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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이 급식을 망쳤을까

조회수 2017. 4. 6.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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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급식도 망가지긴 매한가지다

“무상급식이 급식을 망친다”는 주장


어떤 사람들은 무상급식으로 인해 급식의 질이 떨어진다고 얘기한다. 특히 ‘무상-‘ 복지를 과잉 복지,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보수층에서 이런 목소리가 두드러진다.


호도해선 안 된다. 이들이 말하는 무상급식의 문제점 – 대표적으로 질적 저하 – 은 무상급식의 문제점이 아니라 사실 단체급식의 문제점이다.


무상급식이기 때문에 식자재 값 등 가격 인상 요인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건 유상 단체급식도 똑같이 맞닥뜨리는 문제다.


유상 단체급식이라고 해서 가격을 마구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가. 단체로 계약하고 만드는 거라 대충 만든다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유상급식도 사실상 강제로 이뤄지는만큼 피할 수 없는 문제점이다.


이 문제를 피하려면 학교 내에 푸드코트를 만들고 자유경쟁체제라도 도입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가격이 폭등할 테지만.

급식값 만 원의 헬게이트

유상급식도 망가지긴 매한가지다


만일 유상급식이 무상급식보다 질이 좋다는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예비군훈련장 중식은 틀림없이 유상으로 제공되고 있는데(1끼당 6천 원) 왜 질이 그토록 형편없을 수 있는가?


예비군이야 그렇다 쳐도, 10년, 20년 전 유상으로 제공되던 학교 급식이 정말 학생들이 만족하고 먹을 정도로 고급스러웠는가?


내 학창시절에 한 번은 국 대신 나온 해물 누룽지탕이 아무리 봐도 음식쓰레기모음집처럼 보여서 학생들이 아무도 먹지 않고 죄다 버린 적이 있다. 이게 너무 심해서 다급히 교내엔 “음식쓰레기가 아니므로 안심하고 먹으라”는 방송이 울렸다.

“음식물 쓰레기가 아닙니다”

무상급식 이후 아이들이 급식을 멀리하고 군것질을 한다는 주장도 있던데, 원래 애들은 밥보다 군것질을 좋아한다.


내가 고등학교 때도 반수 가까운 아이들이 식당을 멀리하고 급식비를 빼돌려 매점에서 빵과 컵라면을 사먹었다. 이게 무상급식 때문에 새로 생긴 풍조라고?


아마 고조선 사람들도 애들이 밥 싫어하고 군것질만 좋아한다고 한탄하고 있었을 거다.


급식은 왜 망가지는가?


마침 주간조선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린 바 있다. 소제목이 “아이들이 무상급식 안 먹는 이유”라고 뽑혀 있고, 기사 중반까지도 “버려지는 무상급식 때문에 교육 예산을 낭비한다”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기사 후반으로 돌입하면서 “사실 이런 주장도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갑자기 입장을 바꾼다(…) 뭔가 앞뒤 말이 다른 요상한 기사긴 하지만 이건 매체의 한계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기사에서 몇 가지 짚어볼 포인트가 있다. 첫째, 무상급식을 하는 초중고교의 잔반 증가량보다 유상급식을 하는 고등학교의 잔반 증가량이 높다.


둘째, 무상급식의 1인당 급식비는 유상급식의 그것보다 결코 낮지 않다. 기사는 “무상급식이 원인이든 아니든”이라는 식으로 대충 퉁치고 넘어가고, 이후로도 계속 “무상급식의 질이 낮은 이유” 라는 식으로 무상급식을 걸고 넘어지지만, 이는 아마 무상급식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프레임을 깨기 싫어서일 뿐인 것 같다.


무상급식을 모두 그냥 ‘급식’으로 치환해도 기사의 내용은 전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 후반은 급식의 질이 저하되고 잔반이 늘어나는 진짜 이유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업체에 따라 질이 천차만별인데, 심지어 사립의 경우 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부당계약이 이뤄지기도 쉽다는 것.


또 영양사의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구조가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다는 것, 식자재 유통을 담당하는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 등. 문제는 ‘무상’이 아니라 ‘단체’에 있다 요는 ‘무상’에 있지 않고 ‘단체’에 있다.


단체로 하나의 위탁업체를 지정하고 계약하는데, 정작 서비스를 이용하는 학생들이 이 계약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다. 시장 경쟁도 없고, 질 좋은 급식을 제공하도록 유인하는 공공의 장치도 없다.


급식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는 장치만 마련해도, ‘무상’이기 때문에 급식의 질이 낮아진다는 삿된 주장은 설 자리를 잃을 테지만. … 우리는 안 될 거라는 거 다 알고 있다.


그네찡이 말했던 적폐가 바로 이런 것들이겠지만, 그네찡은 천손답게 좀 다른 걸 적폐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천손의 명을 받잡아 적폐 전교조나 때려잡자.

논쟁은 좋지만, 억지 선전은 부당하다


가난한 아이에게만 급식비를 보조한다면 그 아이들에게 가난하다는 낙인을 찍는 꼴이 될까? 그런 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책 집행 과정에서 상당부분 순화할 수 있는 부작용이고, 또 급식 하나만으로 빈부 차가 안 보이다가 급격히 드러나는 것 또한 아니다.


물론 여기서 어차피 빈부차란 숨길 수 없는 거니까 낙인효과에 구애받지 말자고 하면 윤서인이 되어버리는 거고. 난 무상급식을 지지하지만, 반대하는 측의 논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무상급식이 ‘보편적인 복지’의 첨병이 될 수 있겠지만, 누구도 증세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자리잡은 무상급식을 굳이 철회할 필요가 있나?


홍준표 지사처럼 그 예산을 저소득층 교육에 돌린다면 더 효율적인 맞춤형 복지가 이루어질 것인가? 난 그 효과가 의문스럽다.


급식의 질이 낮아진다느니 하는 얘기는 아마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무상급식에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라는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듯, 공짜라서 질이 낮아진다니 정말이지 직관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이재명 시장의 말처럼 무상급식은 사실 무상이 아니며, 우리는 세금을 통해 학생들의 급식값을 분명히 부담하고 있다.


보수파의 주장대로 소위 무상급식 – 사실은 무상이 아닌 – 이 급식의 질을 낮추고 있다면, 같은 논리로 단체급식 자체를 재고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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