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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 애들이 '너희 할아버지 오셨다.'라고 했어요

조회수 2018. 8. 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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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 않았니? 그래서 뭐라고 했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새치가 났다.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이 '아저씨'라 했고, 대학 때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연애할 때는 염색을 하다 결혼 뒤에는 하지 않았다. 하룻밤 지나자 반백이 된 할아버지가 누워 있으니 아내는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하루는 모시옷을 입고 아내와 시장에 갔는데 한 아주머니가 내게 말했다. “할아버지, 길 좀 비켜 주세요.” 아내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또 하루는 아는 목사님을 만나러 갔다가 사모님의 계속된 권유에 염색을 하고 말았다. 정말 젊어 보였다. 누구보다 아내가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잠깐이었다. 


다음 날부터 머리가 가려웠고, 얼굴은 부어올랐다. 이틀 후에는 베갯잇이 진물 범벅이 되었다. 아내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을 젊게 만들려다가 빨리 보낼 뻔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큰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아내와 학부모 참관 수업에 갔다 왔는데 아이가 말했다. “아빠, 오늘 애들이 '너희 할아버지 오셨다.'라고 했어요.” 


“부끄럽지 않았니? 그래서 뭐라고 했어?” 

“당연히 할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빠라고 했지요. 부끄럽기는 왜 부끄러워요. 우리 아빠잖아요.” 그 어느 때보다 충격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검은 머리 뽑아 아예 흰머리로 만드세요!” 하고 울부짖었다. 


하지만 그 뒤로 흰머리는 더 늘었다. 그럼에도 마음은 편안하다. “아빠, 그냥 뽑지 마세요. 나는 아빠 흰머리가 더 좋아요.”라는 막둥이의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자유를 느끼기에. 이제 흰머리는 내 일부가 아닐까.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동수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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