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연애가 힘든 세상은 누가 만들었나

조회수 2020. 12. 24. 17: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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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가 만들고 지켜온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쓸쓸하다.

얼마 전 최근에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한 대학생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난한 남자가 연애하는 고충에 관해 쓰고 있었다. 가난한 연애가 구질구질하고 눈물겨운 일이 되기 쉬운 것이야 동서고금 어디나 언제나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은 대개 물질적인 대가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생일에도 케이크 하나 사주기 힘든 형편이라면 케이크를 못 먹어서 슬픈 게 아니라 그런 현실이 슬퍼서 사랑은 우울해지기 쉽다.


나도 학위 따고 취업도 하기 전에 연애하고 결혼했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대학생의 글을 읽으면서 2017년 현재의 한국에서 연애는 시대적·문화적인 거품 때문에 더더욱 아름다운 것이 되기 힘들겠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와 함께 나 같은 장년·노년층의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왜 연애를 안 하냐고 자주 묻는 것이 종종 잔인한 일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새삼 반성하게 되었다. 누구나 젊은 때가 있었고 비슷한 시기를 지나왔으면서도 나이 든 사람들은 어느새 젊은이의 고충에 둔감해지기 쉽다.

내가 말하는 시대적 거품이란 이렇다. 가난한 시대에는 가난한 사랑이 어렵지 않았는데 한국이 부자가 된 요즘 가난한 사랑은 훨씬 더 힘든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면 라면을 끓여 먹는 것도 믹스커피나 자판기 커피를 나눠 마시는 것도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 수 있다. 다들 없었던 시대에는 자판기 커피나 마시고, 버스 타고 시외로 나가서 산책만 하는 연애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요즘 언론을 통해 나오는 사랑 이야기, 요즘 있는 집 자식들의 연애는 어떤가. 대학생이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이 시대에는 더 이상 놀랄 것도 아니다. 그 차가 어떤 차냐는 것이 질문거리일 뿐이다. 옛날에는 소수의 사람만이 돈 쓰는 연애를 했고 별로 티도 안 났다. 하지만 이제는 거리로 나가서 직접 보든, 집 안에서 SNS나 방송을 통해서 보든 온갖 종류의 옷이며 음식이며 카페며 호텔이며 여행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시대를 애인 없이 살아가는 것도 힘들겠지만 애인이 있으면 있는 대로 힘들다. 좋아하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돈 앞에서 구차해지는 느낌을 받으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덜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분명히 있다. 우리 대부분은 공주도 왕자도 아니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 자기가 공주나 왕자 대접을 받을 것을 기대하거나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럴 때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가난한 연인들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빈부차의 증가는 없는 사람들의 사랑을 더 비참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문화적 거품이란 이런 것을 고려하고도 한국의 상황이 유독 더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사랑 이야기가 돈 없는 청춘을 더 아프게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한다. 얼마 전에 인기를 얻었던 ‘도깨비’ 같은 드라마도 매우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도깨비’의 장점을 아무리 칭찬해도 ‘도깨비’와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사랑 이야기인 비포 시리즈와 비교하면 한국적인 사랑에는 뭔가 거품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품이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모든 판타지는 어떤 의미로 거품이다. 그러나 판타지가 우리를 아프게 할 때는 우리는 우리가 특정한 판타지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어느새 판타지를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1995년에 나온 ‘비포 선라이즈’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로맨스 영화계의 전설이다. 비포 시리즈는 1995년부터 시작해서 9년마다 다시 찍었으니 그 후속작인 ‘비포 선셋’과 ‘비포 미드나잇’이 각각 2004년과 2013년에 나왔다. 영화와 함께 주연배우가 실제로 늙어가면서 20대, 30대, 40대의 사랑을 그려낸 멋진 시리즈다. 이 중 ‘비포 선라이즈’는 유럽여행 동안 기차에서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젊은 미국인 남자와 젊은 프랑스인 여자를 보여준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 스틸컷.

‘비포 선라이즈’에 나타난 사랑의 특색은 이렇다. 그들의 사랑은 어느 정도의 물질적 여유를 전제하지만 그래도 내면을 향하고 있다. 언뜻 한가하게 유럽여행을 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므로 마냥 가난한 사랑이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무리하게 돈을 빌려서 하는 단 한 번뿐인 여행으로, 이들은 레스토랑에 들어갈 돈도 호텔에 들어갈 돈도 없다. 


이들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구질구질한 옷을 입고 사랑에 빠진 후엔 공원에서 밤을 새운다. 이렇다 보니 그들의 사랑에서 나타나는 것은 주로 책 이야기나 사회적 시선의 문제, 인생에 가지는 기대 같이 자신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게 중심이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서로에게 반하는 이유는 사람 그 자체다.


반면에 너무나 불쌍한 처지로 등장하는 ‘도깨비’의 여자주인공 은탁은 가난하지만 언제나 화보를 찍는 것 같은 깨끗한 옷과 얼굴로 등장한다. 그녀는 돈이 없어서 힘든 우리 시대의 청춘들을 표현하고 있다. 공부와 알바에 바쁘고 돈, 돈 하면서 사는 것이 은탁이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부유하다. 결국 그녀의 애인은 재벌 2세를 넘어서는 신 급의 ‘도깨비’며 그녀를 온갖 낭만적이고 사치스러운 장소로 데려가 주는 마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습만 보면 그녀는 해리포터 시리즈 속의 해리보다도 훨씬 더 빛나고 있다.

출처: tvN
드라마 ‘도깨비’의 여주인공 은탁.

‘도깨비’라는 판타지를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 드라마를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분명히 우리 시대의 가난하고 젊은 연인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판타지를 가진 면이 있다. 결국 가난한 여자들은 은탁처럼 똑똑하지도 예쁘지도 않으며 삶은 훨씬 더 구질구질하다. 그리고 은탁의 욕망은 상당히 물질적이고 원초적이다. 로또 당첨 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로또 당첨되는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달까. 현실에서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되지 않으니 이런 이야기에 빠지는 것은 현실을 더 암울해 보이게 만들기 쉽다. 게다가 이 사랑이 어린 여성과 나이든 남자와의 사랑이라는 것도 한 가지 문제다. 현실 속에서는 원조교제에 지극히 가깝다. 


사랑이라는 건 뭘까? 사랑이 ‘도깨비’ 같은 드라마 속 낭만적 판타지를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랑은 실패할 운명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시작도 못 해보고 우울해지기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랑이 정신적 동반자를 찾는 것에 대한 거라고 생각한다면 가난한 사랑에도 희망은 있다. 이성의 멋진 모습에 매혹되지 않는 인간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은 정신적 소통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랑은 어느 정도 고의로 가난해질 것을 요구당한다는 것을 ‘비포 선라이즈’는 보여준다.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가난할 때 나타나기 때문이다.


라면을 먹고 커피믹스를 마셔도 같이 행복할 사람이라면 풍요 속에서 더 큰 행복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풍요 속에서 만난 사람은 약간의 고난에도 나에게 상처를 줄지 모른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사랑이 같이 걸어갈 동반자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사랑을 하려는 사람들은 불편하고 뭔가 결핍된 환경 속에 같이 있어 보아야 한다.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청춘의 사랑은 가난하고 지질한 것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 넘쳐나는 사랑 이야기들은 그런 게 아니다. 선남선녀가 패션모델 같은 옷을 입고 지극히 낭만적인 장소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 이야기 속 사랑은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 좋은 펜션에 가고 좋은 차를 타는 것, 기념일을 지키고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다. 한 홈쇼핑 판매원은 예쁜 옷을 팔면서 ‘후줄근한 옷을 입고 나가면 남자친구가 그냥 들여보낼 테지만 이런 예쁜 옷을 입고 나가면 저녁이라도 사줄 거다’라는 말을 하면서 그 말에 스민 사랑의 비참함에 대해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하룻밤 불장난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사람들의 사랑에 가깝다. 상대를 사랑하고 상대에게 사랑받는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그런 척하면서 하룻밤 즐기고 내일은 또 부담 없이 헤어질 것을 당연시하는 느낌이다. 사랑이 본래 그런 것이라고만 말하는 메세지가 세상에 가득하다.


요즘은 진정한 청춘 드라마가 드물다. 요즘 문화 문물이 보여주는 것은 10대나 20대 청춘들의 감정이 아니라 30대 이상인 사람들의 감성이다. 그러다 보니 그 세대 사람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이 문제다. 결국 10대가 30대, 40대의 사랑을 흉내 내고 사랑이란 본래 그런 것이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오늘날의 사랑에는 과거에 비해 시대적인 거품, 외국에 비해 한국적인 거품, 인생이 안정되지 않은 청춘이 중장년층과 자기를 동일시하게 되는 세대적 거품이 있다. 이렇게 거품이 많으니 오늘날 젊은이의 연애가 힘든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어린 학생이 노회한 사회인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인식한다. 드라마 ‘도깨비’ 같은 사랑은 결국 소수의 복 받는 사람들이나 즐기고 나머지는 내 주제에 저게 말이 되냐고 하면서 비참하게 살기 쉽다.


이건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기성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들이 만들고 지켜온 세상에서 젊은이들은 불행하고 쓸쓸하다. 그들은 숨 쉴 공간이 부족한데 기성세대는 자기 말만 한다. 물질적 부족보다 정신적 식민지화가 더 나쁘다. 이건 잘못된 세상이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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