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유기견 입양기

조회수 2018. 11. 28. 15:1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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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의 크리스마스

나의 유기견 입양기



01. 반려견 입양은 저도 처음입니다

“바카, 입양됐나요?”



전업주부로 산 지 5년이 넘어가던 무렵, 카톡으로 썸타기란 그야말로 남의 일이었던 나는 카톡 한 줄을 보내놓고 하염없이 ‘1’이 없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세보다 조금 일찍 결혼한 탓에 숱한 친구들의 연애상담을 해주면 서, ‘그깟 1이 없어지고 말고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했던 핀잔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새해맞이 버킷리스트의 일종으로 가볍게 떠올렸던 반려견 입양은, ‘이왕이면 유기견 입양이 좋겠다’는 데 가족의 의견이 모이면서 급물살을 탔다. 여러 사이트를 통해 가슴 아픈 유기견들의 사진과 사연을 살펴보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도 없던 유기견 입양은 사명이 되었다. 몇백 마리가 족히 넘는 개들을 봤고, 그중 내 마음에 꼭 드는 아이가 있었다. 어리고 예쁜 암컷 순종 몰티즈. 그 아이의 이름이 바카였다.



그렇게 많은 아이를 봐놓곤, 한번 마음을 정한 나는 ‘바카가 아니면 다 소용없다’는 심정이 되었다. 이건 마치 “세 상의 반이 남자인데 왜 그렇게 조급하게 구냐”며 친구들을 채근하던 스스로를 또 한 번 비웃게 되는 꼴이었다. 세상에 도움을 기다리는 개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도 그 순간에는 들지 않았다.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바카의 사진 한번, 답이 오지 않는 카톡 창을 한번 번갈아 보기를 무한 반복 중이었다

사랑하는 순간 ‘을’이 된다



그렇게 절박하게 기다리던 중, 바카가 아직 있다는 답장이 마침내 왔고, 나는 ‘답장은 15분이 지난 후에 해라’는 케케묵은 밀당제1법칙 따위는 잊은 채 칼같이 내가 입양 하겠다는 답장을 보냈다. 지금 와서 하는 고백이지만, 유기견 입양을 결정한 후 나는 스스로 ‘선택해주고 베푸는 자’라는 도덕적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입양절 차에 발을 담그자마자 갑자기 ‘을’이 된 것 같은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입양절차를 담당하고 있는 유기견센터 봉사자에게 내가 이 아이(바카)를 기르기 적합한 견주 임을 어필해야만 하는 위치에 처했다. 이내 봉사자가 보내온 ‘바카는 경쟁자가 많다’, ‘개를 키워보신 적은 있냐’



는 답장은, 확실히 내가 을이 되었다는 선고와도 같았다.

나는 개를 키워본 경험이 없었다. (입양을 준비하면서 알게된 사실이지만, 개를 길러본 적이 있는 견주를 선호한다. 개 키우는 일이 마냥 핑크빛이 아님을 아는 견주에게 보내고 싶은 봉사자 들의 마음일 것이다.) 개를 키워본 적이 없다는 내 답에 봉사 자는 이어서 가족 구성원과 내 나이 같은 것들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당시 다섯 살 된 딸이 하나 있으며, 세 가족 이고 나는 주부라는 것 따위를 밝혔다. (어린 자녀가 있을 시에도 입양을 꺼리기는 경우가 많다. 어린 자녀와 개가 어울리기 힘들어 파양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크리스는 어때요?”



이런 내 조건들을 들은 봉사자분은, 바카는 나에게 어울 리지 않을 것 같다고 답을 보내왔다. 바카는 성격이 얌전 하고, 사람에게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라 어린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사랑받기 힘들 것 같다는 설명이 이어졌 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때는 기분이 나빴다. 내가 원하는 아이가 이미 입양이 된 것도 아닌데, 나랑 맞지 않을 것같아 보내줄 수가 없다니. 약간 김이 새는 것 같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며 다시 메시지를 보내려는데 봉사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카페의 다른 아이들도 둘러봐달라며 여러 아이에 관해서 설명해주는 그분의 말투에서는 각 아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월령이도 예쁘고 희망이도 귀여워요. 크리스도 가족들과잘 맞으실 거예요.” 가족들과 잘 맞을 것 같다는 것이 무 엇인지 궁금해 크리스에게 관심이 갔다. 크리스의 성격을 묻는 내게 한마디로 ‘비열하다’는 농담으로 표현한 봉사 자분은, 크리스는 큰애들한테는 몸을 사리고 작은 애들한 테는 컹컹 짖는 눈치 있고 활발한 성격으로 딸아이와 소꿉놀이하며 지낼 수 있는 아이일 거라고 했다.



설명을 들으며 자세히 살펴본 사진 속 크리스는, 당시에는 바카처럼 예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힘들어 보이는 표정, 안쓰럽도록 마른 몸 같은 것들이 ‘귀여움’ 보다는 ‘안 쓰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후의 다른 아이들 설명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른 가엾은 아이들도 너무 많은데, 크리스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던 건, 아마도 ‘눈에 밟힌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다.

반려견 선택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꼭 생각해봐야 할 질문



그렇게 크리스를 입양하기로 결정을 했고, 그게 입양절차의 끝은 아니었다. 입양원서작성이라는 절차가 남아있었 다. 마치 지금 당장 작성해내지 않으면 크리스를 뺏기기 라도 하는 듯, 크리스가 없으면 지금까지는 잘 돌아가던내 세상이 갑자기 무너지기라도 하는 듯, 나는 단숨에 입양지원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관마다 다르겠지만, 입양원서는 생각보다 길다. 너덧 장이 넘었던 것 같다. 꽤길게 입양의 이유와 입양에 대한 생각을 묻는 주관식 항목도 있었다. 흡사 입사지원서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기분이었지만 나는 왕년에 취직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수십 번 이상 썼던 사람으로 이쯤은 자신이 있었다. ‘운명’



‘반려견 선택에 있어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내 답이었다. 입양원서를 작성하기 전에는 생각 해본 적이 없었던 거였다. 외모? 집안에서의 효용 가치?

이런 건 겨울 코트를 고를 때나 중요한 점들이 아닐까. 반려견을 들인다는 건 상품을 들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내가 얼떨결에, 그렇지만 확실한 감정으로 크리스를 들이게 된 건 우리의 ‘운명’이 아니었을까. 꽤나 긴 입양원서를 작성하는 건 내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Credit

글·사진 이영주

에디터 이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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