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하지 말고 사과하고 화해하세요" 소송하지 말라는 『인생내공』 조우성 변호사 인터뷰

조회수 2017. 3. 13. 12: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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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중요한 건 인간관계입니다."

철노자(이하 철):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조우성(이하 조): 올해로 22년째 변호사 하고 있다. 법대 나와서 91년도에 사법시험 합격했고 97년도부터 변호사 시작했다. 태평양 등에서 일하다, 2016년 독립해서 로펌 ‘기업분쟁연구소’를 만들었다. 내가 대표변호사로 있고 주니어 변호사들이 5명, 스태프도 5명이다. 부티끄형 로펌(작은 규모의 로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웃음만큼은 상큼하다.



1. 개천에서 용 났다: 서울대 법대 진학 후 초고속 사시패스


철: 초중고를 다 밀양에서 나와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고 들었다. 특출나게 공부를 잘했던 건가.


조: 80년대 중반의 밀양이라는 도시는 농업도시, 농촌인데… 학부형들의 학구열이 상당히 강했다. 내가 나온 밀양고등학교도 상당히 강압적인 공부를 많이 시켰다. 한 학년이 8반이었는데 서울대학교를 14명이나 보냈다. 선생님들도 너희들은 촌놈이니까 잘 되려면 좋은 대학 가라고 엄청 갈궜다.


철: 막상 서울에 와보니 어떻던가?


조: 당시가 1987년이었다. 오자마자 바로 데모가 시작됐다. 2월에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있었고… 그때 제가 받은 느낌은… 영화관에 늦게 들어가 앉으면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건지 감을 잡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나?


좋은 대학 가서 출세해야 된다고 생각만 하고 살다가 정권타도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데올로기를 보니까 영화의 장르가 갑자기 바뀐 느낌이었다. 지금도 87년도에 느꼈던 문화 충격이 생생하다. 맨날 집에서 전화 왔다. 시위 나가지 말라고… 갑자기 완전히 다른 이데올로기를 접해서 아노미 상태에 가까웠다고 보면 될 것 같다.

1987년 2월 서울대의 모습

철: 결국 부모님 말씀을 잘 들은 건가?


조: 그렇다. 시골 출신에다가 장남이다 보니 효도라는 관념이 되게 컸던 것 같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가장 큰 준거가 되는 건 아버지 어머니였다. 나 때만 하더라도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게 굉장히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오후 시간대에 학교를 보면 3, 40프로 친구들은 대학 교정에서 최루탄 맞으면서 데모하고 있고… 나머지 5, 60프로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거기서 느꼈던 게… 내가 이렇게 비루하게 살아야 되나… 그런 생각이 좀 들었었다. 완전 운동에 빠져있는 사람과 완전 공부하는 사람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회색지대에 있었다.


철: 그럼 실제로 데모도 나갔다는 얘긴가?


조: 당연하다. 그 당시에는 누구든 시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철: 91년도에 사법시험 합격을 했다. 꽤 빠른 것 아니었나.


조: 그렇다. 대학원 1학년 때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조윤선이 동기다. 내 바로 뒤에 앉아서 공부했다. 그 반대편 특검에서 이름 날리고 있는 윤석열 검사도 동기고… 강용석 (더 고소왕)… 요새 팟캐스트에서 이름 날리는 이정렬 판사도 있다. 대학 동기 중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통진당의 이정희가 있다(…)

여러모로 사회의 주역이 되어있다(…)

철: 91년도는 분신정국이었는데… 연수원에 있을 때도 어떤 찝찝함이 있었나?


조: 거기 들어가서는 조금 다른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더 킹’에서도 묘사가 됐는데… 마담뚜들이 전화 와서 돈 많은 집 여자랑 결혼하라고 하더라. 되게 뭐랄까… 출세 지향적인 사람들도 많고, 인생 자체를 대단히 계획적이고 계산적으로 살아왔던, 그리고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많구나 하는… 그들은 정말 치밀하게 그들만의 리그를 꾸리고 있더라.


철: 그들을 보며 어떤 기분이 들었나?


조: 역시 권력의 정점은 쉽게 갈 수 있는 게 아니구나… 거기에는 그만의 어떤 논리가 있는 거구나… 그런 걸 어린 나이에 봤다. 한편으로는 너무 세속적이라는 느낌을 가졌으면서도, 난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열망하는 이중적인 감정이 들었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양가적인 감정이 계속 들었다.


철: 까놓고 말해보자. 어떤 사람한테 가장 질투가 났나?


조: 연수원 다니면서도 고시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고시 학원 강사… 집 형편도 어렵고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때 나랑 비슷한 상황에 있던 친구가 갑자기 중매결혼을 해서 강남의 40평대 아파트로 가더라. 순간적으로 되게 부러웠다. 나한테 “야, 뭐 그렇게 힘들게 살아”라고 했는데,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았었다.


콤플렉스라는 것도 알고 상대적으로 느끼는 박탈감인 것도 알지만,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는데 점프한 사람들 봤을 때의 무력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걸 2년 동안 적나라하게 느꼈다. 이미 아버지가 법조인이고, 뭐 그런 친구들… 그런 게 전혀 없는 저로서는, 그들이 앞서갈 수밖에 없겠다는 걸 느끼는 데서 오는 무력감이 있었다.

출처: 성장문답
기생충 박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철: 그 때 느꼈던 결핍이 지금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조: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분명히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 경험이 내 인생을 크게 좌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제 변호사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게 내게 많은 교훈을 주고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대 초반, 사법연수원 다닐 땐 생각이 여물지 않았었고, 기쁨과 콤플렉스와 무력감이 혼합된 복잡한 존재였다. 지금은 변호사의 삶을 살면서 서서히 내실을 다지고 업그레이드가 되는 기분이다.

출처: 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 팟캐스 바로가기

2. 검사가 되기엔 지나치게 높았던 공감 능력


철: 로펌에 들어가기까지 이야기를 해달라.


조: 원래는 검사가 되고 싶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다 철도공무원이었는데, 공무원 특유의 권력 지향적인 면이 있지 않나. 나더러 반드시 검사가 되라고 했다. 부정 비리를 척결하는 검사… 부모님 말 잘 듣는 장남답게, 사법연수원 1년 차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내가 검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2년 차 때 그게 바뀌었다.


철: 뒤늦게 온 사춘기…?


조: 보통 연수원 2년 차 때 법원, 검찰, 로펌을 돌며 실무 수습을 한다. 1993년에 4개월간 부산지방경찰청 검사실에 배석 돼서 검사직무 대리로 업무를 시작했다. 이때 하는 일이 그렇게 복잡한 게 아니다. 보통 경찰에서 피의자가 이미 다 자백한, 간단한 사건들을 검찰에서 재조사하는 거다. 그걸 하면서… 아 이 길이 아닌개벼… 했다. 첫 번째 맡은 사건이 아리랑치기 절도 사건이었다.

철: 술 먹은 사람 때리는 그거…?


조: 그건 퍽치기다. 술 먹고 뻗어있는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 빼 오는 게 아리랑치기(절도), 그때 때리면 퍽치기(강도)… 어쨌든 아리랑치기한 대학생을 신문한다고 처음엔 “너 왜 그랬어” 했는데 알고 보니 사연이 있더라. 어머니 수술비가 필요해서 아르바이트 몇 개를 하다가 술에 뻗어있는 행인 보니까 옷이 펼쳐져 있고 지갑이 보여서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거다. 단돈 3만 원이었다.


철: ㅠㅠ


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 피의자신문조서를 쓰면서 범죄사실 두 장 쓰고 나머지 세 장은 왜 훔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막 써줬다. “사실 훔치고 싶은 생각 없었죠 “ “네” “지갑이 보이니까 순간적으로 혹했던 거죠” “네” 뭐 이런 식으로(…)


이걸 검사한테 드렸더니 날 보며 그러더라. “조시보(직무대리)… 3페이지 이하 내용은 필요 없는 거야… 검사는 범죄사실만 파악하면 되는 거야… 그거 지워…” 훔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썼는데(…) 가져갔더니 검사가 ‘당신은 검사하면 스스로 힘들어 하겠다(…)’ 그러더라.


당시 지도 검사의 표정

철: 내가 듣기에도 검사 하면 안 될 것 같다.


조: 법조계에는 세 바퀴가 있지 않나. 검사는 죄를 파헤치는 거고, 변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호를 하는 거고, 판사가 판단을 한다. 근데 내 성정이, 그런 어쩔 수 없는 얘길 들으면 그냥 막 동조가 되더라. 나는 검사 입장에서 변호사처럼 생각했던 거다.


그때 확실히 느꼈다. 사람은 적성이란 게 있는 거구나… 원래 타고난 천성 자체가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공감이 되게 쓸데없이 뛰어나고 그렇다. 그 4개월 동안의 경험이 내 진로를 바꾸게 했다.


철: 그렇게 드넓은 태평양으로…


조: 변호사 실무수습 갔는데 태평양인지 뭔지도 몰랐다. 2개월 동안 일을 하는데 정말 맘에 들었다. 이 일이 참 좋구나… 누구를 벌주지 않아도 되고(…) 공감 능력이 너무 뛰어나서 형사사건 하면서 많이 지쳤었다. 그래서 군법무관 3년 마치고 태평양으로 가게 된 거다. 그때 아버님 반대가 많았다. 왜 검찰을 안 가려고 하느냐… 설득 많이 드렸고, 니가 살 세상이고 니 미래이니 니 뜻 존중한다… 결국 이렇게 됐다.


철: 그렇게 노후자금을 마련하고…


조: 어떻게 보면 태평양 커가는 과정을 다 지켜봤다. 드라마에서 보면 로펌 변호사들 군기가 세지 않나. 실제로 그만큼 세다. 그때 선배들한테 욕 얻어먹어 가면서 일을 배웠던 게 평생의 자산으로 남은 것 같다. 소송 건을 70건, 자문사건 30건… 이걸 다 동시에 진행했다. 1년 차 때 사무실에서 계속 잤다. 그렇게 1년 남짓 일하니까 거의 따라가겠더라. 선배들이 나를 동료로 인정해주는 듯한 말투와 눈빛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초반에는 되게 힘들었지만 분명히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조우성 변호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인생내공’ 1st 패밀리데이 (2017.02.23, 팟빵스튜디오)



“내 이야기를 들어 줄 단 한 사람이 있다면”


철: 태평양 시절 맡았던 사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있다면.


조: 사실… 성범죄 사건이었다. 주로 기업을 상대로 하다 보니 소송물 가액으로만 따지자면 5,000억짜리 사건도 해봤었다. 그런데도 내 변호사 인생에서 딱 하나를 고르라면 바로 그 사건이다.


철: 어느 쪽을 변론한 건가?


조: 음… 가해자 쪽이었다. 사회에서 알던 친구가 연락이 왔다. 정말 골치 아픈 일인데 사건을 좀 맡아달라고… 그 친구 동생이 외국인 학교 셔틀버스 운전기사였는데, 네 살배기 유치원생을 성추행했다고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제껏 당연히 큰 사건만 했으니까 내가 맡을 수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 그래도 친구 부탁이니까 상담을 한 번 해봤는데… 확실히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철: 어떤?


조: 그 친구는 결혼을 했고 딸이 있었다. 화물차 운전 같은 험한 일을 하다가 어렵게 스쿨버스 운전사로 취직이 됐고, 6개월째 일하던 때였다. 연봉이 세고 정년 보장이 되는 곳이었다. 자기는 절대 그렇게 한 일이 없고, 억울하다고 하더라. 자기 부인도 자기를 믿지 않으니까 그게 힘들다고… 자기 딸이 아무것도 모르는데, 성추행 전과자로 남는 건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억울함을 밝혀달라고…


정말 거짓말하지 말고, 내 눈을 딱 쳐다보고 진실을 얘기하라고 했다. 정말로 아니라고 하더라.


철: 그때 그를 믿을 수 있었나?


조: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출처: 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 팟캐스트 바로가기

철: 그런 사건에서는 변호사가 변론 대상을 신뢰할 수 있는지가 정말 중요한 문제인 것 같더라.


조: 맞다. 점점 파고 들어가 보니까 과연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아이가 얘기를 할 때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엄마가 물어보는 것에 툭툭 ‘응’ ‘응’ 대답하며 일이 커진 거다. 재판하러 갔을 땐 성범죄 전담 재판부였는데… 피고인들을 전부 다 쓰레기로 보더라.


나도 오해를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돈 안 받고 하는 거다, 제가 볼 때 정말 억울한 포인트가 있어서 그런다, 죄가 있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닐 수도 있지 않으냐, 현장검증을 해봐야 한다… 그렇게 말을 했다.


철: 받아들여 주던가?


조: 스쿨버스가 서 있는 위치와 시각을 고려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근데 안 하는 걸로 변론종결 됐다. 그래서 내가 학교에서 찍은 100여 장의 사진을 법원에 별도로 제출한 후에 제발 한 번만 와달라고 했다. 결국 판사는 현장검증 신청을 받아들였고, 검사와 판사가 사건 현장에 가서 범죄 일어났던 시간대의 상황을 봤다.


그 때 판사가 본 거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걸… 그래서 1심에서 무죄가 났다.


철: 검찰이 항소했을 것 같은데?


조: 맞다. 그때 태평양의 높은 선배가 날 불러서 이 사건 하지 말라 그랬다. 피해자네 집안이 좀 잘 나가는 집안이었나 그랬다. 국선한테 맡기라고… 그 얘기 들으니까 더 하고 싶더라(…)


무죄 나왔을 때 그 친구도 울고 나도 울고… 친구가 나한테 하는 말이 “조 변호사 진짜 고맙다. 가족들조차 얘 말을 100프로 믿지 못했다. 그래도 네가 걔 말을 듣고 끝까지 파헤쳐서 무죄가 나왔다…”


결국 2심까지 갔고, 무죄가 확정됐다. 사실 내가 쓴 책 제목이 거기서 나온 거다. 그 사람의 인생, 가족, 딸에게 정말 큰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당시 직장에 잘 다닌다고 하더라.


철: 이렇게 책 광고를…


조: 휴머니즘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훌륭한 책이다.

이 글이 광고글은 맞지만 이 책 광고는 아닙니다



소송의 본질을 깨닫고 태평양을 나오다


철: ‘모든 일을 법적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는 마라’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왜 그러는 건가?


조: 내가 하는 일은 그 사람의 문제, 특히 법적으로 꼬여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거다. 근데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은 사실 여러 가지가 있다. 마치 몸이 아플 때 수술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식이를 한다던가 약을 쓰는 방법도 있지 않나. 매슬로가 말하길, 망치를 든 사람은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더라. 법을 하는 사람은 모든 상황을 법적인 사건으로 파악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철: 물론 변호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조: 내가 10년 정도 변호사 일을 했을 때, 분쟁의 본질이 뭔가 생각해 봤다. 물론 돈 때문이다. 근데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분쟁이 발생하는 원형 감정이 있다. 과욕, 질투, 배신감 등등… 몇 개가 있는 거 같다. 그게 뛰쳐나와서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데, 어쨌든 기본 본질은 섭섭함이다. 그러니 살갗에 있는 상처만 치료하는 게 아니고, 본질에 있는 걸 처치하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철: 어떻게?


조: 본질을 치료하는 건 사실 사과다. 사람들은 소송을 열 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감정의 동물이니까. 어느 순간 한 단계 레벨 업된 변호사가 되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소송하지 말고 사과를 하라고 했다. 사과하세요, 화해하세요… 그럼 의뢰인은 나에게 감동을 한다. 변호사는 소송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분쟁을 해결하는 사람이다.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봐야 하고, 그 원인인 악감정의 원형이 뭔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도 상담하면 ‘소송하지 마세요, 답이 아닙니다’라고 하는 게 전체의 50프로는 된다.

조우성 스티브잡스설

철: 아무리 그래도 소송으로 먹고사는 변호산데, 어떻게 법 만능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나?


조: 분쟁에 휩싸인 사람이 내 앞에 오는데, 그 분쟁을 해결하는 것에서 나아가서 어떻게 그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실제로 소송 상담은 정신과 상담과 비슷하다. 소송하려고 변호사까지 만나러 온 사람들은 그 이전에 정말 많은 일을 겪고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분들의 마음까지 치유가 됐을 때 내 만족도도 함께 높아지더라. 내 일에 대한 사명감과 보람을 그걸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문학, 철학, 역사책을 보기 시작했다.


철: 공부에서 얻은 결론이 있다면?


조: 핵심은 관계다. 관계가 화두다. 주역 공부를 할 때, 길흉화복 이런 표현을 쓰는데, 모든 길흉화복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도 상사와의 관계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가장 많다.


관계를 잘 꾸리는 사람은 잘 나갈 수밖에 없고, 서툰 사람은 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잘 안 풀리게 마련이다. 관계라는 화두는 평생을 집중하고 연구해 볼 만한 주제라고 생각한다.

사과를 받아내는 데에도 특화돼 있다(…)

철: 태평양을 나오게 된 계기가 있다면.


조: 태평양에서 많은 걸 배웠지만 태평양은 거대한 조직이 됐고, 그러고 나니 조직에서 내게 원하는 일이 분명히 있었다. 조직은 돈을 벌어야 하니까… 로펌 17, 18년 차면 제일 일을 활발하게 할 때다. 그런데 전관들이 가져온 어려운 사건들을 점점 맡게 되니, 그 시간에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이 급여를 포기해야 했지만, 어쨌든 더 늦기 전에 내 플랫폼을 한 번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철: 태평양을 그만두고 험난한 세상 밖으로 나와보니 어떻던가?


조: 아무리 작아도 내 플랫폼을 갖고 싶었다. 큰 플랫폼에서 룰 테이커로만 남기보다, 룰 메이커가 되고 싶었다. 좋은 직장에서 많은 걸 배우고 익히다 보니까 룰을 직접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되게 힘들었지만 주체적으로 일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나와서 일을 한 게 되게 잘한 것 같다.


철: 책은 그때 쓴 건가?


조: 맞다. 스스로 좀 다지는 의미에서, 그래도 나를 일으켜 세워야 했기 때문에, 과거에 그래도 내가 잘했던 사건들을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써본 거다. 블로그에 세 개쯤 글을 올렸을 때 출판사에서 책 내자고 연락이 왔다. 첫 제안에 오케이 한 이유가, 출판사가 맘에 들어서였다. 리더스북. 내가 2009년에 아주 재밌게 봤던 ‘시골 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만든 곳이다. 나도 이런 옴니버스 형식의 책을 하나 쓰고 싶었었다. 의사가 아닌 변호사 버전으로.


철: 책을 보면 드라마 같은 일이 굉장히 많이 펼쳐지더라.


조: 각색을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팩트에 기초를 했다. 하루 다섯 건 정도의 상담을 하면, 그 사람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보게 된다. 사람이 상황이 좋을 때는 자신을 포장할 수 있지만 변호사 앞에 왔을 때는 거의 민낯이다. 매일매일, 20년간 그걸 보는 거다.

철: 그렇다고 모든 변호사가 감동적인 책을 써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조: 나는 남들보다 약간 예리한 촉을 가지고 있는 것뿐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감정의 결, 흐름을 이야기화해서 어떻게든 정리해 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걸 쌓아놨던 게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다. 누가 힘들다고 와서 상담할 때 그 사람의 고민강도가 100이라면, 그중 최소한 50은 나에게 건너온다. 어떤 때는 정말 탈탈 털리는 느낌이 들었다.


철: 그럼에도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지 않나.


조: 물론이다. 돈이 안 되는 사건들도 인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경우들이 있어서 좋다. 그래서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200%다.

출처: 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 팟캐스트 바로가기



결국 중요한 건 인간관계, 소 잃기 전에 외양간 정비하는 변호사 되고 싶다


철: ‘기업분쟁연구소’라니 이름이 특이하다.


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기본적으로 변호사는 소가 도망가면 그 소를 잡으러 가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일이 또 발생할 수 있지 않겠느냐, 외양간을 제대로 바꿔야 하지 않겠나, 이런 사건이 반복될 걸 예상하고, 발생하지 않은 기업이라도 미리 시스템을 갖추라고 말하고 있다. R&D의 성격이 굉장히 강하다.


철: 어쨌든 비용을 지출하는 건 기업인데, 설득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조: 중소기업 CEO들이 너무 돈에 짜다고 하는데, 사업가들은 변호사들보다 코스트 베네핏 분석이 100배는 빠른 사람들이다. 이 정도 비용을 들여서 어느 정도 베네핏이 나올 건가를 제대로 보여주면 분명히 움직인다. 철저하게 니즈를 자극하면 된다. 워낙 기업 간 분쟁이 많다 보니 이런 게 먹힌다.

철: 실제로 법조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가?


조: 요새 건강검진 시장이 엄청 커졌다. 검진이라는 자체가 하나의 특화된 서비스다. 수술은 정말 아픈 사람이 하는 건데, 검진은 건강한 사람들도 하는 거니까 시장이 넓다. 제가 생각하는 룰은 법률시장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거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변호사들은 클라이언트의 소가 도망갔다고 하면 잡아주러만 가는 거 같다. 로펌에서 일을 하면서 나는 진단 예방 시장을 봤다. 그래서 로펌 이름 자체를 R&D 성격이 강한 기업분쟁연구소로 지었다.


철: 어떤 고객들이 있나?


조: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하다. 아무래도 중소기업이 가장 많은 편이다. 이제 막 시작된 시장이고, 성장세가 확실히 보인다.



팟캐스트, 나의 온전한 목소리를 전하는 최고의 수단


철: 어쩌다 팟캐스트를 시작하게 되었나?


조: 원래 팟캐스트를 2015년부터 꾸준히 들었다. 아마 처음 듣기 시작한 것이 ‘지대넓얕’이었으리라. 책을 보는 것보다 누워서 가만히 눈감고 들어도 지식을 섭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네 팟빵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내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서 본 팟빵 실무자가 적극적으로 제안을 하게 되어 나도 용기를 내어 시작하게 됐던 것이다.


철: 팟캐스트 이름을 인생내공으로 정한 이유는?


조: 제일 어려운 것이 네이밍이다. 원래 내가 오프라인에서 강의하던 ‘협상’ 을 주제로 시작하려 했다, ‘모든 인생은 협상이다’라는 주제 하에 ‘인생네고’라고 제목을 정했었다. 그런데 협상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지혜들을 한데 모으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외연을 넓혔고, ‘인생내공’이라고 만들어봤는데 훨씬 많은 내용을 포함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네이밍이 아주 마음에 든다.


철: 이미 활발한 블로깅 활동을 하고 있는데, 굳이 팟캐스트를 추가한 이유는?


조: 원래 대중 강연하는 것을 좋아했다. 같은 이야기라도 글로 전달할 때와 말로 전달할 때는 차이가 있다. 팟캐스트는 한 에피소드 30~40분 동안 온전히 내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확실히 블로그로 접했을 때보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더 뜨겁다. 30~40분 동안 나의 온전한 모습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고, 그 주파수에 공명(共鳴)하는 분들과 깊은 교감을 할 수 있다.

출처: 조우성 변호사의 인생내공 팟캐스트 바로가기

철: 지식라디오와 예PD는 어떤 식으로 제작을 도와주는가?


조: 나는 지식라디오와 예PD덕분에 그냥 입만 갖고 가서 녹음만 하면 된다. 녹음, 효과음 믹싱, 업로드 등의 관리를 지식라디오와 예PD께서 알아서 해 준다. 사실 처음에 팟캐스트를 해볼까 생각했을 때 알아보니 녹음실 대여료도 만만치 않았고, 기술적인 부분도 내가 공부해야 해서 접근이 어려웠다. 하지만 지식라디오와 예피디 덕분에 손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철: 정말 인기 없을 방송 컨셉인데, 의외로 듣는 사람이 있다. 무엇 때문이라 생각하는가? 원래 팬들이 계속 듣는 것 아닌가?


조: 인기가 없다니. 섭섭한 말씀. 대부분 사례 위주라 재미가 있다. 상위 팟캐스트들은 정치 팟캐스트가 많은데,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유효기간이 지나서 다시 손이 안 간다. 하지만 인생내공은 유효기간이 길거나 유효기간이 없는 컨텐츠라서 두고두고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자기가 처한 상황… 사장인지, 직원인지, 동업을 하다가 배신을 당했는지, 실패의 좌절을 겪었는지에 따라 같은 에피소드라도 달리 다가온다고 한다. 통계를 보면 30, 40, 50대 여성분들이 특히 많이 듣는다. 감성적인 코드가 있어서 그런가 생각해 본다.


철: 후기가 엄청나게 훈훈하다.


조: 후기 중에 ‘내 속에 녹슬어 있던 그 어떤 능력을 쓰게 해주는 것 같은 팟캐스트’라는 글이 최고의 찬사로 남아 있다. 인생내공을 들으면서 본인도 모르게 자신이 다듬어 지고 정갈해지는 느낌을 받는 분이 많은 것 같다. 나로서는 큰 보람이다.


철: 실제로 팟캐스트를 통해 도움을 얻은 사례를 좀 알려줬으면 한다.


조: 인생내공에서는 경청을 강조하는 사례가 많았다. 청취자들 중에서, 형과 공인중개사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서 법적인 싸움까지 가야 할 상황이었는데, 공인중개사의 이야기를 찬찬히 들어주고 힘들지만 공감하는 자세를 가졌더니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었다는 후기를 본 적이 있다.


그 외에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인생내공 덕분에 인생을 좀 더 품격 있게 살 수 있게 되었다는 후기가 가장 뿌듯하다.

강연왕 조우성

철: 팟캐스트를 통해 클라이언트가 생긴 적도 있다고 들었다?


조: 청취자들에게는 무료 법률상담의 기회를 드리고 있다. 보통 하루에 2~3건의 상담 전화나 메일이 오고 있다. 큰 사건보다는 우리 주위의 소소한 분쟁들, 그리고 인간관계 갈등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는 건들이다. 그동안 약 30건 정도의 상담을 진행했었고, 실제 소송으로 수임한 건도 3~4건 정도 있다.


철: 팟캐스트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조: 요즘 팟캐스트 방송을 하기 위한 하드웨어 지원은 여러 곳에서 많이 하고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컨텐츠다.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날 무렵까지 존속하는 비율이 20% 미만이라고 한다. 팟캐스트를 시작하려는 분들은 최소한 1년 정도 지속할 수 있는 양을 준비하고 시작하길 권한다. 1년 정도 준비가 되어 있으면, 진행을 하다가 계속 진화하면서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초반 준비가 약하면 중간에 좌초하기 쉽다.


철: 당신에게 팟캐스트란?


조: 팟캐스트는 가히 미래형 미디어로서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도전해 볼 만한 것이라 생각한다.

팟캐스트 ‘인생내공’ 1st 패밀리데이에서 강연 중인 조우성변호사 (2017.02.23, 팟빵스튜디오)

철: 긴 시간 수고하셨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린다.


조: 내가 협상 강의를 할 때 항상 ‘정말 이거 하나만 알아두세요’ 하고 얘기하는 게 있다. 사람은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여러분 앞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자기가 가장 소중하고, 자기 관심사밖에 안 보인다. 그래서 경청이나 공감이 먹히는 툴인 것이다.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니까.


철: 사람들에게 라스트 조언을 한다면?


조: 내가 팟캐스트를 통해 전수하고픈 가장 중요한 내공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정말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람에게 경청하고 공감해주는 자세를 갖추라는 것이다. 그 자세만 제대로 갖추고 있어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 것이며 많은 기회가 찾아올 것 같다.


자기 PR의 시대라고 하는데, 한 번 상대방에게 포커스를 맞추어봐라. 완전 튄다. 낭중지추가 되는 거다. 그걸 안 잊으면, 꽤 괜찮은 관계 형성과 커리어, 삶을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성숙한 인간이 될 것이다.


철: 앞으로 인생내공 팟캐스트가 나아갈 길, 지향하는 바를 알려달라.


조: 인생내공은 앞으로 200회, 300회, 아니 그 이상 내 역량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 인생의 ‘내공’을 넓히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소재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내 경험을 위주로 풀었다면 앞으로는 내공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책(내공 북스), 영화(내공 무비), 철학(내공 철학) 등 그 분야를 넓혀가면서 인문학 전반으로까지 확대하고 싶다.


단기간의 순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으며 뚜벅뚜벅 걸어가는 믿음직한 팟캐스트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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