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잖아. 엄마 이런 우산 썼는데 친구들이랑 마주치면 어떡해."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등교 준비하는데 엄마가 야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에 왔다. 엄마는 내 밥상만 차리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행여 깰까 봐 조심스레 나가려는데 등 뒤에서 텁텁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 비 온대. 우산 챙겨.” 신발장에 세워 둔 우산 두 개를 살폈다. 하나는 몹시 녹슬고, 하나는 우산살이 부러진 것이었다. 나는 우산을 번갈아 보다 결국 빈손으로 집을 나섰다. “우산은?” 밤새 일하느라 목이 쉰 엄마가 외쳤다.
수업을 마치자 비가 쏟아졌다. 청소 당번이라 교실을 늦게 나서 같이 갈 친구도 없었다. 한참 망설이다 실내화 가방을 머리에 얹고 뛰는데 정문 앞에 엄마가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벌써 간 줄 알았잖아.”
엄마는 새로 산 우산을 건넸다. 우린 조용히 걸었다. 한참 가다 인기척이 없어 돌아보니 엄마가 녹슨 우산을 쓰고 저만치에서 오고 있었다.
“먼저 가.” “왜?” “창피하잖아. 엄마 이런 우산 썼는데 친구들이랑 마주치면 어떡해.” 엄마는 조심스러워했다. 가게에서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라고 당차게 외치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제야 엄마 모습을 살폈다. 평소 잘 입지 않는 정장과 구두, 선물 받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학교에 오기 전 수십 번 고민했을 모습이 그려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황한 엄마가 다가왔다. 나는 엄마의 어깻죽지에 얼굴을 묻고 울먹였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그냥 다 미안해.” 엄마가 가만히 내 등을 토닥였다. “……엄마가 미안해.”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서승아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