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여행 가자."
“와, 이제 괜찮대. 집에 가서 파티하자!”
작년 새해가 밝았을 때, 둘째 딸은 급성 백혈병 치료를 시작했다. 고통스러웠지만 한편으론 감사했다. 병명도 모르는 불치병이 아니라서, 허망하게 떠나보내지 않아서, 무엇보다 딸이 잘 견뎌 줘서 고마웠다.
1년이 지나 이젠 고용량 항암을 끝내고 재발 방지 치료를 하기로 했다.
“우리 딸, 하고 싶은 거 있어? 엄마가 들어줄게.”
“엄마, 여행 가자.”
“그럴까? 가족 여행 가면 참 좋겠다.”
“아니, 단둘이서만.”
나는 선뜻 그러겠다고 하지 못했다. 그동안 나머지 가족도 힘들었을 것이다. 둘째가 입원한 뒤로 나와 떨어져 있길 거부해 남편과 교대 한번 못했다.
엄마의 부재를 잘 참아 낸 다른 두 아이에게도 상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둘만의 여행이라…….
“그래 가자. 근데 언니하고 동생한텐 비밀로 하자. 우리끼리 가면 속상할 거야.”
그렇게 1박 2일 입원을 가장한 여행을 떠났다. 남해의 겨울바람에선 봄 내음이 났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펜션에 도착하니 다른 가족이 생각나 아쉬웠다.
“가 보고 싶은 곳 있어?”
“아니! 난 여기 있을래. 엄마만 다녀와.”
“싫어. 재미없게.”
“혼자 가면 재미없어? 옛날엔 아빠한테 휴가 달라고 했잖아. 혼자 여행 가고 싶다고. 집도 우리도 다 벗어나서.”
“뭐? 그래서 단둘이 오자고 한 거야?”
“응, 엄마 휴가 주려고. 그동안 병원에서 힘들었잖아. 엄마가 아플 때도 내 곁에 있으라고 한 거 미안해.”
딸도 나도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나는 고생한 딸을 꼭 안아 주었다. 다음엔 우리 가족 모두 하하 호호 웃는 여행을 할 것 같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송혜정 님의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