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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체르노빌에서 '판도라'가 열리다

조회수 2017. 5. 27. 12: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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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의존도 세계 2위, 밀집도 세계 1위 한국은?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모스크바 기준), 우크라이나 키예프 북쪽 104km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세계 최대의 재앙, 체르노빌 참사(Chernobyl disaster)가 일어났다.

전원 공급이 상실된 상황에서의 부하 검사, 즉 비상 발전 전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터빈의 관성력으로 얼마큼 발전이 가능한지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부하 검사를 위해 안전 시스템을 해제한 상태인 데다 원자로 자체의 설계 결함과 조작자의 제어봉 조작 실수로 인해 통제할 수 없는 연쇄반응이 일어난 것이었다.

 


체르노빌, 최악의 방사능 유출 사고


출력이 급격히 증가해 반응에 따라 발생하는 열에너지가 원자로 내부의 냉각수를 거의 모두 기화시켰다. 증기의 압력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압력을 견디지 못한 반응로가 폭발한 것이 1시 23분이었다. 이 1차 폭발은 철과 콘크리트로 된 노심(爐心)을 파괴해 반응로를 대기에 직접 노출시켰다. 이후 반응로는 한 차례 더 폭발을 일으켰으며, 이 2차 폭발은 원자로의 콘크리트 천장을 파괴했다.


이 두 차례의 폭발로 인해 원자로 내부의 연료 중 일부가 파편화되어 주변 지역으로 즉시 누출되었다. 감속재로 노심에 있던 흑연도 일부 방출되었기 때문에, 폭발한 4호기의 반응로와 남아 있던 4호기의 천장, 그리고 옆에 있는 3호기 건물의 30개소 이상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가 진압되기까지는 무려 10일이나 걸렸다.

사고가 일어나면서 4호기에서 근무하고 있던 순환펌프 기사 발레리 호뎀추크는 즉사했으며, 자동제어시스템 기술자인 블라디미르 샤셰노크는 전신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후송되어 사고 당일 사망했다.


이밖에도 발전소 직원 중 물리학자 이반 오를로프를 포함한 3명이 폭발로 인한 방사선에 노출되어 사망했다. 이 실험의 총책임자인 아나톨리 다틀로프 역시 피폭되어 사건 발생 9년 후인 1995년에 죽었다.

 


폭발·방사선 피폭 희생자 1만 5,000여 명


화재 진압과 초기 대응 과정에서 발전소 직원과 소방대원 등을 포함해 약 1,100명의 인원이 투입되었다. 이들 중 237명이 급성 방사선 피폭 증상을 보였다. 이 가운데 134명이 급성 방사선 피폭으로 확진되었고 28명이 사고 후 수개월 이내에 사망했다. 이후 발생한 사망자를 포함해, 2006년 우크라이나 정부는 모두 56명이 초기 대응 과정의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체르노빌 발전소 현장에서 작업반이 오염을 제거하고 있다.

정부 공식 통계로 이 사고의 사망자는 4,365명이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1만5천여 명으로 추정되었다. 유엔은 이 사고로 말미암아 최소 900만 명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했다. 발전소 인근 1,800개 마음에서 50만 명 이상이 소개되었고 토양도 크게 오염되었다. 


그러나 사고의 간접 피해는 훨씬 크고 광범위했다. 1986-1987년 사이 방사선 누출을 막고 누출된 방사능 처리 작업에 투입된 22만 6,000명의 작업자는 모두 방사능에 피폭되었다. 사망과 방사선 피폭과의 직접적인 관계는 입증되지 않았지만 이들 중 2만 5,000여 명이 사망했다.


사고 대응 과정에 납을 살포한 것으로 인한 영향도 컸고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도 심각했다. 사고 당시 발생한 낙진은 유럽 전체에 걸쳐 19만㎢를 오염시켰고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세 나라의 오염 규모는 15만㎢에 이르렀다.

사고 20주기에 건립된 체르노빌 사고 희생자 추모비.

간접 피해 또한 막대하고도 광범위했다


그중 벨라루스는 전 국토의 22%, 우크라이나는 삼림의 40%가 방사능에 오염되었다. 방사능 낙진은 주변 3국뿐 아니라 서유럽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반도, 이베리아 반도의 여러 지역으로 퍼졌다. 오염 지역에 있었던 일부 아이들도 방사능에 피폭되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아이들의 갑상샘 암 발병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1995년, 세계보건기구에서 아이와 젊은 청년층에서 발생한 700건 가까운 갑상샘 암이 체르노빌 사고와 관련 있다고 밝힌 것이었다. 체르노빌 사고로 누출된 방사성 물질 중 세슘과 아이오딘 등 일부 방사성 원소는 대기권으로 방출되어 사고가 일어난 후 며칠 동안 북반구 전역을 떠돌았다. 이들이 대기권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지구 생태계를 오염시켰음이 작물과 토양을 통해서 드러났다.


소련 정부는 사고가 일어난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고 발생일 이후 스웨덴과 핀란드, 덴마크 등에서 전례 없는 방사능이 검출되자 스웨덴 정부는 소련 정부에 해명을 요구했다. 소련은 이틀 뒤인 4월 28일 사고 발생 사실을 인정했다.

출처: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체르노빌과 가까운 벨라루스 내의 접근 제한 구역의 입구.

소련이 사고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사고 규모와 사망자 수에 관한 소문이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로 퍼졌다. 그러나 소련이 스웨덴 정부 등에 화재 진화를 위한 소방관 파견과 방사능 오염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의료 지원 등을 요청하게 되면서 사고의 규모가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결국 5월 6일에 이르러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본격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5월 9일, 노심의 흑연 화재가 진압된 뒤 방사선 누출을 막기 위한 조치로 냉각 장치를 내장한 콘크리트판을 4호기의 지하에 설치하는 작업이 15일간 진행되었다. 이 판이 설치된 뒤에는 노심에 남아 있는 핵연료와 방사성 물질에 의한 방사선 누출을 막기 위해 ‘석관(sarcophagus)’이라 불리는 콘크리트제 봉인 시설 건설, 사고 지점 근처의 댐과 호수의 방사능 오염 제거 등의 작업이 이루어졌다.


남은 원자로 시설과 발전소 진입로, 그 주변 지역의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은 1987년까지 계속되었다. 운전을 중단했던 나머지 원자로 3기가 운전을 재개했다. 원자로 1호기는 1986년 10월에, 원자로 2호기는 11월에, 사고가 일어난 4호기와 인접해 있던 3호기도 1987년에 운전을 재개했다.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사고 지점 주변 30km 지역과 그 주변의 누출 방사능 제거 작업은 1992년까지 진행되었다. 이 작업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염된 식물이 자라 다시 오염물질을 배출하면서 오염 제거의 성과는 한계를 드러냈다.

출처: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4호기 건물을 완전히 봉인하기 위해 건설 중인 신 석관.

오염 정화 작업의 결과 엄청난 양의 방사성 폐기물도 골칫거리였다. 이들 폐기물은 주변에 매립되고 폐기에 쓰인 헬리콥터 등의 장비들은 사용 후 프리피야트 인근에 폐기되어 지금도 방치되고 있다. 

 


참사 이후 유령 도시가 된 프리피야트


우크라이나 북부의 프리피야트는 원전 노동자들을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되어 신식 문물과 서비스 때문에 한때 ‘꿈의 도시’로 불렸다. 그러나 체르노빌 참사 이후 인구 4만의 이 도시는 숲과 동물에게 점령당한 유령의 도시가 되었다.


최악의 원전 사고에도 운전을 계속했던 체르노빌의 나머지 3개의 원자로는 1991년과 1996년에 각각 2호기와 1호기를 퇴역시켰고 2000년에는 마지막 3호기의 가동을 중단했다. 현재 발전소 시설은 2065년까지 4호기 폐로 등 원자로를 불능화하기 위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체르노빌의 길은 멀기만 하다. 석관으로 원자로를 봉안했지만 단지 응급 처치일 뿐이다. 연간 4,000㎘ 가까운 빗물이 석관 안에 흘러 들어가며 원자로 내부를 지나 방사능을 주변 토양에 확산시키고 있다. 석관 안의 습기가 석관의 콘크리트나 철근을 계속 부식시키는 것도 문제다. 또 사고 당시 원자로 안에 있던 연료의 대략 95% 정도가 아직도 석관 안에 머무르는데, 이는 적어도 4톤의 방사성 물질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출처: 피에르 엠마뉴엘 델레트헤
유령 도시가 된 프리피야트.

최악의 사고, 2011년 후쿠시마에서 재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피해 규모는 사상 최악의 수준으로,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INES) 체계의 최고 단계인 7단계(Major Accident)였다. 체르노빌 참사가 인류에게 핵발전의 위험성을 널리 환기했지만 이후에도 원전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25년 후인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과 지진으로 인해 해일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발생한 방사선 누출 사고는 그 결정판이었다.


6년이 지났지만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지금도 방사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누출되고 있다. 또 빗물과 원자로 밑을 흐르는 지하수에 의해 방사능에 오염된 물은 끊임없이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며, 누출된 방사성 물질로 인해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인근 지대뿐 아니라 일본 동북부 전체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한 상황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만이 아닌 한국을 포함한 환태평양 지역 전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출처: 키워 위 룽
참사 이후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의존도 세계 2위, 밀집도 세계 1위 한국은 안전한가


유럽의 나라들이 탈원전 정책을 추구하는 까닭도 더 이상 원전이 대안이 아니라 인류의 절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통찰의 결과다. 독일은 17개의 원전을 2022년까지 폐쇄하기로 했고, 스위스는 원자로 5기를 향후 20년간 단계적으로 폐쇄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이탈리아는 국민투표로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은 2017년 기준으로 4곳의 원자력 발전소와 25기의 원자로를 가동 중이다. 원전은 한국 내 전체 전기 생산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발전량 기준으로는 세계 6위에 해당하며 한국수력원자력은 세계 2위의 원전발전회사다. 지난해부터 경주 등 동해안 지역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진은 인근의 원전이 유사시 끔찍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확인시킨다.

원전 의존도 세계 2위, 원전 밀집도 세계 1위인 한국이 에너지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작년 개봉한 영화 ‘판도라’(2016)는 지진으로 인한 원전 폭발사고를 다루며 우리들 마음속 불안이 기우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우쳐 주었다.


판도라(Pandora)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최초의 여성,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상징한다. 31년 전 체르노빌의 참사로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성찰하지 못하는 한 인류의 미래는 끔찍한 재앙으로부터 해방을 결코 꿈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 ‘판도라’.

원문: 이 풍진 세상에 


참고

위키백과
체르노빌 참사 30년,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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