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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보물 창고를 엿본 그날 깨달았다.

조회수 2020. 10. 14. 13: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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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은 것도, 나를 독립시키는 것도 아빠에게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테다.

헤어지는 법

아빠는 뭐든 잘 버렸다. 너저분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건 가차 없이 쓰레기통 행이었다. 쓰레기통은 또 얼마나 자주 비우는지, 뭔가 없어진 걸 깨닫고 달려가면 물건은 이미 멀리 여행을 떠난 뒤였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 쓴 아이 크림, 명품 구제 운동화 등 정든 물건과 생이별할 적마다 아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아빠가 절대 버리지 않는 것도 있었다. 할머니가 보낸 콩, 사과, 장아찌 같은 것은 냉장고 제일 앞 칸에 넣어 두고, 아침저녁으로 독촉했다. 


“빨리빨리 먹어라, 상한다.” 


할머니의 정성이 버려지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나 보다. 나는 아빠의 이중적인 태도에 더 화가 났다. 내 물건도 그 반의반만큼이라도 소중히 여겨 주길 바랐다.

 

아빠가 버리지 않는 게 할머니 표 음식만은 아니란 걸 알게 된 건 지난 설날이었다. 나는 작은엄마에게 세뱃돈을 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에 세뱃돈을 받은 게 민망하기도 하고 그 돈을 살림에 보태는 게 좋을 듯해 안방 서랍장을 열었다. 


그 안에는 어린 시절 내가 삐뚤빼뚤 쓴 편지와 그보다 더 어릴 적에 입은 배냇저고리가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건 아빠의 보물 창고였다.

 

아빠의 보물 창고를 엿본 그날 나는 깨달았다. 아빠에게 있어서 무언가를 버린다는 것은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들 중에서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무척이나 고심하는 일이었음을. 


아빠는 집을 팔고 고향인 영천으로 내려간다. 오랫동안 살았던 아파트를 내놓은 것도, 나를 독립시키는 것도 아빠에게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테다. 


지금에서야 나는 아빠를 이해한다. 언젠가 헤어질 수밖에 없는 것들을 매 순간 더없는 그리움으로 대하며 살아온 아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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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인천시 계양구에서 박소연 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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