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남편 위해 1인2역 한 아내의 후회
어떤 중년 여성이 찾아와서 하소연을 하신다. 빠글빠글 파마머리에 거친 손을 가지신 그 분은 일생동안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 하신다.
함께 가져온 서류를 읽어보니 ‘피고인 안민우는 공판기일에 출석하라’는 통지였다. 이 여성분의 남편이 무고죄로 기소된 것이었다.
사건기록은 생각보다 꽤 두꺼웠다. 단순한 무고죄 사건이 아니었다. 사문서위조죄, 위조사문서행사죄 등 여러 개의 죄명이 함께 기소되어 있었다.
몇 권의 사건기록을 차분히 읽다보니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김필순씨는 젊은 시절 자신을 좋다고 그렇게 따라다니던 안민우씨와 일찍 결혼을 했다.
남편 집은 꽤나 유복하였지만 남편이 워낙 술을 좋아하고 밖으로 돈을 헤프게 쓰는 바람에 결혼 초기부터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알콜중독에 이르게 되었고, 술을 마시면 자주 아내와 두 딸들을 폭행하였다.
그러다가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당뇨병이 걸렸고, 알콜중독과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발가락이 썩어가고 신장이 손상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안민우씨는 지체장애와 정신장애의 중복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등록 이후부터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터졌다.
안민우씨는 장애인으로 등록되기 이전에 이미 여러 지인들에게 술값, 도박비 등 명목으로 집을 담보로 빚을 지고 있었던 것이다. 어울리는 친구들 연대보증에 도장을 찍어 준 건도 여러 개였다.
처음에는 연대보증의 법적 효력을 없애려는 소송을 했고, 다음에는 근저당권 설정등기의 법적 효력을 없애려는 소송을 했다.
장애인 등록을 하고 신장투석과 요양을 위해 요양원에 입원한 남편의 입원비를 홀로 대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마지막 남은 집 한 채를 지키기 위한 이 소송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김필순씨. 그 시간들은 정말 지옥같았다고 한다.
소송이 지연되면서 내야할 서류도 찾아야 할 증거도 점점 많아졌다. 경찰서와 관공서를 수시로 다녀야 했다.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매번 대동할 수 없었기에 김필순씨는 안민우씨의 복지카드, 주민등록증, 인감도장, 인감증명서를 항상 챙겨다니며 일을 보았다.
안민우의 보호자라는 이름으로 안민우 명의의 서류를 내고, 도장을 찍었다. 나아가 연대보증하게 만든 아무개, 근저당설정을 해 간 일당 아무개를 형사고소하는 일도 주저함이 없었다.
문제는 그렇게 고소한 형사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김필순씨가 안민우씨 이름으로 고소한 사건으로 인해 수사가 확대되면서 안민우씨가 재판을 받게 된 것이었다.
김필순씨는 ‘남편도 이런 내용을 다 알고 있었고 자기는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서 수족처럼 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나는 김필순씨와 함께 안민우씨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을 방문했다. 침대에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는 안민우씨는 온몸이 창백했고 특히 오랫동안 걷지 못했던지 다리에 근육이 전혀 없이 뼈가 앙상했다.
간호사의 도움으로 안민우씨를 일으켜 앉혔다. 눈을 바라보고 말하는데 자꾸 눈을 못마주치시고 초점을 흐리셨다. 그래도 여유를 두고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는 안민우씨께 검찰이 위조한 것으로 특정한 사문서 몇 개를 보여드렸다.
본인은 전혀 컴퓨터로 글을 작성할 줄 모르고, 아래 찍혀있는 도장도 자기 도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문서는 처음 보는 문서이고 자신은 도장을 찍은 사실도 없다고 한다.
이어서 안민우씨가 작성하여 제출한 것으로 되어 있는 고소장 사본을 보여드렸다.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옆에서 김필순씨는 남편이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민우씨께 힘드신데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편히 누워서 쉬시라고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네? 왜요? 저렇게 장애인인 남편이 그럼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아니오. 안민우씨는 처벌받지 않으실 겁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사실 안민우씨가 아니라 김필순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법정에서 안민우씨에 대한 공소기각을 주장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김필순씨에 대한 수사가 개시될 것입니다.
가슴 아프지만 법적으로는 그러했다. 정신적 장애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더라도 별도의 법원의 판결이 없다면, 행위능력(법률행위를 할 능력)이 제한되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정치산자’나 ‘금치산자’ 선고를 받았는데 지금은 ‘성년후견제도’를 통해 행위능력을 제한한다.
안민우씨는 금치산 선고를 받은 적이 없고, 빚을 지던 때는 장애인 등록을 하기도 전이었다.
빚을 지던 행위는 법적으로는 유효하기에, 이 유효한 행위를 스스로 뒤집는 내용의 사문서는 아내에 의해 위조된 것이 맞았다. 아내가 한 남편 명의 고소도 무고죄가 인정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우리나라는 유독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으로 여겨 내가 선의로 얼마든지 그 의사를 ‘대리’해도 적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김필순씨는 아내로서 알콜중독 남편이 장애인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지켜봤기 때문에 더욱 그런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증 지적장애인이라도 스스로 의사를 표시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낳는다. 장애인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해결사’가 아닌, 장애인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조력자’ 역할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좀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기다려주고 지원해 주는 것이 상식인 사회야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좋은 사회가 아닐까.
원문: 조우성 변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