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집 정말 창피해."

조회수 2018. 3. 2. 11: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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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엄마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의 집은 가게 하나 없는 농촌에 꼭 숨어 있었다. 소녀가 학교에 가려면 한 시간 동안 이슬에 젖은 기찻길을 걸어가야 했다. 작은 물방울들이 풀잎에 달랑달랑 붙어 있다가 신발 끈 틈으로 들어와 새 양말을 축축하게 만들 때면 소녀는 울고 싶었다. 


하루는 친구들이 “내일은 지혜네서 놀자!”라고 말했다. 순간 소녀는 허름한 집의 재래식 화장실을 떠올렸다.

‘친구들이 화장실 가고 싶어 하면 어떡하지? 쾌쾌한 시골 냄새를 좋아할까? 잡풀이 무성한 기찻길을 친구들이 한 시간이나 걸을 수 있을까?’


소녀는 걱정된 마음에 고개를 떨구며 집으로 향했다. 그때 저만치서 “지혜야!” 하고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엄마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우리 집 정말 창피해.”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내일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온댔는데……. 우리 집은 화장실 냄새도 나고, 집에 오는 길에 풀이 많아서 친구들 신발도 더러워질 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 집은 더럽고 냄새난다고 놀릴거고, 다시는 놀러 오지 않을 거야.”


엄마는 눈물을 닦아 주며 소녀의 집은 특별하고, 신기한 것들이 숨어 있다고 말해 주었다. 소녀는 몰랐다.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엄마는 호미를 꺼내 들고는 집에서부터 철길이 끊기는 곳까지 억센 풀들의 뿌리를 쪼아 댔다. 풀들을 한 줌씩 거둬 내는 엄마의 손에 쌉싸래한 풀 향기가 진동했다. 엄마가 철길을 따라쪼그려 앉은 채로 계속 풀을 매며 말했다.


“우리 딸이 웃을 수 있다면 이런 고생은 사서도 할수 있어. 이 정도면 내일 친구들 오는 데 문제없겠지?”

풀 한 포기 없는 기찻길을 보니 학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친구들 모두 기찻길을 처음 걸어 보겠지……. 다들 신기해하며 소녀의 집으로 갈 것이었다.


엄마는 소녀가 학교에 간 동안, 옆집에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옆집에는 배나무, 감나무, 벚나무와 그네가 있었다. 소녀는 평소 그네를 타고 싶어도 탈 수 없었다. 녹슨 그네가 위험하니 절대 타선 안 된다는 엄마의 주의 때문이었다. 


엄마는 그네에 기름칠하고 안전하게 끈을 다시 동여맸다. 그리고 분홍색으로 예쁘게 페인트칠했다.

소녀의 친구들은 그네를 보고 탄성을 내질렀다.  


“야! 멋지다. 이렇게 예쁜 그네가 있는 집에 살다니!”

친구들은 그네를 타며 행복해했다. 딸의 함박웃음에 엄마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 미소는 봄날, 한 잎 두 잎씩 피어오르는 벚꽃처럼 아름다웠다. 


비록 근사한 집은 아니지만 좋은 추억을 주고 싶었던 엄마. 집 안에 숨어 있는 보물을 하나씩 찾아 딸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그 순간 벚나무 가지에 맺힌 꽃봉오리를 활짝 피게 했다.


지금 나는 소녀의 추억이 담긴 집에 와 있다. 엄마의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느끼는 사랑이 따스한 엄마 품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닫는다. 


벚꽃 피는 계절이 오면 행복하다. 저만치서 벚꽃 향기가 그윽하게 바람을 타고 지나가기만 해도 열 살 때 엄마가 선물해 준 우리 집 보물들이 떠오른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문지혜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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