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비싼 골판지, '닌텐도 라보' (feat. 젠장)

조회수 2018. 4. 26. 09: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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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 만들다가 골병 들지도..

닌텐도 라보가 지난 20일 일본과 북미에 출시됐다. 국내에는 정식 발매 되지 않았지만, 한우리 같은 곳이라면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해봤지만… 통화 중이다. 몇 시간 정도 지난 뒤 다시 걸어봤지만 여전하다. 

검색을 해봤다. "아마 <갓 오브 워>의 PS4 PRO 리미티드 에디션 관련 문의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 흠… 그럴 듯하다. 이유야 어쨌건, 통화가 안 되니 별 수 있나. 발로 뛰는 수밖에. 월요일 오후 다소 이른 시간, 비 오는 거리를 뚫고 국제전자센터로 향했다.

"혹시 닌텐도 라보 물량이 있나요?"라는 물음. '혹시'라는 표현을 쓴 게 무색할 만큼 당연하다는듯, "물론이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로보 키트는 10만3천 원, 버라이어티 키트는 9만3천 원. 발매 정가에 물 건너온 프리미엄 붙은 가격 치고 그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냉큼 질렀다. (어차피 내 돈 아니니까)

▲ 한우리에서 닌텐도 라보를 만난 그 순간. 육체와 멘탈의 고난이 시작됐다.
▲ 버라이어티 키트. 보기엔 별 거 아닌 듯했지만…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테이블에 닌텐도 라보를 올려놓았다. 대체 골판지로 만들었다는 녀석이 노트북에 책 한 권까지 넣어 다니는 가방보다 무거운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지금부터 전격 해부를 시작한다.

닌텐도 라보가 대체 뭣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터. 기본형은 일종의 페이퍼 토이라고 볼 수 있다. 골판지 재질이라 두툼하고 제법 견고한 편. 닌텐도 스위치 본체 및 컨트롤러와 결합할 수 있다는 점이 포인트인데, 단순히 결합만 하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 연동도 가능하다. 원리를 모르고 보면 엄청, 원리를 알고 봐도 꽤 신기하다.

▲ 일명 '토이콘(Toy-Con)'이라 부른다고.
▲ 꺼내놓고 보니 골판지가 한가득. 종이라고 얕볼 게 아니다.

보통 만들기 키트라고 하면 책처럼 생긴 매뉴얼이 동봉돼 있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라보는 철저하게 닌텐도 스위치를 위해 출시된 녀석. 조립 가이드와 플레이 방법이 닌텐도 스위치 전용 소프트웨어로 제공된다. 

즉, 닌텐도 스위치가 없으면 조립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야기다. 인터넷 찾아보면 조립법을 찾을 수야 있을 테니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완성해봐야 스위치가 없으면 그냥 (드럽게 비싼) 종이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하긴, 애당초 닌텐도 스위치 없는 사람이 이 물건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부터 희박하겠지만.

▲ 이 분이 바로 각 토이콘의 조립법, 갖고 노는 법까지 꾹꾹 눌러담은 알찬(?) 소프트웨어 되시겠다.
▲ 전체 가격 중 3분의 2는 이 소프트웨어가 차지할듯.

사실 본인은 닌텐도 스위치와 아이스 브레이킹조차 하지 않은 데면데면한 사이다. 그래서 제일 쉬운 조이콘 홀더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절대로 어려운 것부터 했다가 삽질할 거 같아서 그러는 게 아니다.

소프트웨어 가이드는 무척 심플한 UI로 돼 있다. 화면의 Forward 버튼과 Back 버튼으로 조작할 수 있는 동영상 방식. 물론 파란색 조이콘에 있는 방향키 버튼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버튼을 계속 누르고 있어야 한다는 건 살짝 열받는 부분. 자동 재생 기능이 어디 있을 법도 한데… 찾지는 못했다.

▲ 사실 페이퍼 토이 좀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가이드 없이도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을듯
▲ '마이너스의 손' 디버프가 달려 있긴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 마, 너 어디 가냐? 기껏 만들어놨더니.

생각보다 쉽다 싶자 콧대가 좀 높아졌다. 곧바로 두 번째, RC카 토이콘 만들기에 착수했다.

제작 난이도는 최하급. 조이콘 홀더와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만 여기서부터는 '토이콘'으로서 진가(?)가 발휘된다. 자꾸 RC카라고 부르려니 왠지 RC카한테 죄짓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완성된 RC카의 양옆에 스위치 조이콘을 부착하면 준비 완료! 보기보다 딱 밀착되지는 않지만 신기하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 만드는 과정은 그다지 특별할 게 없으니 생략. 근데 이게 RC카…?

RC카 플레이를 실행시키자 본체 화면에 조작 버튼이 등장한다. 양손으로 붙잡고 조작하면 조이콘에 진동이 발생하고, 그걸 동력으로 삼아 움직인다. 직접 조작하는 보통의 방법 외에 RC카 토이콘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두 개의 RC카로 밀어내기 싸움을 하는 방식. 버라이어티 키트 하나에 RC카 두 개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들어있으니 이를 활용하면 된다. 한 개는 여분용으로 넣어둔 건지 디자인이 없는 민둥 골판지라서… 보기에 좀 심심하다면 그림을 그리든 스티커를 붙이든 하면 되겠다. (닌텐도 스위치가 한 대 더 있어야 한다는 건 함정)

두 번째는 자동 운행 모드다. 본체 화면에서 'Auto' 모드를 켜놓고 손이든 물건이든 갖다 대면 졸졸졸 따라온다. 빨간색 조이콘 앞부분에 있는 카메라에 뭔가가 인식되면 그걸 따라가는 구조인 듯하다. (하단 영상 참조)

본래는 지폐를 가지고 RC카를 유인해서 자본주의의 노예 콘셉트를 연출해볼까 했지만… 유치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해서 관뒀다. 마침 지갑에 현금이 없기도 했고. (아 잠깐만, 눈물 좀 닦고…)

▲ 본체 한 대에 조이콘 두 세트 연결시키는 데 약 한 시간쯤 소모한듯…

별 거 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점심 시간. 배 든든히 채우고 대망의 3차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라보 키트 중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피아노 토이콘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것은 그 날의 가장 큰 실수(?)가 됐다.

식후 커피 한 잔 하고 오겠다 했더니, 모 동료 기자가 "그동안 만들어보고 있겠다"라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GG를 선언했고, 사진 몇 장만을 남긴 채 떠나(?)갔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어제를 회고하다 보니 그의 선택은 무척 현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 견적 내보니 '아,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게지…

몸으로 체득한 깨달음을 전하자면… 손 가는 부분이 무척 많지만 사람 수 늘어난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 숙련자 한두 명이라면 모를까, 초심자는 늘어나는 머릿수만큼 딴짓하는 시간이 비례해서 늘어난다. 페이퍼 토이 경험자라든가 프라모델 조립 경험자라면 어떻게든 도움이 될 거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

하지만… 숙련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곤 없는 사무실에서 패기만을 앞세웠던 작업. 시작은 한 사람이었으나 어느덧 세 사람이 달라붙었고, 중간중간 손놓고 쉬거나 멍 때리거나 잡담하기를 거듭하며 근 세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 어쩌다 보니 한 사람 손만 나왔지만… 사진 찍을 때 빼고는 다들 (나름) 열심히 했다.
▲ 여긴 누구… 나는 어디…?

"휘유~ 끝난 건가…"

몇 시간에 걸친 손+멘탈 노동 끝에 완성된 피아노는 제법 그럴 듯한 모양새였다. 건반이 삐뚤빼뚤하긴 했지만… 원래 영상이나 그림으로 보는 건 현실과 다른 법이니 어쩔 수 없다. 어쨌거나 연주만 잘 되면 되는 거 아니겠나.

피아노 토이콘의 경우 라보 버라이어티 키트에서 가장 정교한(?)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저기 뭔가를 꽂을 수 있는 슬롯도 많고, 건반이 몇 개 안 된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몸통 좌측에 옥타브를 조절할 수 있는 레버도 달려 있다. 물론 연주할 줄 모르면 무쓸모지만…

▲ 착한 사람 눈에는 건반이 반듯해 보이…기는 개뿔. 원래 영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 닌텐도 스위치 본체를 장착한 모습.

그야말로 골판지와 함께 보낸 하루의 끝. 

버라이어티 키트에는 이외에도 세 가지 토이콘이 더 들어있다. 그것까지 다 하려다간 조립에만 이틀 이상 걸릴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련다. 이미 만들어놓은 것들만 해도 갖고 놀 여지가 충분한 데다가, 아직 밝혀내지 못한 기능이라든가 콘텐츠가 많기도 하고.

▲ 이외에 집, 레이싱 머신, 낚시 게임 등을 만들 수 있다. (우측 하단에 가방은 다른 제품인듯)

애당초 라보는 닌텐도가 '게이밍 소프트웨어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개발한 콘텐츠. 비슷한, 혹은 좀 더 복잡한 원리를 활용한다면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 그냥 만드는 과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쪼끔' 더 까다로웠던 탓에 심술스럽게 글을 썼을 뿐.

한 켠에 놓아둔 토이콘 완성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금껏 살면서 만져본 골판지 중 가장 몸값(?)이 비싼 골판지였다고.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사는 동안에도 이보다 값비싼 골판지를 만져볼 일은… 없지 않을까.

▲ 같은 골판지지만… 몸값이 다르다. (feat. "더러운 세상"!)

닌텐도 라보 토이콘 제작 후기 정리

장점


꼼지락거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만드는 동안만)

일단 신기하다. (한… 삼십 분 정도?)

갖고 놀다 보면 의외로 재밌는 게 많다. (대략… 한 시간 정도?)

▲ 키덜트 스탯이 충분하다면 며칠 동안 놀거리는 구석구석 많다.

단점


조립 중 스티커 잘못 붙이면… 그냥 붙인대로 써야 함.

부피가 꽤 있고 종류가 많아서 보관하기가 은근히 불편.

여분의 부품이 없기 때문에 하나라도 망가지면 Good Bye.

▲ 상대는 무려 골판지다. 붙였다 떼는 순간 대참사가 벌어진다.

총평


애들을 위한 장난감 같긴 하지만 애들은 절대 못 만들 것 같다.

특히 피아노는 만들다 보면 "언제 끝나?"라는 아이의 질문을 수십 번쯤 듣기에 적절하다.

일정 확률로 완성하기 전에 애들이 흥미를 잃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p.s. 아빠, 엄마, 삼촌, 고모, 이모 노릇하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 보호자 동반 6세, 혼자서는 10세부터… 라고 하는데, 글쎄…
▲ 에휴, 이 애증의 골판지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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