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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의 '본질' : 교육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조회수 2017. 2. 23. 14: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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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수업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출처: SBS NEWS

교육부가 역사과 국정 교과서에 강한 미련을 남기고 있다. 국정 교과서를 폐기하는 대신 연구 학교를 지정해서 몇몇 학교에서라도 명맥을 이어가겠다고 한다. 당연히 국정 교과서 연구 학교에 예산과 승진 가산점 등의 특혜를 부여하고, 일부 보수 교육감 지역에서는 여기에 낚이는 학교들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국정 교과서의 명맥을 남겨 두었다가 대통령 선거 등 상황을 봐서 언제든지 다시 밀어붙이려고 숨을 고르는 꼼수가 눈에 훤히 보인다.

출처: KBS1



70~80년대의 국정교과서를 들여다보다


그들은 왜 이렇게 국정 교과서에 매달리는 것일까? 국정 교과서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는 1970~80년대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아 알아볼 수 있다. 이 시대에는 도덕, 국어, 국사, 사회가 국정 교과서였다.


그런데 당시의 이 국정 교과서들에는 진보진영 일각의 주장처럼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는 내용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교과서보다도 훨씬 더 반일적이었다. 반일을 넘어 거의 혐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가 미화되기는커녕 그 폭압상을 너무도 과장되게 표현하여 거의 선정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누런 군복을 입은 일본군이 시도 때도 없이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평화롭게 오손도손 살아가는 조선인의 마을에 쳐들어와 재산, 생명, 순결을 마구 빼앗아가는 이야기들이 반복되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 백범 김구 선생,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은 교과를 넘나들며 등장했으며, 그 밖에도 구석구석에 애국주의와 민족주의적 상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분단을 미화하지도 않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도 다름 아닌 이 국정 교과서를 통해서였다. 애족의 수사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시의 이 국정 교과서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이렇다. 나라와 민족, 즉 전체 집단이 개인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나라를 잃으면 국민 개개인의 자유와 생명도 사라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를 그토록 강조했고, 나라라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애국선열들의 이야기를 그토록 강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라를 지킬까? 똘똘 뭉쳐 하나가 되어야 하고, 선진문물을 빨리 배워 힘을 길러 외적과 맞서 싸워야 한다.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분열되어 임진왜란을 자초했고, 선진문물을 배우지 못해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무리들이 북한, 중국 등 공산주의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공의 기치 아래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시대 교육을 지배했던 국민교육헌장을 보면 우리 삶의 목적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며, 나의 발전의 근본은 '나라의 발전'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총화 단결'하는 것이다. 국민교육헌장이 그 시대의 지배 사상이라면, 국정교과서는 그것을 구현하는 도구다.


심지어 이런 전체주의적인 내용이 아니더라도, 국정 교과서라는 형식 자체가 이미 전체주의적이다. 정답은 하나밖에 없고, 그 정답을 결정할 권위가 국가에게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정해주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정답을 외우는 것이 공부이며, 오답은 나쁘다고 몸에 익힌 학생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도 국가, 정부의 시책에 반대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도록 자라게 된다.



현장에서 무력화된 교과서 속 '전체주의'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며, 현실은 달랐다. 이 국정교과서로 교육받은 세대는 장차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저항적인 세대인 386 세대로 성장했다. 이들이 이른바 좌파 교사들로부터 의식화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 시절에는 전교조도 없었으며, 그 전신인 전교협은 소수에 불과했다.


엉뚱하게도 국정교과서가 유포하려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무력하게 만든 주역은 입시 교육이었다. 입시 교육은 국정교과서가 설파하는 모든 가치를 단지 대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켰고, 학생들은 이 이데올로기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단지 문제풀이의 대상에 불과했으니 달달 외웠다가 시험만 끝나면 잊어버렸다. 말하자면 국정교과서의 현장 무력화다.

물론 이 현장 무력화는 진정한 현장 무력화가 아니다. 입시교육을 하던 교사들은 자기들이 국정교과서의 이데올로기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입시교육을 받던 학생들 역시 국정교과서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문제풀이 대상으로 만들어 희화화하고 있다는 의식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현장 무력화가 된 것이지, 그 자체가 의식적인 실천은 되지 못했다.



수업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제 우리는 국정교과서가 전체주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도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교육 당국이 기어코 그것을 관철시키려고 한다면 명시적이고 의식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 방법은 국정교과서를 제도적으로 폐지하는 것뿐 아니라 수업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그 수업은 학생들이 국정이든 아니든 교과서라는 것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 다만 하나의 견해에 불과한 것으로 상대화시키고, 의문을 찾고 질문하고 문제제기하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교사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교사의 견해를 존중은 하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더 나은 견해를 찾아 나서는 탐구의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이런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교실에서는 역사 교과뿐 아니라 모든 교과가 국정 교과서로 바뀐다 할지라도 그 음흉한 목적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땅의 모든 동료 교사들의 의식적인 실천을, 그리고 학부모와 시민들의 격려와 응원을 촉구한다.


원문: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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