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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 사저'가 불편한 까닭

조회수 2017. 3. 16. 18: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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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저가 사라지면 사저라는 개념도 함께 사라진다

1. 박 전 대통령을 존대하다니


박근혜가 현직 대통령에서 전직 대통령으로 처지가 바뀌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의 대통령 관저에 머물 자격이 없어졌다.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고 자연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관저를 즉각 떠나야 했으나 하루 이상 미적거렸다.


박근혜가 돌아간 서울 삼성동 그 집을 두고 보도 매체에서는 ‘사저(私邸)’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저’라는 낱말이 나는 불편하다. 왜일까 생각해 보니 거기에 분명한 존대의 뜻이 들어 있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집을 거기 사는 사람들의 지위나 신분에 따라 구분해 일컬어 왔다. 신분이나 지위가 낮으면 ‘집’ 또는 ‘가(家)’라 하고 그보다 높으면 ‘택(宅)’이라 하고 가장 높은 최상급은 ‘저(邸)’라고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존대 받아 마땅한 인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는 현직 대통령 시절 보여준 무능과 악정 때문에 존대 받을 이유가 없다. 또 3월 10일 오전 11시 22분 헌재 파면 결정이 나오는 순간 대통령 지위를 잃었으므로 법률적으로도 존대 받을 이유가 없다.

출처: 연합뉴스

2. 박 전 대통령을 하대하다니


박근혜가 존대 받을 까닭이 없다는 것은 어떤 부당한 규정이 아니다. 합당한 이야기이다. 이것은 그이가 아무 까닭 없이 부당하게 하대 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과도 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분명 범죄 피의자 신분이고 나중에 피의 내용들이 사실로 인정되어 감방살이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누구든 그러한 이유로 박근혜를 하대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는 이치에도 맞지 않고 헌법과 법률과도 모순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범죄자든 아니든, 현직 대통령이든 아니든, 전직 대통령이든 아니든, 대한민국에서는 헌법과 법률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 같은 국민으로서 같은 권리와 의무를 다 함께 나누어 가질 따름이다. 박근혜는 존대할 이유도 없고 하대할 이유도 없다.

출처: MBN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요지를 읽는 이정미 헌법재판관.

3. 관저가 있어야 사저도 있다


‘사저’가 불편한 것은 그 쓰임새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 싶다. ‘사저’는 ‘관저’와 짝을 이루는 낱말이다. 사저는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이 사사로 거주하는 집’이고 관저는 ‘고관대작들이 거주하도록 정부가 마련하여 빌려주는 집’이다.


관저에 거주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짬을 내어 사저에서 사사로 머무는 것도 성립된다. 박근혜는 3월 10일 파면되는 순간 전직 대통령이 되었고 따라서 관저의 주인도 아니게 되었다. 관저가 사라지면 사저라는 개념도 함께 사라진다. 박근혜가 더 이상 고관대작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처: 경남도민일보
박근헤 파면 하루 뒤 열린 창원광장 촛불 집회.

4. 집 또는 자택이라 하면 안 되나


사저라는 낱말로 말미암는 이런 불편함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는지 일부 매체에서는 ‘사가(私家)’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이 낱말에 대한 사전의 풀이가 ‘개인이 살림하는 집’인 데에 비추어 보면, 어쩌면 그것은 개인이 장사하거나 업무 보는 공간과 짝을 이루는 개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렇듯 딱 들어맞는 말도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전혀 틀린 말도 아닌 듯싶지만 어쨌든 일반 사람들이 일상에서 널리 쓰는 낱말이 아님은 분명하다. 내 또래 사람들은 보통 사가라 하면 오히려 ‘사돈댁’을 떠올리니까.


 그래서 이렇게 쓰면 좋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이라고. 그렇게 하면 말뜻은 딱 들어맞을지 모르지만 아무래도 야박하게 느껴진다고? 그러면 이것은 어떠신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自宅)”.

출처: 동아일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집, 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동 자택.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박근혜도 김훤주도 헌법과 법률 앞에서 평등하다. 박근혜도 집에서 살고 김훤주도 집에서 산다. 박근혜도 자택이 있고 김훤주도 자택이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남의 집에 세 들어 사는 분들한테 미안해졌다.) 


원문: 김주완 김훤주의 지역에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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