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12장의 지도

조회수 2017. 3. 15. 23: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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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시기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 또는 세계관 포착의 산물

※ 이 글은 Uri Friedman이 The Atlantic에 쓴 ‘12 Maps That Changed the World’를 번역한 글로, 현재 이 글의 내용은 『욕망하는 지도』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모든 문화권에서는 나름의 지도를 제작하면서, “우리가 만드는 지도는 사실적이고, 진실하고, 객관적이며, 투명하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모든 지도는 주관적이다. 그건 당신의 휴대폰이나 태블릿 PC에 있는 지리정보 앱도(구글이든 애플이든 심지어 어느 누가 만들었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에 완벽한 지도는 없다는 얘기다. 지도란 특정 시기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는 세상의 모습(또는 세계관)을 완벽하게 포착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국 퀸메리 대학교의 르네상스 연구교수인 제리 브로톤은 『12장의 지도에 나타난 세계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2 Maps)』라는 책에서 인류사의 전환기를 가장 완벽하게 대변해 주는 12장의 지도를 제시했다. 아래에서는 그가 엄선한 12장의 지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자 한다.


 

1. 작도법의 기원: 프톨레마이우스의 지리학(서기 150년)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지도를 그려 왔다. 그러나 수학과 기하학적 원리에 바탕을 두고 사각형과 교차선을 이용한 작도법을 처음 개발한 사람은 프톨레마이우스다. 그가 개발한 작도법은 13세기에 비잔티움에서 재등장하여 17세기 초까지 사용되었다.


알렉산드리아를 근거지로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인 프톨레마이우스는 정작 자기 자신은 한 장의 지도도 그린 적이 없다. 다만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의 8,000여 개 지점의 위도와 경도를 표시했을 뿐이다. 지중해에 초점을 맞춘 세계지도는 아메리카, 호주, 남아프리카, 극동, 태평양, 그리고 대서양의 대부분을 누락시켰다. 브로톤에 의하면 프톨레마이우스의 지리학은 ‘1,500년의 전통을 가진 책’이라고 한다.

 


2. 문화적 교류: 알 이드리시의 세계 지도(1154년)

안달루시아 출신의 이슬람 교도인 알 이드리시는 노르만 왕 로저 2세의 명을 받아 시칠리아를 방문했다가 아랍어 지리 안내서를 편찬했는데, 이것은 유대, 그리스, 기독교, 이슬람의 전통을 망라했으며 위 그림의 원형 지도를 포함한 2개의 세계지도와 70개를 서로 연결 가능한 지역지도를 포함하고 있다.


당시에 동방(東方)을 지향하던 기독교 세계의 지도와는 달리, 알 이드리시의 지도는 작성자의 종교적 전통에 따라 남쪽을 꼭대기에 배치했다. 알 이드리시는 메카가 남쪽을 향한다고 간주했다. 맨 위에 있는 초승달 모양의 땅덩어리가 아프리카고, 아라비아 반도는 중앙에 배치되어 있다. 프톨레마이우스와는 달리 알 이드리시는 아프리카를 우회 가능한 대륙으로 묘사했고 푸른 바다로 지구를 에워쌌다. 궁극적으로 이 지도는 실질적인 지리 안내와 전통의 교류를 표방했으며, 수학이나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다. 브로톤 또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알 이드리시의 지도에는 갈등이 없다.

 


3. 기독교 신앙: 헤리퍼드의 마파 문디(1300년)

영국 헤리퍼드 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마파 문디(Mappa Mundi)는 중세의 고지도(古地圖)로, 기독교인들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동방을 지향하는 지도의 조직원리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서의 시간이다.


지도 상단의 지구 경계 밖에는 심판하는 그리스도의 그림이 있고, 지도를 바라보는 사람은 맨 꼭대기의 에덴동산에서부터 맨 아래의 헤라클레스 기둥(Pillars of Hercules: 지브롤터 해협 근처)까지 영적(靈的) 여행을 하게 된다. 지도의 중앙에는 십자가로 표시된 예루살렘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프리카가 있는데, 그 언저리의 해안에는 괴상한 괴물들이 우글거린다. 브로톤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당신이 알고 있는 세상의 가장자리는 위험한 곳이다.

 


4. 제국의 정치학: 권근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년)

권근이 지휘하는 왕립 천문학자들이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이하 ‘혼일강리도’라 함)의 두드러진 특징은, 북쪽이 맨 위에 있다는 것이다. 브로톤도 다음처럼 설명한다. 

서구의 지도와 유사한 지도가 1402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그는 혼일강리도의 탄생이 당시 아시아 지역의 정치역학을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

남부 아시아와 중국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하에서, 백성들은 황제를 존경하여 북쪽을 바라보고, 황제는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남쪽을 바라본다.

유럽은 좌상귀에 작고 비루하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아프리카가 있다. 아프리카는 우회가 가능하며, 중심부의 어두운 그림자가 호수를 의미하는지 사막을 의미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아라비아 반도는 아프리카 오른쪽에 있으며, 인도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앙의 거대한 땅덩어리가 중국이며, 그 오른쪽에 있는 한국의 크기도 기형적으로 크다. 한국 아래에는 일본 열도가 그려져 있다.

 


5. 신항로 개척: 발트제뮐러의 우니베르살리스 코스모그라피아(1507년)

독일의 지도 제작자인 발트제뮐러가 만든 이 지도는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지도로 손꼽힌다. 왜냐하면 미 국회도서관이 이 지도를 미국의 ‘출생증명서’로 간주하여, 독일의 왕자에게 1,000만 달러에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 지도는 태평양을 인식하고 아메리카를 별도의 대륙으로 분리한 최초의 지도다. ‘아메리카’는 발트제뮐러가 (당시 생존했던)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아메리카가 독립적인 대륙임을 확인한 인물이며, 이 지도의 맨 위에는 프톨레마이우스와 베스푸치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다. 이 지도는 12개의 목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럽의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된 최신 지명들이 반영되어 있다. 마지막 순간에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새겨넣기 위해 목공을 불러야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브로톤은 다음처럼 말했다.

이 지도가 제작되던 시기는 세계가 급팽창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모든 지리상의 발견은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6. 정치화된 지리학: 히베이루의 세계지도(1529년)

포루투갈의 지도 제작자인 히베이루가 이 지도를 작성한 때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몰루카 제도(당시 향료 무역의 거점이었으며, 현재 인도네시아의 영토임) 의 소유권을 놓고 심하게 다투던 때였다. 1494년 두 나라는 새로 발견되는 땅을 절반씩 나누기로 하는 협약을 맺었다.


1522년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한 후 스페인 왕을 위해 일하던 히베이루는 몰루카 제도의 위치를 부정확하게 표시하여 스페인 영토 안에 집어넣었다. 이 지도에서 몰루카 제도는 지도의 양쪽 끝에 반반씩 나와 있다. 히베이루는 ‘몰루카 제도가 실제로는 포르투갈의 영토 안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에게 뒷돈을 대는 물주(物主)가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브로톤은 이렇게 정의했다.

이 지도는 정치가 지리학을 조작한 첫 번째 사례다. 

 

7. 대항해 시대: 메르카토르의 세계지도(1569년)

지도 제작사(史)에 있어서 프톨레마이우스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은 네덜란드의 메르카토르일 것이다. 그는 원형인 지구를 평면상에 옮기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가 고안한 메르카토르 도법은 정확한 방위각 측정이 용이하여, 대항해 시대에 주로 항해용으로 만들어졌다. 메르카토르는 카톨릭 당국에 의해 이단(루터교)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는 등 고난을 겪었다. 그는 유럽의 항해자들을 위해 지도를 설계해 줬는데, 어찌 보면 그의 지도 제작은 보다 높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브로톤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의 지도가 극기와 초월을 위한 것이었고 생각한다. 세상을 수천만 마일 위에서 내려다보면, 종교적·정치적 갈등은 개미장난처럼 보이게 된다.

메르카토르는 유럽 중심주의 시각을 지녔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투영법이 적도에서 극지방으로 갈수록 왜곡이 심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로톤은 이러한 관점을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묵살하며, 유럽은 지도의 중심에 있지도 않다고 반박한다.

 


8. 상업용 지도: 블라우의 아틀라스 마이오르(166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위해 일하던 블라우는 자그마치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지도책을 편찬했는데, 여기에는 수백 개의 바로크 지도가 담겨 있다.

그는 일인 지도제작(한 명의 천재가 마치 마법사처럼 지도를 작성하는 것)의 전통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그의 지도를 보면 ‘당신에게 전세계를 보여주지’라고 중얼거리는 마법사의 면모가 느껴진다.

17세기에는 세계지도를 만드는 합자회사들이 나타났는데, 그들은 익명의 팀을 동원하여 대량의 데이터를 고속으로 처리함으로써, 세계의 구석구석을 지도에 담아냈다. 이러한 점에서 블라우가 만든 상업용 지도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프톨레마이우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도제작의 전통, 즉 천동설과 단절하는 위업을 이뤘다. 비록 지도의 중앙에는 프톨레마이우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두 개의 반구로 나뉜 지구를 그려 넣었지만, 지도의 맨 위에는 다섯 개의 행성을 의인화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한 가운데에 태양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프톨레마이우스는 왼쪽 위에, 코페르니쿠스는 오른쪽 위에 그려져 있다. 블라우는 조용하고 신중하게 ‘나는 코페르니쿠스가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9. 전국 지도화: 카시니가(家)의 프랑스 지도(1744년)

프랑스의 카시니 가문은 루이 14세 때부터 시작하여 4대에 걸쳐 프랑스 전역을 샅샅이 조사하여 지도를 작성했다. 카시니 가문은 삼각측량법을 이용하여 약 200장에 달하는 지형도를 작성했는데, 이것을 프랑스 전국에 보급한 것은 18세기 후기의 프랑스 혁명가들이었다.

카시니 가문이 만든 프랑스 지도는 현대적인 국민국가 지도의 효시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지도는 개인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구글 시대에 접어들면서 지도 작성은 다시 민간업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10. 지정학: 맥킨더의 ‘지도 속의 역사적 중심지'(1904년)

간단한 지도라고 해서 얕보면 안 된다. 이 지도는 ‘지리적 이슈가 정치를 좌우한다’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영국의 지리학자 겸 제국주의자인 맥킨더는 이 지도를 한 논문에 삽입하고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가 세계 정치의 중심지”라고 주장했다. 브로톤은 이 같은 생각(특정 중심지역을 장악하면 국제적인 헤게머니를 잡을 수 있다)이 나치에서부터, 조지 오웰, 헨리 키신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인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믿고 있다. 


 

11. 지리 행동주의: 페터스의 투영도법(1973년)

1973년, 독일의 좌익 역사가인 아르노 페터스는 메르카토르 도법의 유럽중심적 투영법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정적도법(equal area projection)으로, 국가와 대륙을 실제 표면적에 따라 나타내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에 따르면, 북부대륙의 국가들은 생각보다 작게 나타나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는 “길게 늘어진 눈물 모양”으로 나타난다.


정적도법은 종전에 스코틀랜드의 성직자인 제임스 골이 고안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언론과 진보적 NGO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구면을 평면에 투영하다 보면 어차피 왜곡이 생길 수밖에 없으며, 페터스는 중대한 수학적 오류를 범함으로써 이러한 왜곡을 증폭시켰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브로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어떤 지도도 다른 지도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지도가 추구하는 아젠다기 무엇인가’다.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은 페터스의 투영법을 대중문화 속에 각인시켰다. 이 드라마에서는 사회평등을 지향하는 지도제작자 조직(Organization of Cartographers for Social Equality)이 백악관에 대해 “공립학교에서 메르카토르 지도 대신 페터스의 지도를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로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12. 가상 지도화: 구글 어스(2005년)

구글은 디지털 지도작성의 선봉에 서 있다. 그러나 구글은 지도를 검색과 광고의 부속물로 여긴다. 이에 대한 브로톤의 의문은 다음과 같다.

지도에 담길 내용은 무엇이고, 지도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할 사람은 누구며, 돈을 지불하지 않아 지도를 볼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메르카토르 시대의 경우, 지도의 소스코드는 지도 제작자가 사용하는 투영법과 데이터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구글을 비롯한 기타 온라인 지도가 사용하는 소스코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늘날 구글은 사용자들에게 20페타바이트 이상의 이미지를 제공하며, 어떠한 단일국가의 정부보다도 많은 자료를 다루고 있다. 예컨대 오늘날 기업들이 만들어내는 지도는 영국 측량부가 만든 지도보다 더욱 세밀하다. 그러나 기업의 지도작성 과정에 대한 동업자감시 절차(peer-observation process)는 존재하지 않는다.


브로톤의 최종 결론은 이것이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가 보유할 자격이 있는 지도만을 보유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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