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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애교 풍년으로 세찬 바람을 막아보자​

조회수 2019. 3. 26. 12:5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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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이불 속 잠결에 고양이의 엉덩이를 토닥이는 건 축복일지니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라고 했던가.추석 명절 동안 또 한 번 부모님이 바라는 나와 현재의 내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씁쓸한 기분으로 서울에 왔다.고양이들은 내가 보고싶었는지 눈물을 보이며 치근치근 애교를 부렸다. 안아 보려 하자 ‘앵~’하며 꼬리를 세우고 저리로 간다.다시 ‘애 앵~’하고 다가와 온몸을 비비적거린다.



성취주의 사회에서도 고양이의 애교 풍년은 수확으로 인정되지 않는 듯하 지만 나는 오늘도 그들에게 위안 받는다.

내 무릎과 옆자리를 차지하려 신경전을 벌이는 삼냥이를 보니 어느새 마 음에 온기가 돈다.

곧 재개발되는 이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이사하는 집이 늘고 있다.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울 수 있는 집을 수중의 돈 으로 구할 수 있을까. 쏟아져 나온 낡은 세간들 사이로 고 양이들을 마주쳤다.

적막한 밤을 찢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나지만 그네들의 사정은 어떤지 걱정스럽다.

이미 고양이의 수는 줄고 있다.

재작년 이맘때쯤 고양이가 세 마리로 늘었다.삼바와 왈츠를 만난 건 대학로 한복판에서였다.그들은 다른 형제자매 들과 함께 있었다. 창고 정리를 하는 할아버지가 내놓은 것 이었다.지나가는 사람들이 아기 고양이들을 구경하고 만 졌다. 한 마리씩 가지고 가서 키워요! 할아버지가 말했다.몹시 퉁명스러운 목소리였다.



한참을 지켜보다 편의점에 가서 캔과 물을 사 왔다.고양이들은 며칠을 굶은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먹어댔다.사람 손을 탄 데다 유동인구도 많아 어미 고양이를 찾기는 어려울 듯했다.나는 ‘임보’라는 오지랖으로 아이들을 구조해 데려왔다.가을 햇살 가득한 버스 안에서 아기 고양이들은 병아리처럼 삐약거리 다 잠이 들었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기본 검사를 했다.

범 백 검사까지는 하지 못했는데,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이런 식으로 함부로 구조에 나서면 안 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하지만 나의 치기가 아니었다면 이 녀석들은 어떻게 됐을까.나는 방을 나눠 작은 모래화장실을 만들어주었다.사료를 불려서 주니 두 눈 가득 눈물을 머금으며 먹고 또 먹는다.정이 들까 봐 사진도 몇 장 안 찍고 너네는 곧 갈 거야, 내 애기들 아니야, 하며 차갑게 대했다.그때 데려온 네 마리 중 두 마리의 입양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왈츠를 입양하기로 한 사람이 문제를 일으켜 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미 입양 간 녀석은 유난히 춥던 날 그만 죽었다고 한다.마음이 싸늘해졌다.작고 따뜻한 아기 고양이를 인계했었는데,

돌아온 녀석의 몸은 너무 차갑다.형제와 떨어져 외로워서 죽은 건 아닐까.만약 왈츠를 예정대로 입양 보냈다 면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남아있던 치즈와 삼바는 처음부터 내 마음을 녹였던 녀석들이다.

 

어깨에 올라와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어깨나 가슴께에서 잠 을 자던 아이들이라 보내고 싶지 않았다.터줏대감인 라라는 아기 고양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한 층 밝아졌다. 라라는 구조될 때부터 지나치게 마른 몸에 기 운이 없었다. 사회성도 없고, 밤에는 악몽을 꾸는 듯 낑낑 거려서 달래주곤 했었다.



당시 송곳니 두 개가 부러져있었 고, 밥을 먹지도 못했다.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경기를 일 으키듯 숨어버렸다.아마 학대를 당했던 모양이다. 그랬던 라라가 아기 고양이들에게 축구도 배우고,자기 품에 파고 드는 녀석들과 한데 뭉쳐 잠이 들다니. 마음이 벅차올랐다.세상의 세찬 바람을 내가 다 막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람이 차가워졌지만 우리는 아주 따뜻했다.

다리 밑에도 배 위에도 늘 고양이들이 있었고, 삼바와 왈츠는 골골송을 밤새 불렀다.

라라도 동생들과 함께 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불어난 식구들을 위해 일거리를 늘려야 했다.

대학원 졸업 을 앞둔 시점이었지만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과외를 하고 돈을 벌고, 악착같이 살기 시작했다.

나는 가능한 한 좋은 집사가 되고 싶었다.일과가 끝나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오면 왈츠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는 듯 한 고양이들을 보면 불쑥불쑥 솟아나는 걱정들이 잠재워 졌다.

고양이의 자는 얼굴은 의연하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결국 어떻게든 된다는 듯 무척 평안해 보인다.

그런 그 들을 보노라면 뾰족뾰족 얼음 같던 내 마음에 포근한 이불 이 덮어졌다. 

온기+온기=속닥속닥

그래도 세 마리는 너무 많다. 일을 늘렸지만 나는 여전히 쪼들리고 있었다.왈츠와 삼바는 형제여서인지 꼭 붙어서 서 로 부둥켜안고 잠을 잤다. 왈츠를 입양보내기로 마음먹은 순간,이 둘을 떼어놓아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결국 시간이 지나 입양을 보내기가 불가능해졌다.그 와중에 애 교 많은 삼바가 내 애정을 독차지하자 라라는 삼바를 미워 하게 됐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라라는 삼바를 경계했다.장 난기 많은 삼바가 종이백의 손잡이를 허리에 끼운 날,

몸집 이 커진 삼바를 보고 라라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냈다. 서먹한 둘 사이를 중재한 건 왈츠였다. 하도 말이 많 아서 “너 입양 보내버린다, 다른 집에 보낼 거야.”하고 투 덜대면 귀신처럼 내 품에 파고들어 안기는 아이도 왈츠였​다

 

아무래도 왈츠는 나의 말을, 아니 마음을 다 꿰뚫고 있 었던 것 같다.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한 번만 봐 주라. 이불 속에서 곤히 잠든 털복숭이들은 이제 세 번째 겨울을 맞는다.

어릴 때와 달리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각자 편한 자리 로 흩어져 잠을 잔다.

하지만 너무 추운 날이면 다들 내 옆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애교를 부린다.



애정표현에 서툰 라 라도 그럴 땐 두 발을 내 배 위에 넌지시 올려놓는다.

나는 라라의 엉덩이를 안아서 배에 척 올린다. 라라의 배가 뜨끈 뜨끈해서 찜질이 따로 없다.

서로의 온기를 더하면 우리는 긴 겨울도, 긴 밤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추운 건 고통이 지만 한편 우리를 뭉치게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고마워. 언 제든 내 곁에 오렴. 속닥속닥.



CREDIT

글 사진 최유나

에디터 이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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