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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의 모험 그리고 귀환

조회수 2019. 3. 15.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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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의 모험

그리고 귀환

아끼던 물감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아끼던 마음에 고이 모셔둔 물감이 굳어버렸던 것이다. 이런 적은 한두 번이 아니다. 카레에 넣으려고 아껴둔 야채칸의 아스파라거스를 버린 적도 있었고, 아껴 입으려던 옷은 유행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끼는 것들은 그러하다. 소중해서 더 미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의 모든 이별을 함께 했던 실비를 아꼈다. 그렇게 실비는 집에서 청춘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실비가 ‘모험’을 떠났다.

심야 라디오의 원고를 맡고 있다. 프로그램은 밤 10시부터 12시 까지 제주도 안에서 송출되는데, 그야말로 섬 속의 라디오다. 어김없이 스튜디오에 있던 그 날 밤, 문자가 왔다. 우리 동네로 한달살이를 온 아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동네 이장님이 보내신 문자였는데, 초등학생 6학년의 아이가 우리 집 근처에서의 차밭에서 반팔을 입고 저녁 6시 해가 지기 직전에 사라졌다고 했다.


도시에서 살 때는 동네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해도 거리감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조그마한 시골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웃 일에 빼꼼 고개를 내다보는 일이 많아졌다. 보통 저녁 8~9 시면 시골 동네의 불은 꺼진다. 그런데 새벽 다섯 시가 넘도록 불을 번쩍이며 소방관이 드나들었고, 마을 주민들은 사라진 아이를 찾으려 숲을 헤맸다. 마음들이 애를 태우며 작은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작년 겨울, 눈이 많이 온 어느 날 실비는 집을 나갔다. 소심한 해적이가 현관문 앞에서 냥냥 대며 짖는 소리에 나가보니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친구가 들어오면서 문이 살짝 열려버렸고, 그 문틈 사이로 실비가 집을 나간 것이었다. 언젠가 실비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어떻게 장례를 치러주어야 할지 생각을 하다 조금 울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와 달리 나는 차분하게 등산화를 갖춰 신고, 무릎까지 온 눈에 젖지 않을 긴 패딩을 입었다. 실비가 좋아하던 간식, 통통 두드리며 실비를 유혹할 캔, 실비가 평소에 쓰던 모래를 챙겨 담담하게 동네와 집 근처를 돌며 실비의 이름을 불렀다.


동네 분들이 실비가 누군지 물었다. 까만 턱시도 고양이라고 말을 하니 알겠다며 보이면 말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평소 읽어둔 고양이 탐정의 글이 생각났다. 보통 집고양이들이 집을 나가면, 집 근처에 머문다고 한다. 주인이 부르는 소리, 익숙한 냄새가 나도 낯선 환경에 겁이 난 고양이는 한 발짝 나서기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제아무리 용감하다지만 내내 집에서 살아온 실비는 어디 데크 밑이나 대나무 숲에 숨어있을 것 같았다. 집주변으로 꼬릿한 모래를 뿌리고, 창문을 열어두고,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자 나보다 더 먼저 동네 친구들이 플래시를 들고 나섰다.간밤의 폭설로 걷기 힘든 밤, 쟁여둔 눈썰매를 타고 친구들은 실비를 부르며 숲을 돌아다녔다. 실비는 자기의 이름을 안다. 2층에 있다가도, ‘실비~’하고 부르면 늘 강아지처럼 내려왔다. 그런 실비의 모습을 아는 친구들이 내내 ‘실비~’를 불러주었다. 실비를 찾는 친구들의 모습에, 차분하게 먹으려던 마음은 흔들리고, 코끝이 찡해졌다.

친구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간 늦은 밤, 종적을 감춘 실비를 생각 하며 창문을 열고 혼잣말로 실비를 불렀다. ‘실비~’


그런데, ‘냥’ 대답이 돌아왔다. 열어둔 창문으로 실비가 ‘냥’ 대답을 했다. 창문 밖을 보니 흰 눈을 밟고 까만 실비가 있었다. 살그 머니 문을 열고 실비가 있던 뒤뜰로 갔다. 조급한 마음을 감추고 실비를 불렀다. ‘실비~’ 목소리에 귀가 두어 차례 쫑긋하더니, 실비가 나를 보았다. 그리곤 그대로 실비는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사라졌다.


밤새 실비가 돌아오지 않는다. 실비는 나를 보고도, 돌아섰다. 집에 두는 게 실비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을 한 걸까? 누군가의 말처럼 고양이는 밖에서 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건가?


실비는 밤새 자신을 찾던 나에게 화답만 해주고 홀연히 숲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사춘기 시절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나의 뒷모습처럼 실비는 사라졌다. 실비가 원하는 삶은 무엇일까? 실비는 길을 잃은 게 아니라, 모험을 떠난 걸까?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하다가 문득 가방을 챙겨 집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무작정 ‘부천’으로 달려갔는데, 정작 부천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한 발짝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자정도 넘어 버스도 끊긴 시간,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는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했고, 그날 밤 아빠는 밤새 고속도 로를 달려 나를 데리러 오셨다. 나는 돌아간다는 것에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 당연히 혼나겠지 마음을 다잡았지만,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아빠는 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화도 내지 않으셨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부모님은 혼낼 정신도 없으셨던 것 같다. 돌아온 내가 너무 다행이다 싶어서, 그게 그냥 고마워서 혼낼 마음 조차 들지 않으셨던 건 아닐까. 실비가 돌아온다면, 나 역시 그럴것 같았다.


그날 밤, 선흘에는 다시금 한차례의 눈이 내렸고, 하얀 눈에 아침은 평소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쌓인 눈을 치우러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오랜만에 웃음을 지었다. 실비가 사라지고 처음 웃었던 것 같다. 쌓인 눈 위로는 실비의 발자국이 찍혀있었는데, 실비의 발자국은 마당을 지나 집옆에 빼곡한 대나무 숲 안까지 이어져있었다.


실내생활로 몸이 불어서 그랬는지 발자국은 푹푹 들어가 있었 고, 눈에서 뒹군 듯한 널찍한 자국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실비의 발자국을 따라서 집 옆의 빼곡한 대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처음 으로 들어가 본 집 옆의 대나무 숲은 의외로 안락했고, 바람도 잘들어오지 않았다. 무겁게 쌓인 눈에 한쪽의 대나무들은 무너지 듯이 누워있었는데, 그 사이로, 실비의 뚠뚠한 몸이 누웠을 법한 푹신한 둥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실비의 흔적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실비는 열린 문틈 사이로 모험을 떠났다.

그리고 그 모험을 당차게 마주하고 있었다.

이 짧은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결국, 실비는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그런 실비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통조림 두 캔을 따주었다. 바깥이 자기 취향에 맞을지는 몰라도, 입맛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던 실비는 그날 밤, 현관문 앞에 놓여진 템테이션을 먹다가 나와 딱 마주쳤 다. 멈칫, 어색한 기류가 흐르던 그때, 해적이가 실비를 원망하듯 냥냥 거렸고, 그 소리를 들은 실비는 여느 딸과 엄마들이 그러하듯 군소리 없이 집으로 들어섰다. 해적이의 울음소리가 정확히 무슨 말인지 는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철없는 엄마를 타박하는 딸의 짜증스러운 푸념 같았다.


돌아온 실비는 통조림 두 캔을 비우고, 난롯가에서 몸을 데우다 종일 잠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바깥의 생활에 고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실비는 두려움보다는 약간의 뿌듯함을 안고 있었다. 이건 마치 모험을 끝내고 돌아온 듯한, 마치 모르도르의 화산 속에 반지를 던진 ‘프로도’의 뿌듯함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실비의 귀환 후, 나는 하네스와 이름표를 주문했다. 몸에 뭘 걸었다 하면 자지러지는 탓에, 또 집안에만 살았던 아이들이기에, 이름표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편안한 파이핑 끈에 가벼운 재질의 이름표를 달고 뒷면에는 전화번호를 앞면에는 큼지막하게 ‘실비’라는 이름을 새겼다. 그리고 이름 밑에는 작게 ‘산책 중입니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이건 실비를 향한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서울 살던 6년 동안, 창문 밖은 허공이었을 그 3층에서 실비는 표현하지 못하는 박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사를 올 때 다짐한 한가지가 있다면 유기묘였던 실비에게 남은 시간은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렸 다면 7살, 많은 나이였다면 10살 남짓이 지금 실비의 나이일 것이다. 하네스를 메고 집 밖을 나서면 아직은 걷기보다는 누워서 뒹구는 시간이 더 많지만, 앞으로 얼만큼의 변화가 우리를 찾아올지 알 수 없겠 지만, 실비가 좀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변화쯤이야 무슨 문제가 될까.


방충망 없이, 차가운 유리 없이 오늘 밤 꿈속에서 실비가 초록 숲 속을 걷길 바라며... 실비의 묘생 2막, 제주에서 펼쳐보세!



CREDIT

글 사진 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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