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층에 사는 그 아이

조회수 2017. 6. 15.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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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푸린 얼굴을 봤는지 아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20층에 사는 선아예요."

이사 온 다음 날 아침, 회사가 멀어 급히 나가니 엘리베이터가 20층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한참 뒤 문이 열리고 목발 짚은 소녀와 어머니인 듯한 사람이 보였다.

'쟤 때문에 늦은 거야? 가뜩이나 바쁜데…….' 


찌푸린 얼굴을 봤는지 아이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20층에 사는 선아예요. 많이 기다리셨죠? 서둘러도 잘 안 되네요.” 

괜찮다며 얼버무렸으나 잠시나마 짜증 낸 게 미안했다.


그해 여름, 구조 조정을 당하고 실의에 빠졌다. 간만에 집을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니 선아 혼자였다.

“어라, 어머니랑 같이 안 나왔네?”

“아침 운동은 혼자 해요. 넘어지지 않고도 다닐 수 있거든요.” 

나는 선아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그 후로도 아침마다 함께 동네를 돌았다.


뇌성 마비를 앓던 선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의사는 앞으로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으나 선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재활 훈련을 시켰다. 선아는 행복한 표정으로 내년엔 학교 갈 수 있을 거라 했다.


내가 해고당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몸 상태가 나빠졌을 땐 누워 있고만 싶었어요. 그랬다면 지금처럼 걷기 어려웠을 거예요.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누워만 있으면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계속 넘어져도 운동했어요. 아저씨도 다시 회사 다닐 거죠?”


나는 그만 울 뻔했다. 열세 살 아이가 세상 헤쳐 나가는 법을 나보다 잘 알았다.


얼마 후 나는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다. 이젠 20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오래 멈춰 서는 일은 드물다. 선아는 한쪽에만 목발을 짚고 학교에 다닌다. 출근길,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내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윙크도 하면서.


*이호권 좋은님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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