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시간에 열심히 공부했다

조회수 2019. 2. 21.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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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교육 대학까지 마쳐 40년 교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오십여 년 전, 나는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다. 헌책방만 드나들던 어느 날 외삼촌 댁에 가 “송아지 한 마리 사 주시면 길러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외삼촌은 신통했던지 부탁을 들어주었다.


다음 날부터 지게를 지고 풀을 베어 날랐다. 한 번은 썰어 먹이고, 또 한 번은 바닥에 깔고, 나머지는 말려서 모아 두었다. 서툰 낫질에 손가락을 베기 일쑤였다. 반창고가 귀해 소매 끝을 찢어 묶었는데, 아물기 전에 자꾸 베여 긴팔 남방이 금세 짧아졌다.


그날도 지게를 지고 가는 중이었다. 산어귀를 지나 숲길로 들어서는데 내가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이 수업을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가빴다. 


'이 몰골로 지나야 하나? 아니면 십여 리나 되는 다른 길로 돌아갈까?'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걸음을 옮기다 살짝 고개 든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이내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간신히 산등성이를 넘었다. 힘이 빠져 지게를 내려놓는데 눈물이 났다.

 

그 후 풀을 나르고 남는 시간에 열심히 공부했다. 밤을 지새우며 책을 보다 앞머리가 등잔불에 호르르 타기도 했다.


추석 무렵 송아지 티 벗은 소를 우시장에 팔았다. 털은 윤나고 살은 통통히 올라 송아지 두 마리 값하고도 교복 한 벌 값을 받았다. 외삼촌은 한 마리 값만 가져가며 나를 칭찬해 주었다. 


송아지를 팔아 고등학교에 다니려 했는데 입학시험에 일등으로 합격한 덕에 3년간 학비를 면제받았다. 그 뒤 교육 대학까지 마쳐 40년 교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박정자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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