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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속 소설들

“책 향기를 맡고 페이지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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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을 덮으며 갑자기 나의 확신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나는 누군가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봤냐고 물으면 그동안 자신 있게 “없다”라고 답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의심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설사 이번이 열 번째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가능성이 높다. 열 번째 읽고 책을 덮으면서도 나는 똑같은 의심을 할지 모른다.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어느 광고 카피를 인용하자면, 이 책은 이렇게 기억될 것 같다. 열 번을 읽어도 처음 읽는 것 같은 책, 처음 읽어도 열 번 읽은 것 같은 책.


읽는 사람마다 주목하는 지점도 다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주인공 와타나베의 성격과 말투, 또 어떤 사람은 주변인들의 자살이 오랜 잔상으로 남을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필두로 와타나베와 등장인물이 듣고 연주했던 곡이 오래 기억될지 모른다. 이도 저도 아니고 오로지 남녀 주인공들의 섹스에만 주목할 수도 있다. 어쩌면 한 사람이 읽을 때마다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겠다.

트란 안 훙, 영화〈상실의 시대〉

내가 주목했던 것은 와타나베가 읽었던 ‘책’이다. 스무 살 청년, 삶의 목표와 방향은 불분명하다. 사람과의 관계도 선명하지 않다. 그것은 우정이었을까, 사랑이었을까. 제대로 소통하고 교감하기도 쉽지 않다(이 소설에서 섹스는 그러한 소통과 교감의 어려움을 상징한다고, 나는 해석한다). 그런 스무 살의 청년은 무엇을 읽으며 상실감과 고독감을 견뎌냈을까? 나는 그 시절 무엇을 읽었을까? 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며 읽는 것도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불현듯 생각나면 나는 책꽂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꺼내 아무렇게나 페이지를 펼쳐 그 부분을 집중해서 읽곤 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 페이지도 재미없는 페이지는 없었다.

주인공 와타나베가 두 학년 위의 나가사와와 친해진 이유도 이 책 때문이다. 나가사와는 식당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고 있는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토마스 만, 『마의 산』

와타나베가 연락이 끊겼던 나오코의 긴 편지를 읽고 난 후 읽은 책이다. 편지를 읽은 뒤 그는 나오코를 찾아가기로 한다. 묵묵히 짐을 싸고 이 책을 읽는다.

내가 식사 후에 전화하자 같은 여자가 나와서 면회가 가능하니 어서 오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배낭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넣었다. 그리고 잠이 올 때까지 브랜디를 마시면서 『마의 산』을 마저 읽었다. 그러다가 겨우 잠이 든 것이 새벽 1시를 넘어서였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호밀밭의 파수꾼』

이 책을 읽는 장면의 묘사는 없다. 대사에 나올 뿐이다. 정신병원에서 만난 레이코 씨는 나오코를 만나러 온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기, 뭐랄까 말투가 참 묘하네. 『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남자애 흉내라도 내는 것 같아.

나는 아직 이 책을 보지 못했지만, 이 대목을 읽는 순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레이코가 와타나베에게 이렇게 말할 때 둘은 언젠가 살을 섞게 될 줄 알았다.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서 책 속 주인공의 말투를 떠올릴 정도면, 거의 화염에 가까운 스파크다.


 

윌리엄 포크너, 『8월의 빛』

나는 통근 열차처럼 붐비는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포크너의 『8월의 빛』을 사서 음악을 크게 틀어줄 것 같은 재즈 카페에 들어가 오넷 콜먼이나 버드 파월의 레코드를 들으면서 뜨겁고 짙고 맛없는 커피를 마시며 방금 산 책을 읽었다.

미도리의 아버지를 만나고 온 와타나베가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거리를 걷다가 산 책이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나는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와타나베의 모습이 사진처럼 그려졌다. 처음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단한 소설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8월의 빛』도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아래서』

미도리의 집인 고바야시 서점에서 미도리를 재운 뒤 와타나베가 책장에서 빼 든 책이다. 맥주를 마시며 부엌 테이블에 앉아 혼자 그 책을 읽는다. 그녀의 죽은 아버지가 입었던 파자마를 입고.

뭔지 모르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이러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수레바퀴 아래서』 같은 건 다시 읽지 않았을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조금 고리타분하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은 소설이었다. 짙게 고요가 내려앉은 밤 나는 부엌에서 꽤 즐거운 마음으로 한 행 한 행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노르웨이의 숲』은 책보다 음악이 더 많이 등장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또 트루먼 커포티, 존 업다이크, 레이먼드 챈들러를 즐겨 읽었다. 동년배의 다른 아이들은 주로 다카하시 가즈미, 오에 겐자부로, 마시마 유키오를 읽었다.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는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고 말한다. 어쩌면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 와타나베를 버티게 했던 힘은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책 속의 이런 대목은 나의 추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하나를 잡으면 몇 번이나 거듭 읽었고, 때로 눈을 감고 책의 향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책 향기를 맡고 페이지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 나는 행복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원문: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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