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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좋은생각

좋은생각 햇살마루 ㅣ 아들이 떠나는 날

아름다운 사람들의 밝고 따뜻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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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다. 언젠가 다 큰 아들에게 “잘 가라.” 하고 말할 날이. 그날이 오면 울지 말고 축하해 줘야지, 숱하게 생각했다. 오늘이 그 날이다. 그런데 이 눈물은 대체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마음 방구석에 쟁여 두었던 것일까?


어제 아들은 이곳 발리의 보육원 아이들과 캠핑을 떠났다. 지난 7년간 아들은 방학마다 이 아이들과 함께였다. 보육원은 아들에게 제2의 집이 되었다. 오늘 저녁 아들은 캠핑에서 돌아오자마자 밤 비행기를 탈 것이다. 나는 당분간 발리에 남을 테고 아들은 한국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한다. 사회인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나는 아들을 스테이크집에 데려갈 것이다.


발리에서는 만 원이면 훌륭한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스테이크는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하지만 자주 가지는 않았다. 아들이 보육원에서 몇 시간씩 땀을 흘린 날에도 “다음에.” 하고 미루곤 했다. 조금 전까지 아이들과 정말로 좋은 것을 함께 나눈 뒤에, 보육원을 나서자마자 곧장 아이들과 나눌 수 없는 고기를 아들에게만 먹이는 일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내 그런 엄마였다.


근검함, 노동, 나눔의 의미에 강한 방점을 찍는 엄마. 많은 순간 아들은 내가 답답했을 것이다. 그저 참아 주었을 것이다. 사춘기 이래로 나는 늘 내가 참고 기다려 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부모가 참고 기다려 준다는 표현처럼 우스운 것이 있을까? 무엇을 참고 기다리는가? 자식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기를?


아들이 자란 세계는 내가 자란 세계와 다르다. 아들이 살아갈 세계도 내가 살아갈 세계와 다르다. 아들은 내가 바라는 이상과 다른 자신만의 이상으로 살아갈 테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고 피곤할 것이다. 이미 살아 본 그 맥락을 잘 알면서도 참아 준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좀 살아보았다고 곁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짬짬이 내가 아는 부스러기를 내밀었다. 보호한다고 강요했고 가르친다고 멱살을 잡았다.


부모라는 집단은 숙명적으로 ‘보수’ 집단이다. 그 미안함으로 미처 알지 못했던 방구석에 들어가 쟁여 둔 눈물을 닦는다. 참회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걸레질한다. 아들과 함께한 날들을 되돌아 본다. 아들이 삼 킬로그램으로 내게 온 그날을, “음마!” 하고 부른 그날을, 처음 다섯 발자국을 걸은 그날을, 내가 아무리 초라해도 “엄마, 사랑해.”라고 말해준 날을, 세 발에서 네 발로 다시 두 발로 숨차게 함께 달린 자전거 길을, 내 키를 앞지른 열한 살의 봄날을, 방에서도 이어폰을 끼고 앉아 ‘보수’의 말에 대항했던 열다섯 살을 그리고 종종 어른의 눈빛을 하고 마주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지금, 열아홉을.


우리는 수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표현으로서의 산과 강이 아니라, 정말로 오대양 육대주의 수많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나는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내 인생에서 앞으로 너만 한 여행 친구를 찾지는 못할 거야. 순수하고 사랑 많은 내 최고의 여행 친구. 네가 내 인생으로 들어와 주어서 엄마는 엄청나게 커 버렸다. 그 성장을 잘 감당할 때도 있었지만, ‘어른 노릇’이 힘들어 한계를 드러낸 적도 많았지. 좋은 밥, 편안한 잠, 깊은 포옹만 주면 되었을 텐데 더 많은 게 필요한 줄 알고 어리석게도 뛰어다녔다. 엄마의 분주했던 어리석음일랑 잊고 좋은 기억만 가져갈 수 있다면. 네가 그럴 수 있다면. 네가 떠나면 엄마는 다시 작아질 거야. 이십사 시간 어른이 아니어도 되는 편안함으로 살아가겠지. 간혹 내가 철 지난 농담을 하거나 소중한 것을 깜빡해도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 주렴. 이제는 네가 어른이 될 차례니까. ‘엄마’라는 거대한 이름을 나처럼 작은 사람에게 선사해 주어서 고마웠다. 마음의 모든 방을 비우며, 사랑하는 엄마가.”


최후의 방까지 모두 닦았다. 아들이 돌아올 시간이다. 세수를 해야겠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울다가도 아이가 올 시간에는 세수를 하고 말간 얼굴로 맞았다. 그때에 내게 뛰어들어 와 안긴 아이는 언제나 향기롭고 싱그러워서 환한 태양처럼 방금 전까지 내가 운 자리에 빛을 비췄다. 덕분에 슬픔에도 절망에도 함몰되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왔다. 그러니 오늘, 아들 앞에서는 울지 않을 것이다. 축하만 해 줄 것이다. 고마워만 할 것이다. 스테이크를 큼직하게 썰어 먹어야지. 우리는 또, 잘, 살아갈 것이다.

 

오소희 님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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