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울 때, 읽으면 좋은 이야기

조회수 2017. 6. 29.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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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짜기에도 그렇게 새봄은 오는 것이다. _본문 中

나는 부산의 허름한 변두리에서 태어났다.


잠시 방황하다 꿈을 품고 열심히 공부해 국립 대학에 들어갔지만, 출발선에서부터 뒤처진 내가 앞서가는 친구들을 따라잡기란 어려웠다.


그 핑계로 일 학년 겨울 방학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잠만 잤다. 그만큼 할머니와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사이가 가까워지진 않았다. 할머니의 말수가 워낙 적은 데다 귀까지 어두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마음만 먹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그즈음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를 잊을 수 없다.


어느 날, 나는 뜨끈한 할머니방에 배를 깔고 누워서 게임하다 깜빡 잠들었다.


“그때는 우리가 거창 살 때 아니가.”

잠시 들린 넷째 이모에게 할머니가 말했다.

“요새는 무슨 환자라 캐도, 그때는 다 문디라고 안 불렀나. 딱 보니까 찬밥이나 얻으러 왔지 싶어 옥이를 부를라 카는데 글쎄 그 사람이 '아주마니 왜 요래 앉아 있습니까?' 이카대. "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 마음 써 주는 게 고마워 그랬제. '입때껏 밥을 못 먹어 그런가배. 묵을 게 없어 그런 건 아니고, 뭣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를 않아서. 우리 영감님 돌아가시고 가시나들은 안즉도 얼라들이라 앞으로 어째 해가 묵고살지 막막해 그렇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옆에 와서 앉으며 하는 말이 ,

'아주마니, 내가 이래 되기 전에는 억수로 잘생겼다 안 캐요, 우리 집안에 내만치 공부 잘하는 사람도 없었고. 맨 첨에 이래 됐을 때는 고마 어디 가서 혼자 죽을라캤지요. '"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할머니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내가 어디로 갔느냐 하면은 저기 전라도에 억수로 깊은 골짜기가 하나 안 있겠소. 딱 이맘때니께 아직도 얼음이 덜 녹았을 때인디, 그냥 거기 바위틈에 누웠지요. 그라고 있으면 굶어 죽든지 아님 뭐 호랭이한테 묵히든지 하니께. 으슬으슬 춥겠다, 자꾸 헛것도 보이고 그대로 있었으면 오래 안 걸려서 죽었을 깁니더.'” 


할머니는 말을 이으며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몇 날 며칠을 잠만 잤소. 나중에는 꿈을 꾸는지 아니면 깜빡 죽었다 깨어난 건지, 낮에는 축축하고 밤에는 추워 애초에 죽으려 한 게 더 후회되는 기라. 글쎄 그 깊은 골짜기에도 봄은 오니까 따땃한 햇볕이 젖은 돌도 말리고 얼음도 깨 버리는 기라.

하기사그래 봤자 뭐하는교. 이게 내 팔잔 갑다 생각했심니더. 이렇게 좋은 때 세상 떠나는 갑다 했지요. 그카다 인제 진짜 마지막이다 하고 눈을 감는데, 누가 저 골짜기 끝에서 자꾸 소리를 지르는 깁니더. 뭐라 카는지는 모르겠고, 목청이 어찌나 큰지 정신이 번쩍 들었지예.'” 


나는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아이고, 야야, 할매 숨차다.”

할머니는 그러면서 매듭을 지었다. 


“삼 캐러 다니는 심마니가 숨넘어가기전에 그 사람을 찾아 가지고 들쳐 업고 내려왔디여.

'그 심마니가 카는 말이 지는 생전이 골짜기까지 내려오는 일이 없대요. 근데 어째 꼭 그날은 자꾸만 발길이 이리로 오더라고. 그래서 산삼을 캐려나 하고 내려온 건데, 거기 제가 엎어진 게 보이더라는 깁니더. 거참, 희한하제, 아무도 못 찾을 깊은 데 숨었을 끼구만은. 그라면서 내는 그 깊은 골짜기에 딱 사흘만 있다가 내려올 팔자라 카는교. 그러니까 아주마니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예. 어찌해도 살길이 있을 끼구만은.'

그러더니 나중에 옥이가 주는 찬밥을 한 사발 받고 가 버렸지.”


나는 따뜻한 이불 밑에서 그가 누웠을 깊은 골짜기를 생각했다. 젖은 옷이 바삭바삭 마르고, 땅이 녹으며 숨을 쉰다.


할머니는 말없이 비죽 튀어나온 실밥을 끊어 냈다.

“야야.” 하고 나를 부르더니 “니 봄 이불 꼬매 놨다. 인자 이거 덮고 자라.” 했다.

“밤에는 아직도 추운데요?”

할머니는 뭐라고 알아들은 건지 자꾸 손만 내저었다.


나는 침대에서 솜이불을 걷어 내고 봄 이불을 깔았다. 그러면서 어쩌면 모든 변화는 계절이 돌아오는 것처럼 다 제때에 맞춰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 자신이 초라하고 부끄러울 때마다 눈을 감고, 부르지 않아도 오는 봄을 떠올린다. 우리의 지친 몸 아래서 천천히 녹는 땅과 돋아나는 새싹을 상상한다.


깊은 골짜기에도 그렇게 새봄은 오는 것이다.


_박운선 좋은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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