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우울

조회수 2018. 12. 25.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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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우울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


전세계 인구의 4%가 우울증을 앓는 시대라고 하니, 나의 우울은 그다지 유별난 병은 아니다. 서른이 넘고 보니 우울이 삶의 일부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울로부터 받은 선물도 있다. 타인의 슬픔에 대한 공감 능력, 그리고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이다.


반려동물이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내가 고양이와 살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는 무척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에 길을 걷다가도 눈물을 펑펑 쏟았다. 밤이면 불면증에 시달렸다. 작고 따뜻한 영혼이 내 곁을 지켜준다면 좀 낫지 않을까. 나는 생각했다.


몇 년 뒤 결혼을 하면서 드디어 고양이를 키우게 됐다. 은비가 우리 집에 처음 온 날, 흐린 하늘같던 마음이 활짝 갠 것 같았다. 고양이는 정말이지 우울의 특효약이었다!



무기력한 내 곁에 누운 고양이의 온도


우울증을 앓으면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진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면 나는 바닥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TV를 보거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저 멍하니 누운 채 아래로 아래로 침잠할 뿐이었다.


그러나 은비와 가족이 되고부터는 달라졌다. 나는 굶더라도 은비를 굶길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은비에게 새 물과 사료를 주는 것, 화장실을 청소하고 털을 빗기는 것. 은비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조금씩 움직이게 했다.


어디 그뿐인가. 밤마다 내게 몸을 기댄 채 골골대는 은비를 보노라면, 지친 내 마음은 따뜻하게 데워진 다. (고양이의 ‘퍼링(Purring)’이 사람의 심장, 혈압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은비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일 때마다 나는 조금씩 행복해졌다.


회사 생활에 지칠 때도 녀석은 나를 다잡는다.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 나는 녀석에게 사주고 싶은 장난감 이나 영양제 따위를 떠올린다. 은비에게 세상의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어서, 엄마는 오늘도 힘을 내어 출근을 한다.



부부싸움의 묘약


남편은 내가 은비를 보면 웃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은비의 사랑스러움을 이용(?)하고 있다. 내가 울고 있으면 은비를 데리고 와 “엄마, 슬퍼하지 마세요.”하고 은비 목소리를 흉내내는 식이다. 가끔 말다툼을 하다 언성이 높아지면 남편은 휴대폰을 집어들어 비장의 은비 동영상을 플레이한다. “당신과 내 문제에 우리 딸을 이용하지 마!” 하면서도, 나는 이미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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