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혼자 떠나는 좌충우돌 팔라완 여행기

조회수 2017. 6. 11. 15:3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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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극소수의 지인들만 아는 얘기인데 이전에 운영하던 위인터랙티브를 폐업 후 2015년 1월에 개인파산면책 선고를 받고, 그해 4월에 또다시 열정을 갖고 바로 재창업을 했다. 그런데 개인파산 때 이의 신청조차 하지 않은 이전 투자사가 재창업 소식을 듣고 투자금 반환 소송을 걸었다. 나는 면책 받았기에 당시 등기이사에 이름만 올려놓았던 누나에게 걸렸다.


나는 1급 지체,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다. 혼자 걸을 수 있지만 300미터쯤 가면 앉아서 조금 쉬어야 하고 양손은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 외에는 생활이 불편할 정도다. 언어장애가 있어서 처음 만난 사람은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듣기 힘들다. 이런 내가 혼자 해외여행을 어떻게 가냐고? 그 방법은 이전 여행기에서 자세히 밝혔다.


1년 넘게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 많은 상처도 받고 사업 의지도 꺾였다. 마지막 변론기일을 기다리며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 계획을 세우기 위해 정말 아무런 계획 없이 필리핀으로 떠났다.

팔라완 바다의 아름다운 모습

1. 천사의 도시 앙헬레스 시티 Angeles City


이전 여행기에서 친구가 된 수빅 리조트 직원 마크(Mark)가 HR 관련 라이선스를 취득해 앙헬레스에 위치한 4.5성급 호텔인 아쿠아 비치 클럽(Aqua Beach Club)이라는 곳으로 이직했다. 놀러 오라고 해서 검색해보니 주말에 풀 파티와 디제잉도 하는 곳으로 무엇보다 인피니티 풀과 투프탑 바가 맘에 들었다.


무턱대고 다른 일정은 안 짜고 그 호텔만 3박을 예약하고 출발했다. 나머지 일정은 동행자를 구해 보라카이 등의 휴양지에서 생각도 정리하고 쉴 요량이었다.


알고 보니 앙헬레스는 동양 최대의 유흥가였다. 대충 봐도 거리에 바가 100개는 밀집해 있었다. 신기하게도 마닐라에서 차로 2시간 밖에 안 걸리는데 클라크필드라는 공항이 있었고, 한국 직항이 매우 많았다. 한국인들이 골프와 유흥, 카지노를 즐기러 많이 오는 것 같았다. 거리에는 한식당이, 카지노에는 한국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다행히(?) 내가 묵은 호텔에는 한국인이 없었다. 한국인들은 주로 2~4만 원짜리 저가 호텔을 이용하는 것 같고 여기는 유흥보다는 휴식을 취하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매우 비싸지도 않다. 1박에 100달러 정도.


친구인 마크는 아침부터 낮까지 호텔 일로 바빴다. 혼자 아침부터 루프탑 바에서 경치를 보며 맥주 한 잔하고, 옆에 앉은 호주 아저씨와 인도 아저씨들과 친해져서 위스키도 마시며 취했다. 그 후 그 아저씨들과 바와 카지노를 다니며 놀았다.

아침부터 루프탑바에서 취한…

저녁이 되자 기다리던 풀 파티와 디제잉 공연을 했다. 혼자 여행 온 한국인 여성을 만나서 마크와 함께 디제잉 공연과 음주를 즐겼다. 

디제잉 공연에서 만난 한국인
야밤에 혼자 물에서 떠다니기

2. 즉흥적으로 떠난 팔라완 여행, 그 험난한 여정


호텔 체크아웃 전날 밤, 잠도 안 오고 다음 여행지를 정해야 해서 랩탑을 들고 가서 호텔 바에서 혼자 롱티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서 술 마시던 영국 청년이 장애인 혼자 여행하고 다니는 것이 신기했던지 말을 걸어왔다. 항상 그렇듯 어디서 왔냐? 몇 살이냐? 직업이 뭐냐? 등의 상투적인 대화로 시작, 나를 좀 더 어필하기 위해 영문 프로필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항상 사람들이 묻길 언어장애 때문에 한국말도 잘못 하면서 어떻게 외국인들과 소통하며 친해지냐고 궁금해한다. 적어도 그들은 내가 말을 잘 못하더라도 알아들을 때까지 들어준다. 영문 프로필 페이지를 보여주면 “Amazing Life! You are genius!”라며 자신들이 더 흥분하고 관심을 보여 적극적인 대화가 이루어진다. 영국 청년과도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은 한 달째 세계여행 중이며 다음 여행지로 팔라완이나 보라카이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난 내일 체크아웃이고 나도 다음 여정이 없으니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여행지를 정하려고 둘이 대화를 하던 중 바로 옆자리에 있던 싱가포르 여성이 말을 걸어왔다. 재미있어 보였는지 여행에 자신도 끼워 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쾌히 승낙했다.


셋이 논의하던 중 세계적인 청정지역이자 다이버들의 천국인 팔라완을 가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내 랩탑으로 같이 리조트를 예약하고 친구 마크에게 팔라완을 어떻게 가냐고 물었다. 자기 누나가 팔라완에 살아서 잘 아는데 마닐라 공항에서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랩탑으로 항공권까지 예매하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마닐라 공항으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렇게 29세 영국 남성 데미안(Damian), 20세 싱가포르 여성 메카(Meca), 36세 나의 드라마틱한 팔라완 여행은 시작되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 내가 말을 먼저 걸면 도망가거나 돈 1,000원 손에 쥐어주며 거지 취급하기가 일쑤였다. 정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는 세상이었다. 나도 이런 세상에 살고 싶다….

왼쪽부터 메카, 나, 데미안

다음 날 오전 11시 30분에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 도착했다. 예약한 클럽파라다이스 리조트까지 택시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택시기사 어느 누구도 그 리조트를 몰랐다. 심지어 공항안의 여행사 직원조차. 프린트해 온 리조트 바우처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하니 없는 번호란다. 인터넷도 전혀 안되고 국제 미아가 된 상황. 


마크의 누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기로 했다. 그 리조트까지는 차로 7시간, 배로 5시간을 가야 한단다. 거금을 주고 벤을 빌려서 출발했다. 선착장에 오후 6시 정각에 도착했는데 마지막 배인 6시 배가 이미 떠났단다. 어쩔 수 없이 허름한 호텔을 잡아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첫 배가 있다고 해서 새벽 5시에 일어나 선착장으로 갔더니 8시로 딜레이 되었다고… 아침을 먹고 8시에 출발해서 오후 3시가 넘어서 도착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예약한 리조트는 작은 산호섬 통째가 리조트라 리조트에서 픽업 나온 차로 1시간, 배로 1시간 30분 더 들어가야 했다.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리조트에 드디어 도착했다. 그 비싼 리조트비를 거의 2박 날린 셈이다.

선착장에서 찍은 리조트 전경
아름다운 리조트 풀장

클럽파라다이스 리조트의 모습은 정말 파라다이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체크인할 때 리조트 직원의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코론 공항에서는 리조트까지 한 시간 밖에 안 걸린단다… 순간 마크에게 화내고 싶었지만 뭐 마크 얘기만 듣고 검색도 안 해보고 바로 비행기를 잘못 탄 내 잘못이지 누굴 탓하겠는가? 그저 함께 온 데미안과 메카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3. 리조트에 혼자 남다


체크인을 하고 셋이 방에 들어오니 7시 반. 이미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방에서 룸서비스로 음식을 시키고 편의점에서 사온 6,800원짜리 와인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 후 잠을 청했다. 리조트비가 비싸서 3명이 혼숙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 조식을 챙겨 먹고 쪽빛 바다에서 수영을 했다. 바다색이 세부나 푸켓 등과는 또 달랐다. 리조트 바로 앞 바다에 다 산호초가 깔렸고 열대어도 보였다. 리조트 직원의 말에 의하면 조금 더 깊게 가면 듀공도 있다고 한다(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쿵푸 듀공을 꼭 보고 싶었는데ㅋㅋㅋ).

점심은 양고기 스테이크와 와인

수영으로 지친 우리는 양고기 스테이크와 포크 바비큐, 숙취해소용 똠얌꿍 그리고 사온 와인까지 거하게 먹었다. 그런데 점심 식사를 하던 중 데미안이 갑자기 자기는 코론 본섬 쪽으로 가야겠다는 말을 꺼냈다. 


여기는 섬에 이 리조트 한 곳 뿐이라 스쿠버다이빙, 호핑투어 가격이 본섬에 비해 4배나 비싸다. 데미안은 매일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쉽지만 보내주었다. 메카와 나 단둘이 남은 상황이 조금 어색했지만 둘이 마사지도 받고 수영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메카와 나

그런데 메카가 리조트에 온 첫날부터 단둘이 있을 때 러브유라고 속삭이지 않나 딥키스까지 시도(?)하고 나 혼자 샤워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샤워도 도와주기까지 했다. 사실 기분은 좋았지만 띠동갑도 거의 두 바퀴라 부담스러웠다. 


문제는 다음날 수영장에서 체코 여성 둘과 친해지며 생겼다. 직업이 웹디자이너라 말도 잘 통했고 영문 프로필을 보여주며 더욱 대화가 활발해졌다. 편의점에서 사온 와인 3병을 같이 마신 뒤 방에 가려고 했으나 자기 방에 보드카가 있다며 방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다. 결국 그녀들 방에서 밤새 술 마시고 취해서 잠들었는데…


아침에 내 방에 가니 메카가 엄청나게 화내며 체크아웃했다. 결국 리조트에 혼자 남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정말로 좋아했던 것일까? 아직도 궁금하다. 지금은 메신저로 사과를 해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다. 현재는 라오스를 여행중이라고.


위 두 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이었으면 어땠을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18살 차이가 나는 중증 장애인 남성과 한방을 쓸 여성이 있을까? 중증 장애인 남성이 리조트에서 여성과 과연 즉석 만남을 할 수 있을까? 장애인이 말만 걸면 기겁하고 도망갈 것 같은데 말이다.


한국 사회는 왜 유독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할까? 그보다 약자를 너무 깔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심하다.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 발전보다 바로 이런 점이 고쳐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4. 난생 처음 하게 된 스노우쿨링과 호핑투어, 그리고 씨워크


메카가 떠나고 리조트에 혼자 남은 나는 체코 여성들과 함께 호핑투어와 스노우쿨링을 하게 되었다. 다이버들의 천국이라는 팔라완까지 와서 스쿠버다이빙은 못할지언정 스노우쿨링이라도 너무 하고 싶었다. 리조트 직원 젭(Jhep)에게 나도 하고 싶다고 말하니 충분히 가능하다며 함께 바다에 들어가주었다.

체코 여성들과 함께한 호핑투어
스노우쿨링 후 한 컷
스노우쿨링을 도와준 젭

수영도 전혀 못하고 물속에서 뜨지도 못하는 내가 스노우쿨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보는 팔라완의 바다 속은 환상 그 자체였다. 비록 듀공은 못 봤지만 총 천연색의 열대어들은 아주 아름다웠다. 


스노우쿨링에서 용기를 얻어 씨워크에 도전을 했다. 리조트에는 시설이 없어 거금을 들여 코론 본섬으로 이동했다. 그리 수심이 깊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온갖 물고기가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역시 세계적인 청정지역! 이래서 팔라완이 다이버들의 천국이라고 하는가 보다.

바닷속 모습

5. 거의 24시간 나를 케어해준 고마운 리조트 직원들 


데미안과 메카가 떠난 후 2박만 머물려 했으나 한국행 비행기표가 없어서 2박 더 머물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4일간 혼자 지냈다. 그때부터 리조트 직원 2명과 리조트 담당 닥터가 거의 24시간 케어해주었다.


리조트 하나뿐인 섬이라 직원들이 리조트에서 숙식하며 밤 늦게까지 도와줬다. 일어나자마자 휠체어 스텝을 불러 휄체어를 타고 아침 산책도 하고, 원하는 곳까지 다 데려다 주었다. 한국 같았으면 장애인 혼자 왔다고 분명 문전박대 당했을 것이다. 확실히!

나를 케어해준 젭과 닥터 케이트

4일간 정든 우리는 마지막 날 밤, 서로 아쉬워하면서 와인을 다섯 병이나 마시고 밤 늦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다음에는 꼭 가족이나 여자친구와 같이 오겠다고 약속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마지막 저녁식사 젭과 닥터 케이트

6.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한국 귀국길


리조트에서 나와서 코론 공항까지 보트를 타고 한 시간 걸려서 도착했다. 코론에서 마닐라까지, 다시 마닐라에서 인천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코론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있는데 공항 직원이 왔다. 마닐라에 도착해서 터미널 3에서 터미널 4로 이동해야 하는데 셔틀버스나 택시로 10분 가량 이동해야 해서 혼자서는 보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전 여행기에서 말한 것처럼 휠체어 케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었고, 코론-마닐라-인천 모두 세부퍼시픽 항공으로 같기 때문에 당연히 터미널 간 이동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서비스는 해줄 수가 없다고 한다.


황당하지만 나는 리조트 직원 젭의 항공권을 사주고 같이 마닐라까지 같이 가기로 했다. 하지만 꼭 보안관이 동행해야 한다고 한다. 그럼 보안관하고 둘이 가겠다니 그것도 안 되고 보안관과 동행자 이렇게 셋이 같이 가야 한단다. 너무도 황당해서 한참을 다투었는데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꼭 보안관이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갑자기 구토가 나고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공항 오기 전날 잠이 안 와서 한숨도 못 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이대로는 귀국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다량의 근육이완제를 복용했는데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약에 취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는 너무 아프고 구토만 4번이나 했다. “정말 죽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얼른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보안관의 항공권도 사주고 셋이 출발하게 되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구토하는 나를 응급실로 데려가지 않은 것이다.

휠체어 케어 서비스로 이동

휠체어 케어 서비스를 통해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할 때쯤엔 몸 상태도 많이 좋아졌다. 혼자 해외여행은 많이 했지만 이번 여행만큼 삽질도 많이 하고 고생한 여행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혼자 하는 여행을 또 하겠냐고? 물론이다. 편견 없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도전은 계속 될 것이다!


원문: 디지털 연금술사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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