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용으로 끌려간 아빠를 찾으러 밀항선을 탔다

조회수 2017. 10. 28.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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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엄마는 남편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주소 한 장 달랑 들고 일본 밀항선을 탔다.

엄마는 열일곱 살에 아빠를 만났다. 그런데 결혼한 지 몇 달 안 돼 아빠는 일본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다. 홀로 남은 엄마는 시부모와 시누이들 틈에서 고되게 시집살이했다.


어느 날, 엄마는 남편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주소 한 장 달랑 들고 일본 밀항선을 탔다. 엄마는 학교 문턱에 가 본 적도 없었다. 한글은 독학으로 깨우쳐 조금 알았지만 일본어는 전혀 몰랐다. 그럼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국땅에 건너간 것이었다.


엄마는 우여곡절 끝에 아빠가 일하는 벌목 현장에 도착했다. 그 많은 사람 중 한국에서 아내가 찾아온 사람이 누가 또 있었을까. 엄마의 용기와 사랑에 감격한 일본 감독관은 손수 신혼살림을 차려 주었다. 그곳에서 큰오빠가 태어났다.


시간이 흘러 오빠가 돌이 되자 해방을 맞이했고 부모님도 귀국을 서둘렀다. 하지만 표를 구할 수 없어 밀항선을 타야 했는데 오빠가 울어 대는 통에 도저히 배를 탈 수 없었다. 긴박했던 순간, 엄마는 비상식량으로 갖고 있던 엿을 부둣가 돌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양식이 귀하던 시절, 엿이 부서져 바닥에 흩어지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엿을 줍기 위해 너도나도 뛰어내렸다. 부모님은 그 틈을 타 큰오빠와 배에 올랐다.


구십 평생 살아온 엄마의 무용담이 좀 많았겠는가?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또 옛날이야기를 하네.”라며 타박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엄마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엄마와 도란도란 옛이야기 나누던 시절이 그립다.


_월간 《좋은생각》에 실린 박삼선 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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