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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통역사입니다

조회수 2017. 11. 29.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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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소통하고 행복해진다면 나는 최고의 통역사 아닐까?

이미 알았다. 시험 치를 때부터, 아니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학원에서 공부할 때부터……. 시험에 떨어지리라는 것을.


나는 영어를 참 못하면서도 통역사를 꿈꿨다. 

'머리가 그리 나쁜 것 같지 않은데 영어는 어쩜 이렇게 안 될까?' '미국에 다녀오지 않아서 그럴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다 결국 몇 년간 직장 생활하며 모은 돈을 들고 스물여덟 살에 어학연수 차 미국에 갔다. 반년은 열심히 하고 반년은 놀았다. 


돌아와서는 통역 공부를 시작했다. 목표는 통역 대학원! 미국 뉴스와 신문은 어느 정도 이해했다. 외국인과의 의사소통도 문제없었다. 


그런데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통역은 죽어도 안됐다. 나를 쳐다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오기로 공부했다. 그러나 통역 대학원 시험에 똑, 떨어졌다.


다시 일하며 영어를 손에서 놓은 지 일 년도 넘은 어느 날, 어학연수 중 만난 친구와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한국 출신 입양아로 내가 미국에 갔던 그해 한국으로 와서 친부모를 찾았다. 


방학마다 친부모를 만나며 한국어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어처럼 어려운 말을 어찌 짧은 시간에 습득하리요. 가끔 아버지와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해하면서도 “아빠 목소리 들을 때마다 우리 사이에 어떤 연결 고리가 느껴져서 행복해. 정말 마법 같은 일이야!”라며 설레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부탁이 있단다.

“학교 기숙사에 살아서 사촌 동생이 미국에 온다 해도 제 방에 머물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자주 찾아가서 챙겨 줄 테니 걱정 마세요!”라는 말을 아버지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자신의 한국어 실력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나는 아버님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인사드리고 친구 말을 전했다. 마치 딸처럼 반가워하는 아버님은 그간 하고 싶던 말을 쏟아 냈다.


“잘 지낸대? 아픈 데 없대? 한국에 언제 온대? 보고 싶어 죽겠다고 전해 줘요! 건강 조심하라고.” 

순간 가슴이 슬며시 아려 왔다.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아버지와 딸 사이인데 28년의 세월이 그들을 언어로 갈라놓았다. 물론 마음으로 통한다지만 부녀 사이에 간단한 말조차 속 시원하게 전하지 못하니 오죽 답답할까? 그런데도 자주 전화해 더듬더듬 안부를 묻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섰다. 친구와는 이메일로, 아버님과는 전화로 이야기를 전해 주며 답답한 속 을 뻥 뚫어 줬다. 아버님과 친구가 무척 고마워했지만, 정작 고마운 건 나였다.


그 뒤 나도 고향에 있는 아버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원 없이 했으니까. 

내가 연락을 자주 안 해 섭섭해 하던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내 오랜 꿈도 이뤘다. 국제 무대에서 멋지게 통역하는 사람만이 통역사는 아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 줄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소통하고 행복해진다면 나는 최고의 통역사 아닐까? 


나는 요즘도 친구 이메일을 아버님에게 온전히 전하기 위해 영어 사전을 뒤적이며 의미를 곱씹는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김정민 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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