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PNN

<에코 라이트>, "꿈속에서 쉬고 온 기분이었어"

엔투스튜디오의 시범작, VR 콘텐츠에 대한 철학을 보다

20,182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삼성동 포스코사거리 안쪽 블록. 약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머물렀던, 이제는 추억 몇 조각 정도가 겨우 남아있는 동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갓 칠한 페인트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있는 사무실로 들어섰다.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꿈이 싹을 틔우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읽어냈다고 하면 너무 과하게 몰입한 걸까.

나름의 근거는 있다. 새 시작을 준비하며 몸풀기처럼 만들었던 <에코 라이트>(Echo Light)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본인은 겸손하게 '뒷걸음질 치다가 잡은 격'이라 했지만, 그렇다 해도 적지 않은 반향을 얻었다는 건 팀 전체의 분위기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한 법.

엔투스튜디오 출범 후 테스트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에코 라이트>는 냉정하게 말해 기존의 ‘게임’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콘텐츠는 아니다. 물론 기준을 어디에 매기느냐에 따라 게임으로 볼 수 있기도 하다. 



비유하자면… 콘솔 게임 <이코>(ICO)나 <저니>(Journey), 모바일 게임 <모뉴먼트 밸리>와 비슷한 부류의 감성을 담았다. 감성이라는 건 몹시 주관적이라 사람마다 느끼는 바는 다르겠지만.

<에코 라이트>는 지난 9월 8일부터 10월 23일까지 두 달여에 걸쳐 열렸던 2017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에 출전했다. 



엔투스튜디오의 부스는 제 1관에 위치했었는데, <에코 라이트> 덕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한다. 중앙일보에서도 취재를 다녀갔고, 비엔날레 행사를 소개할 당시 에코 라이트 이미지를 받아서 상단에 배치했다고.

▲ 디자인 비엔날레 당시 에코 라이트 부스 모습.

출처이미지 제공: 엔투스튜디오

▲ 오우진 대표가 직접 언급한 작품 <이코>.

“<에코 라이트>는 처음 팀을 세팅하는 동안 다섯 명이서 만든 겁니다. 두 달 하고도 보름 정도 걸린 것 같네요.  


철저히 개인적인 주관, 특히 제 주관이 많이 들어갔고요(웃음). 상업적이지 않은 콘텐츠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에코 라이트>의 플레이는 단순하다. HMD를 통해 보이는 촉촉함이 물씬 느껴지는 배경을 감상하며, 출력되는 메시지를 따라 행동을 취하면 된다. 방울을 건드려 보거나 해파리를 잡아 던지거나(?) 그냥 멍하니 바라보는 등 간단한 것들이다. 

집중력을 요하는 것도, 인간 한계 돌파를 요구하는 것도, 시간에 쫓기는 것도 아니다. 잘 못해도 게임 오버가 된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저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고, 몽환적인 분위기에 취해도 보며 잠깐 ‘쉬는 듯 즐기면’ 그뿐이다.

▲ 해파리…? 니들이 왜 거기서 나와…?

잠깐의 휴식 같았던 체험이 끝났다. 사실 원래는 이게 다였다. 애당초 <에코 라이트>에 흥미가 생겨 찾아온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딸랑 이것만 해보고 "그럼 가보겠습니다"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에코 라이트>를 만들게 된 계기를 듣고 나니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어졌다. VR 콘텐츠를 바라보는 오우진 대표의 관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좋은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개발자들이 그렇듯, 오우진 대표 역시 '콘텐츠로서 게임의 가치'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온 사람이다. 물론 그 고민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과거 그는 영화 <괴물>의 디자인을 맡은 적도 있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하는 디지털드림스튜디오(DDS)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랬던 그가 온라인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이직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만류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 영화 <괴물>에 등장했던 바로 그 괴물.

출처이미지 제공: 엔투스튜디오 오우진 대표

▲ 괴물의 사이즈 디자인을 위한 비교 이미지

출처이미지 제공: 엔투스튜디오 오우진 대표

게임업계로 넘어온 뒤에도 그의 커리어는 꽤나 굵직했다. 리니지가 개발되던 시절에 엔씨소프트에 몸담았었고, 엑스엘게임즈에서 아키에이지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넷이즈에도 잠시 머물렀다가 현재는 엔투스튜디오에서 VR 콘텐츠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

물론, 굵직한 이력이 그 사람 자체를 대변해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게임이 콘텐츠로서 가질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 안에 담아낼 수 있는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오우진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가 걸어온 길에서도 사뭇 깊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모든 콘텐츠에 있어 영화적인 기법을 중시한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라는 점에서 볼 때, '게임 역시 디자인의 영역에 묶일 수 있다'는 것이 오우진 대표의 의견이다. 



과거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디자인을 ‘인간의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한 과정’이라 정의한 바 있다. 그 정의에 따른다면, 게임은 ‘재미’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디자인의 한 갈래라 볼 수 있다.

▲ 올해 2월경 JTBC에서 방영했던 다큐멘터리 <디자인, 사람을 만나다>

에코 라이트가 기대했던 이상으로 주목을 받자, 다방면에서 VR 콘텐츠 관련 제안이 들어왔다. 오 대표가 기억에 남는 것으로 꼽았던 제안은 '시집을 만들자'는 것. 



실제로 이 건을 두고 출판사 관계자와 미팅을 진행하기도 했다고 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텍스트와 함께 적절한 화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VR 시집을 만들자는 거였다.

▲ 이런 느낌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하지만 오우진 대표와 엔투스튜디오가 추구하는 본연의 주제는 아직 '게임'이기에, 방향성이 전혀 다른 콘텐츠를 수용할 여력은 없었다. 



다만 가능성이 있다는 느낌은 있었기에, 추후 좀 더 여력이 된다면 이 부분을 담당할 팀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게 오 대표의 말이다.

“리얼타임 콘텐츠 영역은 게임 분야가 거의 석권하고 있어요. 게임은 플레이(조작)가 기본이니까요.  


하지만 VR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시장이 열렸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왜? 게임은 영화처럼 작품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걸까?



오우진 대표는 "작품성이란 덧씌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작품성을 갖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뭘까. 그가 내린 답은 '메시지'였다. 콘텐츠를 향유하는 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어야만 비로소 작품성을 논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게임을 만든 이가 유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게임에도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소수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걸 해내는 정말 '작품 같은 게임'이 몇 있지 않던가.

▲ 개인적으로 꼽고 싶은 '작품'으로서의 게임. <투 더 문>(위)과 <발리언트 하츠>(아래)

콘텐츠로서 게임은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오우진 대표는 '세계관에 중점을 두고 싶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래서 <에코 라이트> 이후 엔투스튜디오의 정식 데뷔작이 될 프로젝트는 그 무엇보다 '세계관'에 공을 들여가며 제작하는 중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이 게임 등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설정 내용들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지만, 사전적 의미 그대로 콘텐츠 제작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오우진 대표는 '장르'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플레이 타임이 끝난 다음 무엇인가 남는 게임, 그 남은 것이 대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 플레이 타임이 끝난 뒤 무엇인가 남는 게임. 듣는 순간 딱 이 게임이 떠올랐다.

오 대표는 'VR이야말로 스토리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플랫폼이자 디바이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느 콘솔 게임들처럼 하나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고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방식의 콘텐츠가 VR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을 게임으로 내놓고, 그 시작부터 엔딩까지 유저들을 잘 이끌어 간 다음,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그걸 반영해 더 나은, 혹은 새로운 가치를 담은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문화. 듣는 것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공 들인 세계관을 지향하는 개발사. 게임에 메시지를 담아,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만들려는 회사. 엔투스튜디오의 목표는 'VR용 콘텐츠를 가장 잘 만드는 회사'가 되는 것. 임팩트 있는 표현은 빠져 있지만 가장 직설적으로 와 닿는다.

과거에 비해 많이 기술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VR 체험에서 멀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오우진 대표는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인지부조화에 따른 문제"라고 답했다. 즉, VR을 체험하는 사용자가 어떤 움직임을 취했을 때 예상했던 풍경과, 실제 VR을 통해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이것이 멀미를 유발한다는 것.

▲ VR 멀미는 물리적인 게 아닌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출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게임(콘텐츠) 속의 카메라가 곧 플레이어의 눈(시야)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움직임이나 연출이 끼어들면 100% 멀미를 유발하게 되죠.


이건 개발 노하우로 완벽하게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규모 있는 게임사 중 VR 시장 개척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는 곳은 드물다. 



VR이 게임의 영역에 잘 자리잡으려면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건만… 많은 회사들이 대부분 IP를 활용하는 수단으로서 VR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를 통한 사업 확장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집단인 만큼 '투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왜 투자하지 않는가를 묻는다면, 여지없이 '시장성'이라는 놈이 날카롭게 치고 들어온다. 개발자들도 사람인데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위를 둘러보면 배고픔을 참아가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예술가들도 찾을 수 있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생각했을 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는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글로벌 창구가 크게 열려있어요.



잘 만들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판로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VR을 이용한 체험 위주의 콘텐츠 소비는 분명 어느 정도 수요가 있다. 곳곳에 VR 체험 공간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수요의 지속성에 있다. 처음에야 신기한 마음에 한 번쯤 해보는 사람이 꽤 많을지 몰라도 진정으로 이 콘텐츠가 흥미롭고 마음에 들어서 다시 해보려는 사람을 헤아리면 그 규모는 급격하게 줄어든다. 시장성을 논하기에는 너무 미미한 수준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글로벌 전체로 확장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규모의 시장이 된다. 그래서 엔투스튜디오의 항로는 애초부터 글로벌을 향하고 있었다.

▲ 불현듯 떠오르는 어느 여름날의 추억…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지속성이 있는 법인데.

초대형 시장으로 각광받는 중국에서는 최근 고급형 VR 테마파크들이 여럿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최고 사양의 하드웨어와 최고급의 어트랙션 장비를 갖춰 그야말로 '가상현실'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그곳의 운영관계자는 PC에서의 VR이 결국 이와 같은, 혹은 유사한 방향으로 귀결될 거라는 예측을 내놨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롯데월드의 VR 테마파크를 비롯해 다양한 VR 체험공간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국가 차원에서도 VR을 핫한 이슈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국가에서 우선시하는 것은 생활 안전을 비롯한 실용적 콘텐츠들이 대부분이다. 지원을 위한 예산이 꽤 되지만 엔투스튜디오가 정부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 이유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게임으로서의 VR', '콘텐츠로서의 VR'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오우진 대표와의 만난 건 지난 10월 18일. 벌써 한 달 하고도 일주일 정도 지났다. 왜 이제서야 이걸 쓰고 있는지 생각을 해보니, '알듯말듯 어렵다'는 게 적당한 답이지 싶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때도, 다음 날부터 적은 내용을 정리할 때도, 나름대로 귀동냥한 것들을 모두 동원해가며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글을 매듭짓기 위해 애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긴, '철학'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만한 수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자리에서 해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아예 까마득하게 어려웠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또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오기가 생겨 틈틈이 정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

꼭 남기고 싶었던 기록 하나를 겨우 마친다. 한참 많이 늦었지만.

해시태그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