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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농업, 먼저 온 미래: 4차산업혁명 시대 미래농업의 조건

조회수 2017. 5. 26. 11: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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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을 미래기술의 테스트베드로, 청년창업의 플랫폼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출처: Bloomberg

2016년 6월 바이엘(Bayer)이 몬산토를 인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는 큰 뉴스였다. 거대한 종자 및 농업 케미컬 기업의 인수합병이 이루어지 던 때라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2016년 3월에는 켐차이나가 430억 달러에 신젠타를 인수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그보다 앞선 2013년에는 중국 육가공업체인 솽후이(雙匯)가 미국 최대 축산 패커인 스미스필드(Smithfield) 사를 71억 달러에 인수했다.


각 기관에서는 세계 종자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기 바빴다.


그런데 한 인터뷰가 눈에 들어왔다. 바이엘 CEO 베르너 바우만은 “몬산토는 디지털 파밍(digital farming)의 선두주자이기 때문에 인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라는 것이었다(1).



디지털 파밍, 이게 무슨 말이지?

출처: 참고문헌(1)
옥수수의 생산량 예측지도(SpecTerra map), 높은 생산성(청색)과 낮은 생산성(적색)을 예측.

농업과학 분야에서 밥을 먹고살았지만, 이 용어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스마트 농업, 내가 이해하고 있는 농업은 이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고 있었다. 우리가 경이롭게 바라보는 수많은 농업 기술은 모두 스마트 농업으로 뭉뚱그려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디지털 파밍이라….



알파고가 몰고 온 충격


1997년 5월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었을 때만 해도 컴퓨터의 바둑 실력은 아마추어도 꺾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20년 후 인공지능으로 무장하고 등장한 알파고는 달랐다. 인간이면 두기를 주저할 만한 과감한 수를 두었다. 알파고가 한수 한수 둘 때마다 이세돌 9단의 표정은 일그러졌고,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공지능과 대결하는 이세돌의 장고는 전 국민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결국 이세돌은 알파고에 4대 1로 패했다.

출처: ⓒgogameguru
이세돌 vs. 알파고의 3국

이세돌의 완패는 한판의 바둑으로 끝나지 않았다. 무겁고 암울한 전망이 뒤따랐다. 이세돌이 1승을 거둔 2016년 3월 13일은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긴 마지막 날로 기억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돌 9단의 패배는 위대한 패배라 불릴만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왔는지 비로소 눈을 떴다.



바이엘이 꿈꾸는 미래농업


알파고의 충격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갔지만,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몬산토는 여전히 GMO 종자와 라운드업 레디 제초제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이해했다. 이미 강력한 케미컬 라인을 가진 바이엘이 몬산토를 인수한다는 게 무슨 시너지가 있을지 분석하기 바빴다. 바이엘은 GMO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봤던 것을까? 유기농업 애호가들은 아스피린을 먹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게 될까?


그런데 데이터 파밍이라… 복잡하게 꼬여있던 코드들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해되지 않았던 구글, 존디어, 바이엘 등 거대 기업들의 거침없는 농업 ICT 투자가 왜 그랬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출처: ⓒAgDNA
정밀농업 플랫폼, 농장관리 및 농기계운용에서 회계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몬산토가 투자한 기업을 살펴보면 이 회사가 무엇을 지향하는지가 보인다. 농업용 로봇의 선두 기업인 블루리버 테크놀로지(BlueRiver Technology), 정밀농업을 전문으로 하는 에그솔버(AgSolver), 에스토니아에서 농장 경영 소프트웨어를 서비스하는 바이탈 필드(VitalFields), 농장의 물관리 모바일 플랫폼을 제공하는 하이드로바이오(HydroBio) 등이 있다. 농업 클라우드 서비스,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정밀농업, 농장 경영 네트워크 등 몬산토는 종자뿐만 아니라 디지털 농업에서 더 큰 미래를 보았다.


바이엘과 몬산토는 이미 종자부터 작물보호제까지 농업 가치사슬의 주요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에 정보가 더해지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바이엘은 인공위성, 농장에 설치된 각 종 센서, 농기계에 부착된 센서, 농장 경영 소프트웨어에서 얻어지는 정보, 고정익 드론에서 얻어지는 정보로부터 그 농장의 생산량, 병해충 발생 가능성, 관개(irrigation) 필요성, 소비자 단에서 얻어지는 시장정보를 분석할 것이다.


바이엘 CEO는 말한다.

우리는 그 농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럼 농민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줄 수 있겠죠. 농가들을 고객으로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농민은 바이엘이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는 농장을 경영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시장에 물건을 제값 받고 팔기도 점점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바이엘은 세상의 모든 농식품 정보를 긁어모아 수익을 창출하는 데이터 농업을 꿈꾸는 듯했다.



농업 스타트업 전성시대


미국의 여러 기업들이 이미 데이터 농업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크런치 베이스(CrunchBase)에 따르면 2015년 식품 및 농업 스타트업에 투자된 금액은 46억 달러였는데, 이는 전년도 23억 달러에 비해 2배나 껑충 뛰어오른 수치이다. 농업에 대한 벤처캐피털 투자는 연간 94% 씩 증가하고 있다. 타산업 분야 평균 투자 증가율이 44%인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2).


인공위성 이미지를 분석하여 작물과 토양의 변화를 추적하는 플래닛 랩(Planet Lab)은 1억 2천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고, 농업 빅데이터 분석업체인 파머 비즈니스 네트워크(Farmers Business Network, FBN)는 구글의 투자지주회사 알파벳으로부터 1천5백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FBN은 빅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자사 서비스에 가입한 농민들에게 자기 땅에 무슨 작물을 심는 게 좋을지를 알려준다(FBN 가입비용은 연간 5백 달러).

출처: ⓒ (3)
전세계 1인 당 농경지 면적

농업 스타트업에 대한 실리콘밸리의 관심은 뜨겁다. 그 밑바탕에는 늘어나는 인구와 줄어드는 경작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 1960년대 1인 당 경지면적 평균은 1.13 ha(2.8 acres)였는 데, 2030년에는 1/3 수준인 0.32 ha로 줄어든다. 단위면적 당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지 않으면 세계는 식량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위면적 당 생산성을 무작정 높일 수는 없다. 미국 등 세계의 곡창지대의 생산성은 이미 물리적 한계에 근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기상의 증가, 물 부족, 타산업과 물을 놓고 벌이는 경쟁, 대규모 단일재배(monoculture)에서는 피할 수 없는 병해충 발생은 농업생산성을 위협하는 요소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이미 과학적, 환경적으로 가장 큰 이슈가 된지 오래였다. 유기농업과 친환경농업의 부상은 모노컬쳐로 초래되는 농업환경의 단점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있으며, 농자재 투입을 최적화하여 환경부하를 경감하는 정밀농업은 농장경영 효율화를 위해서도 채택해야만 하는 기술이 되었다.


바이엘, 몬산토, 신젠타, 다우케미컬, 듀폰 등 거대 농업/화학 기업의 인수합병은 미래 농업의 모습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트랙터 기업에서 데이터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존디어는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까? 세계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쥔 구글의 농업투자는 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이들의 과감한 베팅은 우리의 4차 산업혁명과는 어떻게 다를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스마트 농업


우리나라는 지금 스마트팜 열풍이다.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스마트팜이 우리 농업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대기업의 농업 진출 통로가 될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 스마트팜이 곧 농업에서 4차 산업혁명을 의미할까? 모든 사람들이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야기 하지만 이야기가 겉도는 것 같았다. 먼저 스마트팜과 4차 산업혁명이 어떻게 다를지 명확히 하는 게 다음 논의를 진행하는 데 꼭 필요할 것 같았다.


스마트팜은 농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농장에 설치된 수분 센서, 기상 센서에서 오는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양분과 수분을 작물에 공급한다. 현재까지는 주로 원예나 축산 등 시설농업에 우선 적용되고 있다. 온도가 높으면 환기가 되고, 수분이 부족하면 점적관수 시스템에서 물을 공급한다. 그리고 병해충이 발생하면 방제로봇이 약제를 살포 한다. 이 모든 것은 컴퓨터로 제어된다. 심지어 농민은 농장을 떠나서도 스마트폰으로 농장의 운영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KIST
스마트팜 구상도

이렇듯 스마트팜은 농장관리에 들어가는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여준다. 수많은 센서들이 농부의 눈이 되고 자동화 농기계가 농부의 손발이 된다. 스마트팜 기술은 더 발전될 것이고 더 정교해질 것이다. 농장으로부터 더 많은 데이터가 클라우드로 모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스마트팜은 먼저 온 미래라 불릴만하다.


그렇다면 농업에서 4차 산업혁명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스마트팜일까? 스마트팜이 더 발전되어 인공지능이 농장을 관리하는 농업일까?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되기 어려워 보였다. 누구나가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저마다의 4차 산업혁명이 존재하는 듯했다.



스마트팜 vs. 4차 산업혁명


스마트팜이 더 발전하면 그걸 4차 산업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냥 스마트농업이라 하면 되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필요할까. 혼란만 가중시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엇이 4차 산업혁명일까?


모호한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를 그들의 스토리 라인에 끌어들인다. 대량생산 방식에 최적화된 컨베이어 벨트는 로봇과 3D 프린터로 대체된다. 소비자는 만들어진 제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신발을 실시간으로 주문한다. 소비자의 다양한 기호는 더 이상 생산의 제약 요소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토대가 된다.

농업분야 IoT 디바이스 데이터 증가량 추정 (6)

그럼 농업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올까? 농업용 로봇, 식물공장, 드론, 아니면 스마트팜? 획기적이긴 하지만 혁명이라 부르기엔 뭔가 부족해 보였다. 그냥 진화된 스마트팜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한 가지 그래프가 눈을 사로잡았다. IoT 디바이스가 증가하는 그림이었다. 농업분야 IoT 디바이스는 연간 20%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2035년이면 지금보다 농장 데이터는 20배 더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6). 그래서 미래농업을 IoT 농업 또는 디지털 농업이라고도 부른다.



양적 증가에 의해 초래되는 질적 변화


데이터가 늘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산단계부터 유통, 최종 소비자 단계까지 데이터가 모이면 어떤 일이 새롭게 생겨날까? 지금까지 데이터는 우리가 마주한 경제 현상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었지만 예측까지는 어려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1단계 카오스가 아니라 2단계 카오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한다. 농산물과 식품의 수급 역시 2단계 카오스에 더 가깝다. 그런데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우리는 카오스의 세계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베르누이의 예측처럼 “특정인의 사망 같은 단일사건의 발생 확률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수많은 비슷한 사건들의 평균 결과는 매우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큰 수의 법칙).

무작위로 뽑은 표본들의 평균은 표본들의 개수가 증가할수록 집단 전체의 평균에 더 접근할 개연성이 높다.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던 2단계 카오스 이벤트의 예측이 가능한 농업, 이건 또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농업 4차 산업혁명은 지금까지 산업혁명과는 달리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기존 정보혁명에 IoT 디바이스 증가가 더해져 일어나는 변화, 즉 정보의 양적 변화로 초래되는 혁명처럼 느껴졌다. 양적 임계점에 도달하여 질적 변화가 초래되는 혁명일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술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변화일 것이다.


더 많은 IoT 센서, 인공위성과 드론에 의한 이미지 영상, 슈퍼마켓의 바코드와 RFID부터 가정의 냉장고까지 유통정보, 생산단계부터 소비단계까지 농산업 전 가치사슬(value chain)의 정보가 클라우드에 축적된다. 단기적으로는 개별 농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스마트팜이 주도하겠지만, 결국에는 아디다스의 스피드 팩토리처럼 개별화된 소비자 농업으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임계점을 넘어선 데이터 량과 이를 해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이다. 정보는 인간이 처리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선다.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상상의 나래를 더 펼쳐보자.

묘목상에서 ‘라즈베리’ 묘목 판매 데이터를 입력한다. 인공지능은 이 데이터를 다른 데이터 – 라즈베리 재배면적, 과일 소비 트렌드, 수출입 동향, 국제과일 가격 등 -와 결합한다. 이를 바탕으로 라즈베리 묘목이 자라서 시장에 출하될 때쯤(3년 후) 과일 가격 변화를 분석하여 위험신호를 정책부서에 보낸다. 정부에서는 과수 대신 대체작목을 농가에 추천하고, 라즈베리 가공산업 활성화 대책을 사전에 마련한다. 그리고 라즈베리에 대한 건강기능성 연구비를 증액한다. 기업에서는 라즈베리 음료에 대한 마케팅을 준비하고 TV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라즈베리를 이용한 요리의 노출을 증가시킨다.

이런 사전 예측과 최적화가 가능해진다면 농민들은 안정적으로 농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각 경제 주체들은 소비자의 트렌드 변화를 사전에 예측해서 품종과 목표 시장을 설정함으로써 또한 부가적인 수익을 만든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스마트팜 기술이 농업 생산 활동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준다.


결국 농업 4차 산업혁명은 “데이터 농업”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마트농업, IoT 센서의 증가, 빅데이터의 결합, 그리고 이를 통해 산업 규모의 ‘생산-소비’의 최적화가 이루어지는 농업, 이 정도면 혁명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마다 겪는 품목별 과잉과 품귀가 해소되고, 기상재해로부터 좀 더 지속 가능해지고, 대량생산과 소비자농업 간 적절한 균형감을 가지며, 수출과 수입의 이상적 배분으로 식량안보와 삶의 질을 동시에 만족하는 글로벌 농업가치사슬을 만들어 가는 것. 먼 미래의 상상이긴 하지만 농업 데이터 혁명은 이를 충분히 가능하게 만들 것 같았다.



미래를 맞이할 준비는 충분할까?


그럼 우리는 이런 미래를 위한 충분한 준비가 되어있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열망과는 달리 우리는 여전히 스마트팜 단계에 머물고 있었다.


좀 더 적확하게 말하면 아주 초기단계를 겨우 벗어난 수준이다. 그렇지만 크게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반도체, ICT, 로봇 등 타 산업분야의 높은 기술 수준 때문이다. 부족한 기술보다는 오히려 농업의 문제를 농산업 내에서만 해결하려는 인식, 가장 오래된 산업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오래된 관성이 더 큰 장애일 것 같았다. 이미 세상은 융복합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지만 우리 농업은 여전히 잰걸음이다.


우리 농업계에서는 빅데이터 분석 기업을 농산업체로 인정할 수 있을까? 농민들은 농장경영 소프트웨어를 채택하고 정보 제공에 동의할까? 과연 투자 대비 효과는 충분할까?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 규모의 경제에서 좌절했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농업의 문제를 농업 내에서 해결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20년이 더 지났지만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실패했던 방법을 더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 문제를 만들었을 때 우리들이 하였던 생각과 같은 생각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농산업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기업체는 대부분 영세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할 기술(드론, 농업용 로봇, 스마트팜 등)은 여전히 선진국을 따라 국산화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ICT 기업이나 데이터 분석 기업을 과연 농산업의 일부로 볼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의 문제이다. 농업에 새로운 가치관과 기술을 가진 가진 외부(?)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느냐라는 인식의 문제이다. 그런측면에서 우리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데이터 농업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농업분야의 4차 산업혁명 기술 적응도는 낮은 편이다. ICT 사업이 발달한 나라답게 기술 자체가 제한인자는 아니다. 농업분야의 첨단기술 대부분은 산업분야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기술의 응용이기 때문이다. 샘물은 넘쳐흐르지만 마실 국자가 없는 형국이다.


진짜 문제는 오히려 수요의 창출이다. 첨단 제품을 받아주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기술은 발전할 수 없다. 사실 우리도 IoT와 데이터 비즈니스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OOO이라는 벤처기업에서 만든 적재로봇과 자율주행차는 농산물집하장(APC)에서 과일박스의 이동과 적재를 담당한다. 아마존의 최신 물류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과일상자에 RFID 칩을 심어 출하정보를 취득하는 사업까지 계획했었다. 이를 통해 과일의 출하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수급조절까지 가는 사업모델을 구상했다.

oo APC에 시범 설치된 적재로봇과 자율주행운반차

그렇지만 외부에서 농업계로 들어온 벤처기업가의 꿈은 더 이상 뻗어가지 못했다. 어느 APC도 그들의 시스템을 채택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범사업으로 적재로봇이 일부 APC에 들어가긴 했지만 더 이상 확장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초기 수요를 받쳐줄 시장이 없었다.


오늘날 애플(Apple)이 있게 하는 데는 중요한 사람이 여럿 있다. 그 중 하나는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서 ‘바이트샵’이라는 컴퓨터 매장을 운영하던 폴 테렐(Paul Terrell)이다. 그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프로토타입 컴퓨터를 50대를 구매하기로 한다. IT 제국 애플이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농업계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많이 받는 요구 중 하나는 자신들이 만든 제품을 농업 현장에서 테스트 해보고 싶은 데 어떡하면 되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뚜렷한 대책은 없다. 농업시설과 장비는 대개 정부보조와 함께 설치된다. 그러므로 정부보조에 선정되지 않은 장비를 농가나 농업법인에서 채택할 유인은 크지 않다. (사실 지금의 체계는 스피드가 필요한 미래농업에는 전혀 맞지 않다.)


또한 그 정부보조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공급대상 품목에 선정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민간에서 개발된 첨단장비가 정부의 추천 리스트에 쉽사리 선정되긴 또 쉽지 않다. 현장에서 검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기관에서 민간 기술기업을 위한 테스트베드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니 이 부분은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같은 메커니즘으로 농업의 4차 산업혁명이 가능할까? 넘어야 할 난관이 끝도 없이 보였다. 아니면 완전히 새롭게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농업, 미래의 문을 여는 열쇠


벤처는 거품을 먹고 자란다는 설이 있다. 정상적인 경제상황에서는 분명 비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거품을 일으키지 않으면 단기간에 기술혁신과 새로운 산업의 육성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도 나왔을 것이다. DJ정부 시절 닷컴기업 열풍이 불었다. 수많은 비난이 있었지만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고 지금의 경제를 유지하는 것은 그 당시 만들었던 거품이 큰 역할을 했다는 데 어느 정도는 동의할 것이다.


이렇듯 초기 시장을 견인하는 데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아갈 방향을 정했으면 기반이 되는 기술 시장 형성을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농장용 데이터 센서의 전국적인 설치, 관측용 드론을 활용한 생육정보 수집망 구성 등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또한 농장부터 유통, 소비자단까지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농업빅데이터센터를 우선 구축하는 것도 좋은 접근 전략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농업 ICT 분야로 첨단 기업들의 기술개발과 투자가 과감하게 이루어지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농업을 둘러산 산업생태계가 풍성하게 만드는 게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전망이다.


농업을 뒷방 늙은이 취급하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우리는 다시 기로에 서있다. 우리 농업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알파고로 촉발된 사회적 관심을 어떻게 농업 혁신의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을지, 농업계의 관심이 필요하다.


청년들은 일자리 없다고 아우성이고, 우리 경제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이미 우리에겐 훌륭한 대안이 있다. 바로 농업이다. 미국은 1.12%의 GDP에 불과하지만 고용의 15%를 담당하는 농식품산업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농식품산업 인구가 줄어드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서는 안된다. 농업의 혁신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업을 미래기술의 테스트베드(test bed)로, 청년창업의 플랫폼으로, 국토의 균형발전과 풍요로운 생태계의 보고로, 기후변화와 미래의 식량위기를 준비하는 버퍼(buffer)로 만들어 나갈 수는 없을까. 우리 내부의 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를 진출하는 채널로서 농업이라는 산업을 새롭게 포지셔닝할 수는 없을까. 상상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원문: 에코타운(ecotown)


참고문헌


(1) The Weather-Predicting Tech Behind $62 Billion Monsanto Bid.

(2) Agriculture Technology Investment Storms to $4.6bn in 2015 as Global Investors Take Note.

(3) Invest In Agriculture- Five Reasons To Start Today.

(4) John Deere continues to invest in new technologies, including software.

(5) e-나라지표 및 the global economy.

(6) Why IoT, big data & smart farming are the future of agriculture(2016.12.), BI intelligence estimates.

(7)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 2015년도 식품산업 주요지표(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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