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파는 사회적 기업?

조회수 2017. 5. 23. 11:5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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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을 아무리 화려하게 해도 술은 술이다.

나쁜 물건을 파는 착한 기업은 없다


페친들이 2017년 5월 16일 자 조선일보 ‘더 나은 미래’ 섹션의 기사 ‘사회적 기업이 만드는 ‘맥주’를 아시나요?‘를 긍정적 시각에서 공유하는 걸 보고 적지 않게 놀랐다. 사회적 기업의 본질에 대해 완벽한 동의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큰 이견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페북 피드에서 이 기사 공유 아래에는 마침 같은 조선일보의 2017년 5월 18일 자 기사 ‘[강정호 항소] 강정호 징역형 유지, 꼴찌 피츠버그도 절망’도 공유되고 있다. 이런 부조화가 있나! 우연찮게도 같은 신문에서 이틀 간격으로 술을 파는 착한 기업과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사고를 내서 인생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 운동선수 얘기를 다루고 있다니…


위에서 소개한 기사는 영국의 2개 맥주 회사를 사회적 기업으로 소개한다. 지적장애인을 고용하는 기업과 버려지는 빵을 맥주 원료로 활용하는 기업이다. 각각 소외계층의 고용과 자원 절약을 통한 환경보호를 실천하니 비즈니스 모델로 보면 분명 포괄적 경영활동(Inclusive business)를 벌이는 사회적 기업이다. 기업 활동의 본질인 ‘무엇을 사회에 제공하는가‘ 하는 문제만 빼면 말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술을 만들어 팔고 있다. 술은 법적으로 용인된 ‘죄악상품’이다. “일상적으로 대하는 맥주가 무슨…” 하는 분들 많겠지만 맥주 역시 담배, 무기 등과 함께 분명한 죄악상품이다. 맥주는 세계 어디서나 미성년자는 구매할 수 없는 상품이다. 광고가 금지된 국가도 많다. 강정호 선수가 사고 낼 때의 혈중알코올농도 0.084%는 맥주로 얼마든지 순식간에 도달 가능한 수준이다.


맥주를 알코올이 조금 든 음료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다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음료수처럼 마신다고 해서 맥주가 음료수는 아니다. 맥주는 수많은 사람의 불행을 불러온 물건이다. 여기서 맥주를 살인자가 쓴 식칼이나 사고를 낸 자동차와 비교하는 짓은 본질을 흐린다. 모든 물건은 본래의 목적이 있다. 맥주는 취하자고 마시는 물건이다.


그래도 선뜻 동의가 되진 않는다면 조금만 생각을 확장해 보자. 누구나 한 번쯤은 식당을 돌면서 소주를 나눠주는 알리미(?)을 만난 적이 있으리라 본다. 만약 소주 회사에서 수천 명의 소외계층 청년들을 정규직 소주 판촉사원으로 채용한다면? 이 소주 회사는 사회적 기업인가 아닌가?

좀 더 도수를 높여서, 가을이면 들녘에 버려지는 볏짚을 신기술로 가공하여 위스키를 만드는 기업이 있다면 이 위스키 회사는 사회적 기업인가 아닌가? 남동부 아프리카에 있는 말라위 농촌에서 담뱃잎을 제값 받고 판매할 수 있도록 설립한 공정무역 기업은 사회적 기업인가 아닌가? 일부 유럽 국가들처럼 성매매가 합법화된 나라에서 소외계층 여성만을 고용한 성매매 업소는 사회적 기업인가 아닌가?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나 심심파적 삼아 해보는 사고실험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사회적 기업의 본질을 잊는다. 사회적 기업은 고용이나 구매처럼 단편적인 기업활동의 일부만을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 기업활동의 핵심은 어떤 제품, 어떤 서비스를 사회에 제공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핵심 기업활동이 정도에서 빗나가 있으면 ‘어떻게’ 기업활동을 영위하느냐는 고려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지적장애인을 고용하는 맥주회사보다 그렇지 않은 우유회사가 더욱 착하다. 식빵 부스러기를 모아서 맥주를 생산하는 회사보다 그걸 사료로 가공하는 회사가 더더욱 착하다. 지적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맥주회사보다 착하다고, 식빵 부스러기를 재활용하지 않는 맥주회사보다 착하다고 사회적 기업이라 부르는 것은 비즈니스의 본질을 간과한 중대한 오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Social Responsibility, CSR)은 법적 책임 이상의 것을 기업에게 요구한다. 사회적 기업도 이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맥주가 합법적 상품이라는 이유로 사회적 기업의 후보가 될 수는 없다. 포장을 아무리 화려하게 해도 마찬가지다. 무슨 인증 따위를 붙인다고 달라질 문제가 아니다. 영국이냐 한국이냐 하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죄악상품을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은 세상에 없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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