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병장님 덕분에 아내가 살았심더!"

조회수 2018. 7. 2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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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깨달은 교훈이 있다. 마음만 있으면 어떻게든 상대를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50년 전, 나는 왜관에서 카투사로 근무했다. 당시 인사계에 있었는데 하루는 서른세 살 신병이 들어왔다.
호적이 잘못돼 10년 이상 늦게 입대했단다. 


키가 작고 몸은 통통하고 머리의 반은 벗겨진 데다 피부가 까매서 꼭 영감처럼 보였다. 김 일병은 주말마다 내게 외박증을 신청했다. 결혼해 자녀들도 있어서 집에 꼭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그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집에 위급한 일이 생겼다며 빨리 외출증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의 아내가 셋째 아이를 낳다가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생명이 위독하단다. 부모님이 돌보면 되지 않느냐고 하니 두 분 모두 융통성이 없어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이었다.


외출증을 만들어 주는 건 간단했지만 김 일병이 당장 집에 간다 해도 딱히 해결책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평소 친분이 있는 미군 군목에게 도움을 청했다.


톰슨이라는 흑인 대위에게 달려가 김 일병의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는 즉시 백인 군종 사병에게 김 일병을 태우고 그의 집으로 가라고 했다. 그들은 왜관에서 네 시간 걸려 밤늦게 집에 도착해 산모와 아이를 데리고 와, 미군 의무실에 입원시켰다.


결국 4일 만에 산모가 완쾌되었고 우리는 그의 가족을 고령 집까지 편안하게 데려다주었다. 그 후 김 일병은 나를 만날 때마다 “유 병장님 덕분에 아내가 살았심더!” 하며 고마워했다.


이때 깨달은 교훈이 있다. 마음만 있으면 어떻게든 상대를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50년이 지났지만 이 일은 여전히 생생한 추억으로 남았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유성은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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