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김치를 마주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아내의 김치
세 아이와 아내, 우리 다섯 식구는 누구보다 행복했다. 남들보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내는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매일 아침 나를 위해 누룽지를 끓이는 따스한 사람이었다.
우리에게 불행이 찾아온 건 재작년 겨울이었다. 아내가 몸이 좋지 않다기에 감기 몸살인 줄 알았다. 한데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아침에 차에 태워 대학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을 땐 이미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다. 의사들이 달려와 어떻게든 살리려고 애썼지만 회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너무나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선 급성 심부전증이 의심된다고 할 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아내에게서 호흡기를 떼던 순간부터 장례를 치르기까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는지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허망함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아직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듬으며 출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아빠를 보고 환하게 웃는 세 아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행히 가족과 이웃의 도움 덕에 하루하루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내가 떠난 지 1년, 평소 아내와 자매처럼 지내던 한 이웃이 가족과 찾아왔다. 추모식이 끝나자 그녀는 차에서 커다란 김치 통 두 개를 꺼냈다. 김장하면서 우리가 생각나 넉넉히 담갔다고 했다.
그러곤 울먹이며 겨우 입을 열었다.
“다른 하나는 작년에 수아 엄마가 담근 거예요.”
당시 아내는 김장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김치를 한 통씩 나눠 줬다고 했다. 아내 생각에 차마 그 김치를 먹지 못하고 1년간 보관한 것이었다.
“수아 엄마 손맛이 좋았잖아요. 이제 그 솜씨를 맛보지 못할 테니까……. 보관했다가 꼭 전하고 싶었어요.”
아내의 김치를 마주하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시 한 번 아내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어제는 마지막 남은 김치로 찌개를 끓였다. 이제 더 이상 아내의 김치는 없지만 이웃의 온정에서, 아이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내 마음에서 아내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아내의 김치는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더 열심히 살라고 아내가 우리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서툴지만 이젠 내가 김치를 담가 보려 한다.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면 그땐 직접 만든 음식으로 아내를 기쁘게 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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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전시 대덕구에서 이호권 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