사는 정갈하게 모두 같은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왜 있는지 모르지만, 화장실 문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알 수 없는 구멍들도 실리콘으로 모두 메워져 있었다.


실리콘을 만지며 생각했다. 이렇게 하고도, 많은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볼일을 보겠지.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마치 내가 아닌 듯 보이기 위해 울적하고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수그린 채 볼일을 보겠구나. 수상한 무언가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찍힐까 봐 그것조차 두려울 테니까.


친구들은 나에게 그건 너무 감정낭비이고, 시간 낭비인 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정말 가끔 새벽에 P2P 사이트에서 화장실 몰카 등을 검색한다. 그리고 검색에 걸려 나오는 게시글마다 신고를 누른다.


신고를 넣는 순간 순간, 제목을 보며 몸서리를 친다.

’00역 여자 화장실’

‘0여대 00관 여자 화장실’

‘여사친 자취방 화장실에 몰래 설치해 둔..’

수많은 게시글과 댓글들이 나를 짓누른다. 댓글 대부분은 더러운 년들이라며 영상 속의 여성에게 모멸감을 주는 욕설들이다. 자신들도 위생적으로 더럽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 굳이, 욕하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으면서 비웃기 위해, 그렇게 희열을 얻기 위해, ‘찾아서’, ‘본다’.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행해지는 배설의 행위. 아무리 친밀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하는 그 가장 원초적이고 무방비한 그 모습이, 여성으로 태어난 죄로 낱낱이 찍히고 까발려지는 그 저열한 행태들에 헛구역질이 난다.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저급함은 또 어찌나 가장 낮고 더럽고 추악한 그것과 그리도 똑 닮아 있는지.


며칠 전, 나는 급성 편도염으로 무척 아팠다. 열이 39.3도까지 올라가 병원으로 향하다 커피숍 벽에 부딪히며 주저앉기도 했다. 안에서 뛰어나와 준 커플 덕에 무사히 병원에 도착했고, 나는 의사 선생님에게 마치 유언처럼 “저에게 수액을…” 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조용히 병원 침대에 누웠다.


링거를 거의 다 맞을 무렵,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빠른 수분 공급 덕이었다. 곧 간호사분이 오셔서 링거 바늘을 빼고 처방전을 챙겨 나가셔도 좋다고 했다.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그러겠노라고 했다.


열이 채 가시지 않아 비틀비틀 병원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여자 화장실 앞에 웬 남자가 서 있었다. 나는 걷다 말고 우뚝 서서 그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뭐라 뭐라 쓰인 조끼를 입고 있었다. 내가 몇 초간 말없이 그를 쳐다보자 그 사람은 “점검 중입니다.”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는 다시 돌아서 병원에 가 옷을 챙겼다. 열이 나고 날도 더웠지만 후드 집업을 챙겨서 나왔었다. 약국에서 약을 사며 화장실이 이 층 말고 또 어디 있냐고 했더니 층마다 있다고했다.


화장실 앞의 남자는 사라졌지만 나는 무척 불안했다. 어떠한 직업인 ‘척’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이 매우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일 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더운 날, 열이 채 다 가라앉지도 않았던 나는, 후드를 덧입었다. 후드를 입고는 얼굴 반 정도를 가릴만큼 모자를 끌어내렸다. 고개를 숙인 채 1층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후다닥 나와서 손을 씻고 나왔다. 밖에 나와 후드를 벗자 시원한 공기가 밀려오면서 힘이 쭉 빠졌다. 이렇게 아픈데도, 몰카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니. 무언가 알 수 없는 우울이 밀려왔다.


그날은 결국, 바로 집으로 가지 못했다. 해열제를 한 번 더 먹지 않고는 집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아 근처의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가 스프를 먹고 약을 먹은 후 죽은 듯이 엎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손님 없는 샌드위치 가게에 앉아 열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나. 열이 펄펄 끓는데도 굳이 후드를 덧입지 않고는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나. 밖의 햇빛은 따사롭고, 나는 어두웠다.


집에 와서는 기절하듯 잠에 빠졌고, 그다음 날 일어나니 친구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저번에 팔던 몰카 페이지, 다시 열렸더라.’ 친구에게 링크를 부탁했다. 페이지 이름과 광고멘트는 달랐지만 분명 저번 그곳이 맞았다.


몰래카메라용 볼펜과 다른 몰카 용품들을 팔면서, ‘남자의 품격’이라고 지칭하던 그 곳. 댓글에서 수많은 남성들이 친구들을 소환하며 ‘그분한테 ㄱ?’ 하며 킥킥대고, ‘선물로 사줄까?’ 하고 있던 그 곳.


내가 이 볼펜의 용도가 무엇이냐, 물건 이름부터 무척 구리다. 몰카를 찍는것이 남자가 갖추어야 할 품격이냐. 도대체 남성을 일반화시키는 것은 정작 누구나며 목소리를 높이자 나를 차단하고, 그 후에 줄줄이 달리는 내 지인들의 비판댓글을 모조리 지우고 차단했던 그곳.


그런곳이 영업을 한다. 버젓이. 댓글에서는 정말 억울한 상황에서 증거 채취용으로 유용히 쓸 수도 있는데 대체 왜들 그렇게 예민하게 구느냐는 말들이 오간다. 이러니까 꼴페미, 프로불편러, 메갈이라는 소리를 듣는거라며. 아무것도 아닌데 너희가 불편한게 문제라고.

버젓이 팔리고 있는 몰카 제품들.

점점 교묘해지고 감쪽같아지는 그 물품들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손쉽게 살 수 있는 곳들이 생활에 밀접해지고, 나와 내 친구들은 더더욱 불안에 떤다. 그런 기기들을 소개하거나 고발하는 기사에는 이런 댓글들이 달린다.


“조심해.”

친구나 연인을 태그해주며 조심하라고 한다. 무엇을?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나 감쪽같고 교묘해서 자신들도 실제와 구별이 어렵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저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조심’해서 피한단 말인가. 그것에 대해 반박을 하는 댓글 아래에는 또 이런 댓글들도 달린다. ‘정 그렇게 무서우면 나오질 말든가. 참든가 하면 될 걸 별걸 가지고 예민하게 구네. 그냥 조심하라는 건데.’


급작스레 볼일이 마려우면 풀숲이나 으슥한 곳 어디서라도 바지춤을 풀고 볼일을 보는 남자들과, 배설을 위해 마련된 장소에서조차 ‘조심’하거나 눈앞에 화장실을 두고도 두려워서 볼일을 ‘참아야’ 하는 여자들. 기이하지 않은가?


심지어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성 해방 전사라는 사람이 말하길, 몰카를 만드는 사람들도 가족이 있고 생계를 위해 몰카를 만드므로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엄중히 경고’한다고.


몰카를 만드는 사람들의 밥줄을 빼앗는 것이 ‘피해자’들인가? 피해자와 가해자를 감쪽같이 뒤바꿔놓은 말도 안 되는 저 논리는 잠시간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몰카를 설치하고 누군가의 삶을 짓밟는 일과, 삶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목소리를 내는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고작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기이하고 소름까지 끼치는 사고방식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누가 누구의 삶을 빼앗고 망치는 것인지는 너무나도 자명하지 않은가? 몰래 무언가를 하는 모든 것들은 죄로 간주한다. 주인 몰래 무언가를 가져가는 일. 몰래 도망치는 일. 몰래 먹어치우는 일. 모든 것에 ‘몰래’가 붙으면 나쁜 일이 된다. 


그런데 왜 대체 몰래 남의 신체를 찍는 일은 그들이 ‘조심하지 않아서’, ‘그렇게 입었기 때문에 그래도 되는’ 일들로 취급되는 걸까?


토렌트나 P2P 사이트에 몰카 피해자들의 영상이 가장 활발하게 올라올 때가 있다고 한다. 수치상으로 통계까지 나와 있다고 해서 그 순간이 언제인가 물었더니, 대략 피해자들의 돈이 떨어질 때쯤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나라의 몰카 유통량이 너무 많고 경찰에서 그것을 다 제재하기 어렵다 보니 사설 업체를 통해 영상을 삭제하곤 하는데, 그것을 노린 판매자들이 그 영상이 퍼지기 시작한 순간보다, 나중에 더 열심히 그것들을 올린다고 했다. 그때쯤이면 사설 업체에 지불할 비용이 다 떨어졌으리라는 것을 알아서 그렇단다.


사람의 가죽을 쓰고 금수보다 못한 짓을 한다.


이런데도 단지 여성들이 예민해서 애꿎은 남성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조심하라고 말하는 그 손가락들의 주인들도 이미 알고 있다. 진짜 잘못은 누가 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들을 단속하고 책망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여성들에게 더더욱 조심하라 이르며 행동에 제약을 두는 것이 아니라, 몰래 카메라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제조/판매업체들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요구해야 한다.


단지 남자이기 때문에 욕먹는 것 같아 불쾌하다는 남성의 ‘기분권’이 정녕 실제로 피해받고있고 삶에 대한 위협을 느끼며 살고있는 여성들의 ‘기본권’보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분들은 제발 없기를 바란다.


여성의 위치가 올라가는 것이 곧 남성의 지위 하락을 뜻하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가해자들은 힘과 정당성을 얻는다.


이런 글을 쓰면 꼭 이러한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즈그네 딸이나 누나, 여동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할까.’ ‘제 딸한테도 저런 일이 일어나봐야 잘못한 줄 알지.’


나는 피해자가 당신의 딸이거나, 여자 형제이거나 등등 가까운 사람이어도 그렇게 반응할 것이냐 하는 댓글들도 싫다. 잘못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항상 대신 벌을 받을 것이라 가정되는 것은 가해자와 가까운 여성이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누구의 딸이든, 누구의 엄마이든 누나이든 동생이든 그 어떤 사람도 겪지 않아야 할 고통이다. 자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대입해보지 않더라도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을 굳이 알려줘야 하는 세상.


그 세상에서 나는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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