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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펫찌 매거진C ] 나의 고양이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

조회수 2019. 5. 18.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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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P I S O D E


나의 고양이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

-이제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토요일 오전이었다. 아직 잠이 덜 깨고 몽롱한 상태로 치워도 별 수 없는 원룸을 이리 저리 치우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곧 고양이를 임보 하고 계신 분의 연락이 왔다.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고양이는 길었다. 장모의 하얀 터키쉬 앙고라 믹스. 나에게는 너무 공주 같은 모습이었다.

 

한 눈에 반한 아이



유기견, 유기묘 홈페이지 중 가장 큰 곳에 올라온 녀석의 사진을 보고 난 한 순간에 반했다. 화질이 낮은 사진이었지만 왕실의 품격(?)이 느껴졌다, 랄까. 고양이라기보다는 동화 속에 나오는 엘프의 모습. 드디어 그 고양이가 온다니.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의 제일 어린 공주처럼 녀석의 눈빛은 애수에 가득차 있었고 작고 연약했다. 긴 여행과 몹쓸 세상에 많이 지쳐온 몸은 공포와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하얗고 긴 털은 여기저기 잘려 땜빵처럼 보였다. 고양이에게 미안한 표현이지만 쥐 파먹은 모양새였다고나 할까. 임보 하신 분이 녀석의 긴 은둔생활을 증명하듯 엉키고 엉킨 털을 하나하나 일일이 손으로 잘라주셨다

고 했다. 숱이 지나치게 없어 핑크빛 살이 언뜻언뜻 비쳤다. 생각보다 고양이의 몸이 길고 땜빵 난 모습이었다. 이런 낯섦 때문에 0.1초 정도는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 내가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싶었다. 


임보 하신 분은 남자 분이셨는데 길가에 하얀 고양이가 꼭 죽음을 오랫동안 기다리는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그 길가에서는 고양이들의 텃세도 지나치게 셌고 싸움도 많이 나는 곳인데 녀석은 그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하셨다. 죽을 것처럼


 아무 의지가 없는 상태여서 오히려 살아남았다니, 뭔가 이 녀석은 나와 운명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 분은 이미 고양이를 몇 마리 키우고 계신 상태라 녀석을 막내로 들이려고 하셨나보다. 하지만 싸움을 매우 못하는 비폭력주의자인 하얀 고양이는 그 곳에서더 스트레스를 받아하며 남자분도 매우 무서워하여 경계했다.


동물은 사람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이 더 이해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이 드셨나보다. 집에 여자친구 분이 오셨을 때 녀석은 여자친구에게 좀 더 경계를 풀었나 보다. 그래서 녀석은 남자 분의 집에서 여자친구 분의 집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발톱도 깎을 수

 있었고 털도 자를 수 있었던 거다. 게시판에서 녀석에 대한 설명 중 여자 분이 집사를 맡아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이 이해가 되었다. 고양 이는 여자친구 분 무릎에 안겨 있었고 나는 집사로서의 자격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녀석이 남자분과 눈이 마주칠 때는 매우 경계하여 남자 분은 서운한 투로 고양이를 조금 나무라기도 하였다. 이미 녀석과 함께 할 생각이내 마음 깊이 새겨져서 인지 나무라는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방어적인 마음이 샘솟았다.



너는 침대 아래, 나는 침대 위에


두 분이 떠나고 나와 고양이만 남았다. 하루 종일 조용하게 녀석이 적응하도록 기다리는 일만이 이제 내가 할 일이었다. 고맙게도 두 분은 고급 캣 스프레이와 화장실 등 용품을 한 아름 주고 가셨다. 녀석이 쓰던 것이라 많이 도움이 되었다. 이제 녀석과 나 사이에 침묵만이 남아있자 아이는 두리번거리며 낮은 포복 후에 침대 밑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 사이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 지 의문이었지만 고양이는 액체라는 설이 있으니, 녀석만 평온하다면 나는 괜찮았다. 난 주말을 침대 위에서 녀석과 보냈고 침대 서랍을 꺼내 침대 밑에 얼굴을 넣고 녀석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멀어지기만 했지만. 나는 침대 위 녀석은 침대 아래. 같이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다. 고양이는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조심조심 녀석이 나와 화장실을 가려고 할 때 우연히 고개를 돌린 나와 눈이 마주치면 몇초간 일시 정지로 우리 둘은 어색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살살 돌아다니며 침묵의 발자국을 내 공간 곳곳에 남기던 녀석은곧 창문 위에도 올라가고 침대 위에도 올라왔다. 고양이에게​


무신경하려 애쓰며 잠을 청했다. 자다가 잠결에 옆을 보니 하얀 덩어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를 데려온 여자 분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 옆에서 자는 걸 좋아해요.’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뼘의 공간을 두고 내 곁에 자리를 잡고 자는 모습이 확인되자 뭔지 모를 감정이 올라왔다. 감격 비슷한 뭉클함과 애수 어린 눈빛이 주는 작은 아픔이었다. 조금 마음이 아팠다. 아릿아릿했 다. 어떤 감각으로 아는지 몰라도 녀석은 한 동안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 보았고 얼떨결에 내 배 위에 두 앞발을 올린 녀석을 꼭 껴안고 나는 맹세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다시 길거리에서 두려움에 떨고 또 움직 이는 내 발을 무서워하는 네가 겪었을 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다시 겪게 하지 않고 널 지키겠노라고.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 때는 그게 ‘골골송’인 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아이를 ‘라라’라고 이름 지었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아날로그 전화기를 들면 ‘뚜-----’ 하고 소리가 났다. 그 음이 ‘도레미파솔라 시도’의 ‘라’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와 마음이 이어지고 미지의 혹은 미래의 사랑하는 이와 이어지는 주파수는 ‘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녀석과 나를 이어주는 음성은 ‘라라’라고.



풀네임, 오로르 라라 리라


러시아 마지막 공주 같은 녀석의 이름은 오로르 라라 리라. 사실 ‘라라’라는 이름을 짓기 전에 나는 ‘오로르’라는 이름을 준비해두고 있었다. 오로 르는 쇼팽의 연인이기도 했고 또 여러 예술가의 연인이면서도 자기 자신도 예술가였던 조르주 상드의 본명이었다.


조르주는 George로 남자 이름이다. 남장을 하고 다니고 자유연애를 하던 숨겨진 본명. 신비롭기도 한 오로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부르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오로르 라라’라고 이 름 지었다고 하니 고양이 이름으로는 매우 거창하다고. 게다가 라라라는 이름은 여기저기 겹치는 이름이었다. 나는 힘들게 생각했지만 비슷하게또 다른 방식으로 같은 결론에 이른 모양이었다. 그래서 리라라는 이름을 생각해냈지만 이미 아이는 내가 ‘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고 부르면 나를 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녀석의 풀 네임은 ‘오로르 라라 리라’가 되었다. 이를 들은 지인 중 한 명이 고양이가 이름 듣다가 정신이 분열되겠 다고 놀렸다.


하지만 너는 나의 첫 고양이이자, 러시아에서 망명한 공주(근거 없음) 이자, 친구이자, 아기였기 때문에 금방 나와 라라는 친해졌고 누워있는 내몸 위에 올라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내려봤다. 정복했다는 뜻의 미소 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사료도 아주 마구 마구 먹었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힘이 세져서 품안에 안고 있으면 잘도 빠져나갔다. 아이를 임보 하시던 분들은 고양이가 아직 맥아 리가 없어서 계속 안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입이 고급이라 사료 중에 비싼 축에 속하는 사료만 먹는다고 했다. 그래도 먹는 양이 워낙 작으니 많이 부담은 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랑 시간을 보내면서 두 가지 모두 사실이 아닌 셈이 되어 버렸 다. 영락없는 고양이었다. 그리고 애수에 어린 눈빛에도 힘이 점점 들어가 아주 도도한 눈빛을 지닌 왕비가 되어가고 있었고 하얀 털도 풍성해져 분홍빛 살도 털 사이로 비치지 않았다. 내 품에서 잘 빠져나가고 눈빛이 도도해질수록 내 마음은 행복으로 차올랐다.


그리고 들었던 말은 ‘너랑 닮았다.’ 물론 내가 러시아 공주처럼 생겼다는건 아니지만 어느 부분에서 묘하게 고양이와 나는 닮아 있었다. 꼭 사람 얼굴 같은 녀석의 얼굴 탓이기도 했지만 난 녀석과 운명이라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하게 한….​

 

CREDIT​​​​​​

글·사진 최유나 

에디터 윤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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