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도대체 왜 그랬나.

조회수 2017. 5. 10. 15: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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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망언 대 잔치가 열렸다.

1.

성주는 원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당원이 18,000명~20,000명 가량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개중엔 자신이 당원으로 등록된 줄도 모르고 당원으로 사는 이들도 있었다지만, 4만 9천여 인구 중에 등록된 당원만 그 정도 규모였다는 건 그 동네가 본디 엄청난 보수정당 텃밭이라는 의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냐 싶은 이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사실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잔뼈가 굵은 정당들은 보통 지역에 촘촘하게 인적 네트워크를 깔아놓는다.


OOO 청년회, OOO 부녀회, OOO 지역부흥회, 바르게 살기 운동 협의회, 새마을 운동 협의회, 조기 축구 모임, 유지 모임, 직능 모임, 조합 등등.


이런 곳마다 당원들을 배치해 모임의 헤게모니를 잡는다. 그러면 이 지역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사회생활을 하려면 자연스레 해당 정당의 지지자이거나 당원이 되는 쪽을 택하게 된다.


도시라면 피해갈 수 있는 옵션이, 지역이면 피하기 어려운 옵션이 된다.


일테면 이런 거다. 수해 복구 작업 때 성심성의껏 날 도와줬던 이웃,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이웃이


“이거 별거 아니고, 돈 내는 거도 아니고 보증 서는 것도 아니다. 나 저기 당협에 뭐 서명받아다 줄 게 있어서 하는 말인데, 당비 내라거나 나와서 행사 같은데 참여하라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이름만 올려달라”라며 서류를 슥 내밀면, 그거 거절하기 어려운 거다.


도시라면야 “그런 걸 대가로 도와준 거냐. 그렇다면 미안하지만 이러저러한 일을 하기는 어렵겠다.” 등등이 가능하겠지만,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

출처: 조선일보

2.

지역 언론 뉴스민에서는 투표소 밖에서 성주군민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동네에도 심을 찍은 이들, 문을 찍은 이들, 안을 찍은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늘 그렇듯 홍을 찍은 이들도 있었다.


해당 기사 링크를 첨부한다.

http://www.newsmin.co.kr/news/20584/


사드 배치 문제는 전선을 깔끔하게 긋기가 복잡하다. 정부는 성주군민의 반대가 격렬하자 “그렇다면 이쪽으로 옮기자”라며 같은 성주군 내에서 위치를 옮겼다.


함께 싸우던 이들이 비교적 살만 해진 이들과 꼼짝없이 죽을 맛이 된 이들로 갈렸다.


그런 상황에서 사드 배치를 반드시 철회하겠다고 말했던 국민의당은 입장을 철회했고,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을 이유로 들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같이 싸워주겠다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입장을 철회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을 밝히면, 그들을 기다리던 이들은 고립되고 확신을 잃는다.


한때 지역주민의 40%가량이 당원이었던 정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다른 당을 찍으려면, 그 배반을 통해 당장 내 삶이 확 달라질 것이라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성주군민들에게 그런 확신이나 보장이 있었을까? 사드 철수를 확실하게 말하는 후보는 1번부터 5번 중 가장 작은 정당에서 온, 당시 지지율 4위의 후보 하나였는데?


3.

성주에서 홍준표 지지율이 56.20%가 나왔다는 이유로 “두 번 다시 사드 반대를 위해 성주로 내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참외를 다 불매하겠다.”, “개 돼지들이다.”, “사드가 딱 어울리는 곳에 갔다.” 운운하는 분들이 타임라인에 적잖이 계시더라.


그런데 다시 말하는 거지만, 원래 길가에 걸어 다니는 사람 10명 중 4명이 단순 지지자도 아니고 ‘당원’이었던 고장이다.


그런 곳에서 문과 안과 심의 득표를 합쳐 36%가량 나온 건 엄청난 변화 아닌가.


이와 비슷한 일을 지난 총선 때도 본 적 있다. 호남이 국민의당을 선택하자, 트위터 타임라인에는 고작 그 한 번의 총선 결과를 두고 호남에 대한 온갖 저주와 욕설들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호남에 대한 부채의식을 버리겠다.”는 둥, “광주 정신이 죽었다.”는 둥, “지역감정의 희생양인 게 불쌍해서 연대해줬다가 배신당했다.”는 둥, “5월 광주의 마음의 빚은 이제 이거로 청산했다.”는 둥 망언 대잔치가 열렸더랬다.



안산 단원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선출되었을 때에도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단일화 논의를 거부한 건 후보들이었는데, 욕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에게 도합 50% 이상의 표를 던져준 시민들이 먹었다.


제주도에서 도지사로 원희룡이 뽑혔을 때에도 욕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 전에 도지사로 일했던 양반이 누구며 전력이 어땠는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 내민 후보들은 어떤 이들이었는지 살펴본다면 원희룡을 선택한 제주도민들을 그렇게 욕할 수는 없었으리라.


해당 지역을 직접 가봤거나, 활동했던 이들의 의견을 찾아보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해당 지역의 사정, 환경, 역사 같은 걸 살펴볼 생각을 한 다음에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


4.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호남을 향해 저주를 퍼부은 이들에게 그랬듯, 성주 사람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분들은 조용히 인연을 끊을 것이다.

메인이미지 출처: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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